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선생이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동안 ‘라스트 인터뷰’라는 형식으로 대화의 디테일을 정해두지 않고 그날그날 각자의 상념을 꺼내놓고 진행했다고 한다. 이 책은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고 외쳐왔던 선생의 ‘마지막’ 진술이다.
암세포가 머릿속을 모두 지워버리고 하얀 공백을 만들어서 한 줄의 글도 쓸 수 없다는 선생은 철창 밖으로 튀어나온 호랑이와 맞서 싸우고, 죽음과 하루하루 팔씨름을 하신다고 말씀하셨다. 당신의 몸이 암에 침범당해서 잡아 먹히고 있는 육체적 고통에 대해서는 담담하셨지만, 그 고통은 점점 메말라가는 선생의 모습에서 읽혔다.
선생이 겪었을 고통과 슬픔, 탄식과 눈물, 그리고 외로움 등과 같은 내적 갈등까지도 들여다보이는 독자로서 이 책을 읽어내기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책을 읽어내는 것이 괴로움이고 슬픔이고 연민이다. 선생의 고통을 같이 느낄 수는 없으나 그 괴로움이 얼마나 크실까 생각하면 미안하고 죄스럽다. 죽음으로 향해가는 선생을 가만히 놔두지 못하고 그런 사람을 붙들고 한 줄 듣겠다고 문밖을 서성이는 승냥이가 된 것 같은 마음이다.
하지만 선생이 원하신 길이고 바람이니 독자는 선생의 그 진실성을 제대로 받아내면 되지 않겠나 마음을 고쳐먹는다. 선생의 질문에 답하다보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길을 찾을지도 모른다.
“나는 거미인가 개미인가 꿀벌인가?”
“화문석이 될 것인가 무문석이 될 것인가?”
“나는 물독인가 두레박인가 돌멩이인가?”
“여행자로 살 텐가 승객으로 살 텐가?
“너 존재했어? 너답게 세상에 존재했어? 너만의 이야기로 존재했어?”
우리는 코로나 시국 같은 어지러운 세상, 혼돈 상태를 몹시 힘들어한다. 카오스, 갈증, 비정형에 빠지면 좌절하기도 한다. 책을 읽다 보면 그런 혼돈 상태를 자기 힘으로 뚫고 나가는 것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창조는 카오스에서 생겨. 질서에서는 안 생기지. 질서는 이미 죽은 거라네. 혼돈 자체를 에너지로 느낀다네. 혼돈은 내게 목마름 그 자체야.”
선생은 우리가 고통을 피하려고 하거나 남을 쫓아서 욕망을 채우지 않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삶의 고통은 피해 가는 게 아니야. 정면에서 맞이해야지. 고통은 남이 절대 대신할 수 없어. 오롯이 자기 것이거든”
“내 머리로 생각하고, 누굴 보고 겁먹지 말게나. 나답게 잘 살아.”
“인간은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를 겪어보아야 만족을 한다네.”
"상처를 가진자가 활도 가진다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현재 가지고 있는 어려움을 내 힘으로 극복해 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선생이 뒤늦게 깨달은 바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생의 진실은 모든 게 선물이었어. 내 집도 내 자녀도 내 책도 내 지성도 분명 내 것인 줄 알았는데 다 기프트였어.”
삶이 선물이었음을 선생은 뒤늦게 깨달았다고 했다. 그런데 나는 이미 진즉부터 깨닫고 있었다. 그런면에서는 나도 반 철학자가 다 된 것 같다.
선생의 "잘 있어. 잘 있으세요." 마지막 말이 귓가에 맴돈다.
**이어령 선생님 고맙습니다**
남은 사람들에게 좋은 말씀과 지혜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부디 지금 계신 곳에서 늘 평안하시길 기도합니다.
★★★ <서평에 보태기>
책에서는 영성, 모험, 행복, 희망, 용서, 사랑, 꿈, 돈, 종교, 과학, 사회 등 선생이 주시는 지혜의 ‘선물’로 가득하다. 그러나 그 표현이 비유와 은유로 되어 있어서 그 행간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게다가 선생의 생각이 쉬프트 키를 누른 것처럼 건너뛰기도 하고, 공간이동으로 매트릭스에 들어온 것처럼 생각의 영역을 건너뛰기도 한다. 가끔은 선생의 생각 흐름을 타고 가더라도 종잡을 수가 없다. 대화의 흐름을 그대로 담아낸 책이다 보니 한 꼭지에서 하나의 주제로 끝나지 않는다. 새로운 생각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다반사다.
저자 역시 친절하지 않다. 소제목이 실제 대화 내용과 알맞지 않아 종종 이야기 흐름을 찾기 어렵다. 이럴 때는 책을 내려놓고 사유해야 한다. 다시 읽어야 하고 곱씹어야 한다. 내용을 갈무리하고 필사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 나눔도 필요하다. 그렇게 했어도 모르는 것이 많다. 나중에 깨달을 수도 있고 영영 모르고 지나갈 수도 있다. 어쩌면 선생의 마지막 수업을 들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할지도 모른다.
가끔은 선생의 생각이나 철학이 독자의 생각과 다를 수도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삶에 대한 많은 철학적 질문을 던지는 선생의 물음에 답하는 동안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선생이 전하고자 하는 진실성은 무엇인지 스스로 알아차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