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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민영 Apr 13. 2024

나 보기가 역겨워

진달래꽃을 그리워하며

요즘은 온 동네가 꽃 천지라 어디를 가도 예쁘다.

눈을 조금만 돌리면 시내와 강, 들이고 산이 마치 수채화를 그려놓은 듯하다. 개인적으로 이맘때 자연 풍경을 가장 좋아한다. 4월의 봄 산을 보면서 수채화 그림을 배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언젠가는 꼭 수채화를 배워서 멋진 풍경을 화폭에 담고 싶다.


4월의 산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적막하기만 하더니 온갖 식물들로 그득해진다. 봄의 정원은 은은한 향이 난다. 연분홍빛 하얀빛 연둣빛 너도나도 화사하게 피어난다. 사람의 손길로 곱게 가꾼 공원과 화단에는 꽃과 나무들이 곱디고운 모습으로 새 단장을 하고 있다.


새들은 조로롱 포로롱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나무 사이를 바삐 가른다. 길 가까이 내려온 장끼(수꿩) 한 마리는 머리에 붉은 화환을 두르고 제 갈길을 간다. 사람이 가까이 있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 것이 익숙한 녀석임에 틀림없다. 꿩은 대개 암수가 같이 다니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 녀석은 어찌 된 일인지 까투리(암꿩)는 어디 가고 홀로 길을 가고 있다. 4월에서 6월까지가 산란기라고 하니 까투리는 어딘가에서 새 생명을 잉태하고 있으려나?


어! 그런데 땅 위에 저 분홍은 무엇인가?

산의 모습에 취해 걸을 때는 보이지 않았는데 땅 위에 나뒹구는 꽃잎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은 매화, 산수유꽃, 벚꽃, 철쭉 등 다양한 꽃축제가 워낙 화려하고 유명하다 보니 진달래는 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주변에서 몇 번 보았지만 흔하지 않고 많지도 않다 보니 그냥 지나치곤 했다. 갑자기 아쉬운 마음이 든다. '벌써 진달래가 지는구나.'


이른 3월은 봄이라고 하기에는 아직 이르고 겨울이라고 하기에는 객쩍을 때이다. 한편, 빈산처럼 보이지만 온갖 만물이 깨어나고 있음을 느낌으로는 알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하다. 꽃눈이나 잎눈이 막 틔기 시작한 시점에 만나게 되는 꽃은 반갑고 신기하다.       


이른 봄에 만나는 연분홍 진달래는 3월 동네 뒷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꽃이다.

어릴 적에는 진달래가 필 즈음에 바구니를 옆에 끼고 들로 나갔다.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고 밭둑길을 걸어 다니며 쑥이며 냉이를 캤다. 동네 꼬마들이 양지바른 곳에 모여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들판 이곳저곳을 누비며 막 오르기 시작한 싱그러운 나물을 캔다. 겨울을 이긴 나물들이 사람들에게 어떤 좋은 영양을 주는지도 모르지만 습관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부른 들판을 향해 내달리던 때다.    

  

나물 캐기가 시들해지면 뒷동산에 진달래를 땄다. 진달래를 입에 물고 머리에도 꽂아본다. 가지를 꺽어 물병에 꽃아두기도 한다.

중학교 때는 가정 시간에 진달래 화전 만드는 법을 배웠다. 집에 돌아와서 진달래 화전을 부쳤다. 찹쌀가루를 익반죽 하여 뒷산에서 따온 진달래 수술을 떼어 내고 꽃잎을 얹는다. 기름에 지져서 꽃을 먹는다. 진달래 향이 남아 있을 리 없지만 꽃향기가 입안 가득 퍼지는 듯하다.     

 

김소월의 ‘진달래꽃’ 시를 교과서에서 배우고 그 의미를 분석하기도 했다. 시험을 위한 과정이었지만  ‘진달래꽃’ 시는 교실이나 복도에 시화로 전시되어 있어서 매우 친숙하게 되었다. 진달래를 보면 김소월이 저절로 떠오른다.

