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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May 18. 2024

자연의 내적 풍요로움이 넘치는 여행

고향으로 떠나는 여행

친구 두 명과 시골여행을 했다. 일 년에 서너 번은 찾는 고향으로 떠나는 여행이다. 친구들은 서울에서 나고 자랐다. 시골이라는 곳에 대한 어떤 환상이 있을지 모르겠다. 친구 중 한 명은 지난해 우리 고향집에 며칠 머물렀다. 그때의 기억이 좋다며 지금 가면 예쁠 것 같다고 했다.


수서역에서 기차를 타고 익산역에서 환승을 해서 오수역에 내렸다. 날씨는 맑고 화창했으며 파란 하늘에 구름 한 점 없이 드높았다. 상쾌한 바람마저 불어왔고 가벼운 옷차림이 어울렸다. 오월초에 왔을 때만 해도 이팝나무꽃이 하얗게 피었었는데 어느새 꽃은 지고 나뭇잎들이 초록으로 무성했다. 길가에 노랗게 핀 애기똥풀이 반갑게 인사했다.

모내기를 한창하고 있거나 많이 했을 것으로 생각했는데 작은 도로를 따라 걸으면서 보니 밭갈이를 한 논, 물을 대놓은 논, 모내기를 끝낸 논 등 다양했다. 이제야 모내기를 시작한 것 같았다. 부모님이 농사지을 때는 농번기를 항상 기억하고 있었는데 부모님이 안 계시니 농사일에는 무뎌졌다.

 

10여분을 걸어가니 도로가의 논들은 사라지고 상가들과 집들이 늘어섰다. 친구가 "상가들이 많은 것으로 보아 읍내에 왔나 봐요."라고 말한다. 금세 달라진 풍경으로 읍내에 도착했음을 알아차렸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지난 가족 모임 때 배달시켜 먹었던 식당에 들어갔다. 청국장찌개와 김치찌개를 시켰다. 도시에서 먹는 음식과는 다르다며 친구들이 맛있게 먹는다. 공깃밥을 하나 더 시켜서 먹었다.


친구들에게 오수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었다.

오수(獒樹)는 한자로 개 오자에 나무 수 자를 쓴다.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충성스러운 개이야기의 고장이다. 고려시대 김개인이 동네잔치를 다녀오던 길에 술에 취해 풀밭에 잠이 들었다. 때마침 들불이 일어 김개인이 누워있는 곳까지 불이 번졌다. 주인이 잠에서 깨지 않자 개가 근처 개울에 뛰어들어 몸을 적신 다음 들불 위를 뒹굴어 불을 껐다. 김개인이 잠에서 깨어보니 개가 옆에 죽어 있었다. 김개인은 충성스러운 개를 기리며 무덤을 만들어주고 지팡이를 꽂았다. 나중에 지팡이에서 나무가 자랐다.

충성스러운 개이야기를 들은 친구들은 개의 죽음을 안타까워했다. "아우구 어째. 우리 강아지." 친구 한 명은 개를 키우고 또 한 명은 고양이를 키우니 개의 죽음이 더 안타까운가 보다.

아이러니하게도 오수는 보신탕 잘하기로 유명하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인간을 지킨 개이야기다. 보신탕으로 유명한 오수이지만 동물보호 운동이 한창 벌어지면서 지금은 보신탕집은 모두 퇴출되었다.


지금은 지팡이가 자라서 나무가 되었고, 충성스러운 개를 기리는 공원 '원동산'이 있다. 친구들과 원동산에 들렀다. 원동산 유래 비석과 개를 기리는 원조 비석이 있고 그 후에 세운 개 동상이 있다. 아름드리 오래된 나무는 이야기가 전설이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원동산 주변에는 시장이 있다. 예전에 오수장은 꽤 큰 장이었다. 주변 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오일장이 서는 오수장을 보기 위해서 모였었다. 마침 오일장이 서는 날이라 오수장을 구경했다. 지금은 도로 주변에만 몇몇 상인이 나와 있을 뿐이었다. 오수장에 사람이 없어진 지는 오래되었다. 팔려는 사람도 사려는 사람도 드문드문 보일 뿐이다. 오수 장터는 그 흔적만 남아있다. 폐허처럼 남아있는 벽이 있고 장이 서던 안쪽은 헐리거나 새로 생긴 가게가 일부 형성되어 있다. 엄마를 따라와서 소란한 장터를 누비며 뻥튀기며 신발이며 가방 등을 사던 기억만이 남아 있다.


원동산과 장을 구경하고 마트에 가서 간단하게 장을 보고 택시를 탔다. 어느 마을 누구 집으로 가주세요라고 말하면 기사님이 길을 알아서 잡아주신다. 도로는 한산하다. 차창밖으로 시골길이 지나가고 창문으로 고운 향이 날린다.

10여분을 달려 고향 마을 입구에서 내렸다. 입구 산아래에 찔레가 하얗게 피었다. 택시를 타고 달릴 때 맡았던 향이 찔레 향이었다. 몇 주 전에 피었던 아까시꽃은 지고 찔레꽃만 남았다.

"이게 찔레꽃이에요?" 찔레꽃을 처음 본 친구들은 사진을 찍고 연신 신기해한다. 찔레향이 이렇게 진하다는 것을 처음 알았단다. 찔레를 따던 어린 시절 이야기도 해 주었다. 눈을 들어보니 논가 언덕과 산 곳곳에 하얀 찔레가 가득했다.

마을로 들어가는 길도 친구들과 오니 달리 보인다. 고향집인데 새로운 여행을 가는 기분이다.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니 친구가 텅 빈 마당에 서있는 경운기를 먼저 보았다.

"경운기가 있으니 농사짓는 집처럼 풍경이 달라 보인다."라고 말한다. 오빠가 지난해부터 농사를 짓고 있고, 일주일에 몇 번 방문해서 농사를 짓고 집안도 깨끗하게 가꾸어 놓았다고 말해주었다.

마당에 심어진 감나무와 자두나무도 알려주었다. 감나무는 연둣빛이 새순을 피웠고 감꽃이 곱게 자리하고 있다. "감꽃은 처음 보아요. 연둣빛 감나무 새잎이 참 예뻐요." 감꽃이 노랗게 예쁘게 피었다. 몇몇은 감꽃이 떨어지고 감이 올라오고 있다. 자두나무에는 자두가 주렁주렁 많이 달려있다. 도시 친구들에게는 시장이나 마트에 상품으로 나와 있는 감과 자두는 많이 보았지만 자연 그대로 과실은 처음 만나는 거라 신기하기만 한 것 같다.  


감나무와 자두나무 그늘아래 의자 네개를 놓았다. 종이 한 장도 바닥에 깔았다. 의자 하나에는 찻잔을 놓았고, 바닥에 깐 종이 위에는 오수 시장 제과점에서 사 온 빵과 과자, 견과류 등 군것질거리를 두었다. 살랄살랑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나무 그늘에 앉아서 차도 마시고 간식을 먹으며 수다 삼매경에 빠졌다.

텃밭에서 상추도 따고 열무도 속았다. 대숲에서 죽순을 따고 머위대도 땄다. 우물가에 자란 돌나물(=돈나물)도 캤다. 머위대를 모르는 친구, 대숲에 자라는 죽순을 처음 보는 친구는 모든 것이 새롭고 신기해한다. 우물가에 자란 나물를 캐고 있는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아침을 늦게 먹어서 점심도 저녁을 겸하여 늦게 먹기로 했다.

마을을 산책하기 위해서 길을 나섰다. 우리 고향집은 큰 마을에 딸린 작은 마을이다. 큰 동네를 돌아 농로를 산책하기로 했다. 마을 이름은 냉천이다. 냉천이라는 이름은 우물물이 차가워서 지나가던 나그네가 지어줬다고 한다. 예로부터 마을 본 이름이 있고 마을을 여러 구역으로 나누어 이름을 달리 부른다. 윗뜸, 아랫뜸, 상뜸, 원쟁이, 뒷고래, 무네미, 외야물 등등 요즘에는 들어볼 수 없는 이름이다.


동네의 집들은 새로 깔끔하게 기와를 올리고 담장을 쌓은 집도 있고 예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이 터만 남은 집도 있다. 빈집으로 폐허가 된 집도 있다. 산아래 마을은 윗집 아랫집 옆집 서로 머리를 맞대고 있다.

마을 입구에는 큰 나무가 아름드리 자라고 있고 동네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정자가 있다. 마을회관에는 깃발은 나부끼는데 휴일이라 그런지 드나드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회관 옆에는 옛날 제각집(검은 기와집)이 있는데 어느 성씨의 시조를 모시는 사당이다. 옛날에는 이곳에 탁아소가 운영되었다. 큰언니는 탁아소에서 선생님을 필자는 원아로 다니던 때가 있었다.


낮은 담너머로 안을 들여다볼 수 있는 집이 많다. 울타리도 제대로 없어서 집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집이 대부분이다. 누구의 집인지 곱고 새롭게 잘 지어놓은 집 앞에는 분홍달맞이꽃이 군락을 이루었고, 파란 수레국화가 수레모양으로 푸른 태양처럼 피었다. 한참을 멈춰 서서 사진을 찍는데 낯선 소리에 집주인 개가 계속 짖어댄다. 마을길을 지나니 예전 그대로  교회가 있다. 여름성경학교니 크리스마스이브니 하면서 친구를 따라 몇 번 다녔던 곳이다. 아버지가 다니던 교회이기도 하다.

