이른 아침 산책길 또 다른 아파트 담장밖으로 덩굴을 드리운 키 작은 능소화를 보게 되었다.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서 여러 컷의 사진을 찍었다.
아파트는 출입구마다 외부인은 들어갈 수 없도록 문을 꼭꼭 걸어잠궈 놓았는데 담장밖으로 피어난 꽃만은 지나는 길손들을 반긴다.
이곳 아파트는 능소화가 감고 올라 갈 수 있도록 기둥을 만들어 놓았다. 능소화는 다른 물체를 타고 올라가는 덩굴 식물이라서 곁에 있는 다른 나무를 타고 자란다. 그래서 원래 있던 나무를 죽이곤 하는데 이곳 아파트는 그나마 다행이다.
몇 년 되지 않은 능소화라서 아직은 키가 낮고 굵기가 작다. 능소화나무 기둥의 굵기가 작다고 약해보이지 않는다. 작지만 강하고 야무져 보인다. 화려한 능소화의 꽃에 비해서 줄기는 강인함을 자랑하는 듯 하다.
능소화는 우리나라 전역 어디에서든 잘 자란다. 길이는 8~10m 정도이며 줄기는 담쟁이처럼 벽면을 타고 오르거나 등나무처럼 다른 물체를 잡고 자라는 덩굴식물이다. 줄기는 회갈색을 띠며 껍질이 아래로 길게 벗겨진다.
몇몇 능소화를 살펴보니 나무가 어찌나 잘 자라는지 원래 있던 나무의 흔적이 사라졌다. 뿌리 쪽을 바라보니 은행나무 흔적이 사라졌다. 여러 곳에서 이런 모습이 발견되었다. 원래있던 제법 큰 소나무는 능소화가 칭칭 감아 올라가서 보이지 않는다. 푸르렀던 소나무의 흔적은 사라지고 능소화 잎과 붉은 꽃만이 맑은 햇살의 창공을 향해 있다.
능소화 잎은 5~10장이 마주나며 끝이 뾰족한 피침형이다. 가장자리가 고르지 않은 톱니모양이라 마치 꽃을 보호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
꽃은 새로 난 가지 끝에 피는 원추꽃차례로 지름이 6~7cm 주황빛으로 나팔 모양을 하고 있다. 꽃의 안쪽은 노랗고 겉은 적황색으로 초록색 잎과 대조적으로 화려함을 자랑한다. 다섯 갈래 꽃잎은 바깥쪽으로 끝이 구부러져 있고 꽃잎 속에는 수술 네 개와 암술이 있다. 꽃과 꽃받침에서 단맛이 나는지 개미가 꽃받침에 가득 모여들기도 한다.
능소화의 원산지는 중국으로 우리나라에는 언제 들어왔는지 확실치 않다.
옛날부터 사찰이나 양반집 안마당에 심는 기품 있고 고급스러운 꽃으로 양반꽃으로 대접받아왔다. 그래서 그런지 능소화는 어쩐지 점잖은 기와집에 어울릴 것만 같은 꽃이다. 과거에 급제한 사람에게 임금이 모자에 종이꽃을 꽂아 주었는데 그 모양이 능소화라 하여 어사화(御賜花)가 되었다. 지방에 따라 금등화라고도 불린다.
주변 아파트에 능소화가 많은 것을 보니 부와 명예를 얻고 싶은 마음으로 심었나보다 생각이 든다.
심은지 얼마되지 않은 능소화는 아직 여리여리한 잎을 자랑한다.
화단에 요리 요리 작게 자라기 시작한 능소화가 몇 해 지나면 주변의 나무를 타고 올라 커다란 나무가 될 것이라 생각하니 그 생명력에 놀랍다.
능소화는 추위에 약해서 동해를 입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하며 양지쪽 수분이 많은 비옥한 사질 토양(모래입자와 점토의 함유율이 많은 토양)을 좋아한다. 공해에 매우 강하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아파트나 공원에서 많이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꽃가루는 독성이 있어 눈이 멀게 하다는 설이 있었는데 실제는 독성이 전혀 없고 꽃가루 모양이 갈고리 같이 생겨서 눈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좋다고 한다.
꽃은 주요 함유성분이 플라보노이드(강한 항산화 작용) 화합물이다. 약제로 항균, 항혈전, 항종양 등의 작용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의학에서는 꽃을 말려서 사용하는데 어혈(나쁜 피를 제거)을 풀어주고 피를 맑게 하고 보호하는 효능이 있어 양혈에 쓰인다고 한다.
열매는 삭과이며, 기둥 모양, 2개로 갈라지고 9-10월에 익는다. 꽃이 지고 나면 관찰할 일이 생겼다. 열매를 찍어 모양을 살펴봐야겠다.
번식은 가을에 채취한 종자를 이듬해 보에 파종하면 발아가 잘 된다. 일 년생 줄기를 20~30cm 잘라서 3~7월에 삽목 하면 뿌리가 내린다. 나중에 정원을 갖게 되면 능소화를 키워보고 싶다.
능소화의 전설도 전해진다.
옛날에 소화라는 궁녀가 궁궐에 살았다. 어느 날 왕의 총애를 받아 빈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 그러나 왕은 이후 소화의 처소에 한 번도 든 적이 없었다. 소화는 왕을 그리워하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담장너머 지나가는 발소리라도 들을까 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고개를 빼꼼히 하며 기다렸다. 그러나 왕의 얼굴조차 보지 못하였다. 소화는 기다림에 지쳐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뜨고 말았다. 소화가 세상을 뜬 후 주변 담장에 적황색 꽃이 피었는데 사람들은 죽은 소화의 넋이 피었다 하여 능소화라고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삐죽 담장밖으로 줄기를 늘어뜨리고 피어난 능소화가 소화의 고개처럼 빼꼼하다.
능소화의 꽃말은 소화의 그리움, 기다림을 담고 있으며 양반집과 어사화에 어울릴 만큼 명예, 이름을 날림의 의미를 담고 있어서 꽃말이 이중적이다. 이럴 때 자신에 맞는 꽃말에 의미를 부여함이 어떨지.
꽃이 지고 난 후 꽃받침만 남았는데 새로운 꽃이 핀 것 같다. 꽃잎이 지는 모습은 동백꽃처럼 뚝뚝 떨어진다. 소화의 넋이 뚝 떨어진 것 마냥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