      

1987년 유월 항쟁이 한창이던 때 오빠가 집에 들어와서 부르던 “오오 진달래 오오 진달래~ 진달래꽃 피었네~”라는 노래가사는 지금도 입가에 맴돈다. 고등학생에게 대학생 오빠가 부르던 진달래 노래는 막연히 항쟁과 민중, 민주주의와 대학생을 상징하는 것처럼 여겨졌다.


대학 때는 한반도 전역 어디서나 자생하며 친숙하게 볼 수 있는 진달래를 우리나라 국화로 재정해야 한다는 주장에 동조했다. 진달래가 들어있는 민중가요를 꽤 많이 불렀다.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멧등 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은 같은 꽃사태가’라는 가사가 있는 4.19 혁명 기념 노래를 불렀다. 통일 관련 민중가요에도 진달래 노랫말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았다. 민주주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진달래를 민중의 꽃으로 여기며 가슴속에 새겨야 할 귀한 보물처럼 생각했다.     

 

가수 마야가 시에 곡을 붙인 ‘진달래꽃’ 노래(2003년) 덕분에 진달래를 보면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노래를 흥얼거리게 되었다. 가수 마야의 호소력 넘치는 가창력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지는 슬픔의 절정을 느끼게 한다.  시가 슬픈 것인지 노래가 슬픈 것인지 헤어짐이 슬픈 것인지 모를 정도다. 님이 가실 때는 말없이 고이 보낼 뿐 아니라 즈려밟고 가도록 가시는 길에 꽃을 뿌리겠다는 그. 님이 가시면 죽어도 눈물 흘리지 않겠다고 하니 슬픔과 사랑의 역설인 듯 저릿하다.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우리다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옵소서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우리다    

 

<진달래꽃, 김소월>     


먼 곳에서 산을 바라보면 회색빛 마른 가지와 풀잎 사이에 피어난 분홍 진달래가 시선을 끈다. 마른 뒷동산의 사랑의 전령사 같다.  진달래의 꽃말은 사랑의 기쁨이라고 하니 딱 어울리는 꽃말이다.


진달래는 낙엽활엽식물로 한반도 전역에 분포하며 분홍색으로 홀로 피기도 하고 군락을 지어서 피기도 한다. 개화시기는 3월 초에서 중순에 피기 시작하며 4월 중순 정도에는 지기 시작한다.


진달래는 철쭉과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려운데, 진달래는 철쭉과 달리 식용이 가능하고 잎이 피기 전에 꽃이 먼저 핀다. 진달래는 3월경에 꽃이 핀다. 철쭉은 4월경에 피기 시작하는데 진달래보다 더 늦게 피고 잎이 먼저 나오고 꽃이 피거나 꽃과 잎이 같이 핀다. 진달래는 식용이 가능하지만 철쭉은 독성이 강해서 식용이 불가능하다.    

 

진달래는 화전으로 부쳐 먹고, 우리나라 의복인 한복에도 진달래를 닮은 연분홍 치마저고리를 흔히 볼 수 있다. 진달래 술을 담그기도 하는데 진달래 술을 담가본 적은 없다. 진달래는 오래전부터 우리 백성들 가까이에서 함께 했다.

  

진달래꽃 군락지로는 대구 서구에 있는 와룡산의 용미봉 일대가 있다. 가보지는 못했지만 해발 299.7m 높이의 와룡산 용미봉에 진달래가 활짝 피어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또 다른 진달래 군락지로는 창원 청주산, 여수 영취산, 인천 계양산과 가현산 등으로 블로거들이 소개하고 있다.


진달래꽃 축제는 가보지 못했지만 이른 봄 멀리서 희미하게 찍은 진달래꽃과 지는 진달래꽃으로 아쉬움을 대신한다. 내년에는 진달래꽃을 찾아 떠나는 여행을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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