교회 아래에 있던 방앗간은 없어진 지 오래다. 정미소는 지금도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예전보다 더 크고 깔끔해졌다. 서당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풀만 무성하고, 우리 옆마을에 있던 문방구는 없어졌다. 100원 자리 노트를 산다며 70원짜리 노트를 사고 30원은 까먹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문방구가 있던 자리는 예쁘고 단아한 집이 자리를 했다. 화단에는 여러 꽃이 피었다. 장미 덩굴이 터널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 주인장의 부지런한 손길이 느껴졌다.  


길가에는 크로버가 자라고 있다. 어릴 때는 토끼풀이라고 불렀고 꽃은 시계꽃이라고 불렀다. 시계꽃을 뜯어서 반지도 만들고 팔찌도 만들고 왕관도 만들었다. 반지와 팔찌는 금방 만들 수 있지만 왕관은 엉덩이를 척 걸치고 주저앉아서 꽃을 뜯고 한참 공을 들여야 만들 수 있다. 잘못 만들면 왕관이 엉성해지고 풀어져서 촘촘히 잘 엮어야 한다. 네 잎클로버를 찾을 때도 한참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지금 해보자 하니 시간과 품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마음의 여유와 시간적 여유를 가지지 못한 사람을 할 수 없는 거다. 자연과 노는 일이 품과 시간을 들여야 하는 일이다.


학교는 여섯 개 부락이 모이기 쉽게 들판 한가운데 세워져 있다. 허허벌판에 마파람을 맞으며 서있다. 옛날에는 동네마다 어린 학생들이 한데 모여서 등교를 했다. 모이기 쉬운 장소를 정해서 모두 모이면 동네 깃발을 앞세우고 두 줄로 서서 마을길을 지나 논둑길을 걸어서 줄지어 등교하곤 했다. 엄마가 부지런해서 일찍 밥을 먹고 집을 나서면 회관이나 어느 집 담벼락에 모여서 고무줄 치기 공기놀이 오징어놀이를 하면서 한참을 놀았다. 하굣길에는 친구보다 앞서 달려가서는 풀숲에 앉아서 두 개의 풀을 엮어 놓았다. 친구가 걸어오다 모르고 걸려 넘어지는 것을 보며 낄낄거리며 즐거워했다.


학교 앞 진입로에는 가을이면 코스모스가 한들한들 곱게 피었다. 학교 앞에 우리 논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작을 놓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도와 모내기와 추수를 하곤 했다. 한창 농사일을 돕고 있노라면 선생님이 지나가곤 했는데 그것이 부끄러워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어 했다. 길을 가다 농사일을 하다 후줄근한 모습의 엄마를 만날라치면 창피해서 피하거나 뒤돌아가곤 했다. 옛날에는 그랬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하는 중에도 그 시절의 모습이 아련하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울려 퍼지던 학교는 폐교가 된 지 30여 년이 넘었다. 교문은 철문만 너덜거리며 칠이 벗겨지고 녹이 슬었다. 운동장에는 나무가 심어져 있고 수풀이 우거졌다. 아이들의 함성이 가득하고 운동회다 달리기다 놀이터가 있던 운동장은 찾아볼 수 없다. 학교였던 건물은 나무숲 너머에 윗부분만 보이는데 언뜻 보기에도 검은 이끼가 끼어 있고 폐허만이 아득해 보인다. 학교건물 뒤에 있던 커다란 버드나무는 베어진 지 오래다. 버드나무 아래서 고무줄 띄기 하던 추억만 남았다. 학교 안으로 더 들어갈 수 없어서 교문 입구에서 멀거니 바라보았다. 미술수업을 하고 방과 후 숙제하고 뛰어놀던 숲속교실은 시멘트탁자가 수풀사이에 엉성하니 남아있다. 독서하는 소녀의 동상은 코가 깨지고 귀가 떨어져 나갔으며 거뭇한 이끼가 끼었다. 통일로라는 표지석은 멀어지는 통일처럼 서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교문안쪽에 있는 산수유나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고, 뽕나무에 오디가 빨갛고 검게 익어가고 있다. 오디를 먹으니 익은 떱떠름한 맛이 옛날 그대로다. 어릴때는 오디를 오도개라고 불렀다. 친구들은 나무에 열린 오디를 처음 먹어본다며 경탄한다. 검게 익은 오디를 따 먹으면 입가가 검게 물들고 손은 검붉은 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친구들은 모른다. 친구들은 오디를 사서 요구르트에 섞어먹거나 갈아먹었던 경험을 나누었다. 오디는 몸에 좋다고 꽤 비싼 가격으로 팔린다.   


폐교된 학교를 보면서 새로운 꿈을 꾸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독자님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폐교와 추억을 살리고 싶은 꿈이다. 폐교를 리모델링해서 북스테이와 책방을 열고 싶다. 학교처럼 글방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도자기도 굽고 싶다.  캠핑도 하고 농촌체험으로 모내기와 벼베기를 해도 좋겠다. 개구리를 잡고 잠자리도 잡고 운동장에서 운동회도 열면 좋겠다. 지인들에게 말을 하면 돈이 더 들고 이 시골까지 어느 누가 오겠느냐며 '아서라. 말어라.' 말린다. 그래도 꿈을 꾼다.


학교를 보고 논길을 따라 들판을 감상하면서 집으로 발걸음 했다. 예전에는 들판에 하우스가 없어서 풍경이 아름다웠다. 모내기철에는 연둣빛 벼, 여름에는 푸른 들판, 가을에는 노란 황금물결, 겨울에는 하얀 눈 덮인 들판이 장관을 이뤘다. 지금은 군데군데 하얀 비닐하우스가 시야를 가린다. 비닐하우스도 하나의 농촌풍경으로 자리했다고 여겨야겠다.

물 댄 논에는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이 반사경을 이뤘다. 곱게 논을 갈아엎은 곳은 곧 물을 댈 것이다. 이제 막 물을 댄 논에는 물이 찰방찰방 흙탕물이다. 소를 키우는 축사를 운영하는 어느 분의 논으로 추정되는 곳에는 목초가 가득하다.

수로가에 고들빼기 노란 꽃이 시멘트 수로를 타고 내려와 하늘거린다. 논두렁 도로가에 칡은 덩굴을 이루며 번식력을 자랑하고 있다. 노란 금계국이 피었고, 철 이른 코스모스가 몇 그루 피어 있다. 이웃집 밭에는 매실이며 복숭아가 영글어간다.


산책을 마칠 때쯤 비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세졌다. 빗방울도 한두 방울 떨어졌다. 오후 늦게 천둥과 번개가 치며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가 있었는데 곧 비가 쏟아질 듯했다.

걸음을 바삐 하여 돌아오는 길에 오빠가 가꾸어 놓은 밭에 가서 양파와 마늘, 파를 한뿌리씩 뽑았다. 부지런한 오빠 덕분에 고향집을 방문하는 것이 즐거워졌다.


집으로 돌아와 산책 전에 따 두었던 상추, 열무, 머위, 죽순, 돌나물을 씻고 양파와 마늘, 파도 손질을 했다. 머위대는 데쳐서 무쳤고 돌나물은 초장만 뿌렸다. 친구들에게 아까시꽃 튀김을 해주겠다고 했는데 꽃이 다 지고 없어서 만들지 못했다. 대신 뽕잎에 오디를 넣은 전을 부쳤다. 들에서 뜯은 쑥전도 부쳤다. 죽순은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도록 비닐봉지에 담았다. 채소들은 반찬으로 먹을 재료만 남기고 봉지에 담아서 각자 가져가기로 했다.

이번 식사는 텃밭에서 가져온 갖은 야채를 넣고 비빔밥을 먹기로 했다. 막 지은 밥을 넣고 상추와 열무, 머위나물, 돌나물을 그릇에 담았다. 계란프라이를 올리고 초고추장을 넣어서 비빔밥을 만들었다. 텃밭에서 직접 캐서 만든 비빔밥이 일품이었다. 건강해지는 맛으로 식사를 마쳤다.


어느새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세명의 아줌마가 뒷정리를 하니 손이 어찌나 빠른지 후다닥 마무리가 되었다. 택시를 불러서 기차역으로 갔다.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 물이 가득한 논에서 트랙터가 논의 흙을 고르고 있다. 농사철에 내리는 비는 고마운 비다. 농부는 부지런히 농사일을 준비해야 한다.


기차를 기다리는 동안 앉아서 사진을 친구들과 공유했다. 일초만 지나도 추억이 된다는 것을 여행을 함께 한 친구곁에서 느낀다. 자연에서는 다소 멀리 살고 있지만 늘 자연을 그리워하는 인간의 삶이 여행을 통해서 추억으로 마음에 담겼다. 자연이 주는 풍요롭고 넉넉한 행복을 가득 안은 하루였다.  



#라라크루 #하나만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엄마에세이

#간호사무드셀라증후군처럼_간호사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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