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안다. 삶의 각 단계마다 ‘철학’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생에서 길을 잃는 수많은 순간마다 철학자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면 쉽게 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책은 철학이 어렵다고 느끼는 사람이 쉽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책이다. 그렇다고 아주 쉬운 책은 아니다. 처음 듣거나 이름조차 가물가물한 철학자가 많이 등장하기 때문에 백과사전을 찾아가면서 책을 읽어야 한다.
작가는 기차여행을 하면서 철학자를 만나러 간다. 마치 철학 여행을 하는 것 같아서 책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가는 철학자가 살았던 집, 산책하던 호수, 거닐었던 거리를 걸으면서 철학자처럼 사유한다. 가끔 철학자와 다른 생각을 피력하기도 한다. 철학자의 생각이 아니라 작가의 생각을 듣는 것도 즐겁다.
작가가 딸과 여행하며 나누는 대화는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예를 들면 “좋은 아빠가 되고 싶은가?” “아빠를 아빠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등등이다.
14명의 철학자를 만나다 보면 삶을 좀 더 가볍고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이 가는 철학자를 찾아서 읽으면 된다.
아침에 침대에서 나오기 힘들다면 마르쿠스 아울렐리우스를, 질문하는 법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소크라테스를, 삶의 균형이 깨진 사람이라면 루소를 통해서 배우면 된다.
간소한 삶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제대로 보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소로를, 소음에 정신이 없는 사람이라면 쇼펜하우어를, 세상을 즐기는 법을 찾고 싶다면 에피크로스를 만날 것을 추천한다.
집중하지 못하고 하는 사람이라면 시몬 베유에게서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간디, 친절한 세상을 만드는 법을 알 수 있는 공자,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에서 기쁨을 즐기고 작은 것에 감사하는 법은 세이 쇼나곤을 만나자. 세상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갖게 될 것이다.
삶을 후회하지 않는 법을 찾고 싶다면 니체를, 삶의 어려움을 극복하고 싶다면 에픽테토스를, 아름답게 늙어가고 싶다면 보부아르를, 죽음에서 희망을 찾고 싶다면 몽테뉴와 만나서 사유하면 도움이 될 것이다.
이 책에서 내 관심을 가장 끌었던 철학자는 니체지만 애정하게 된 철학자는 세이 쇼나곤과 보부아르다. 두 철학자는 여성 철학자이다. 세이 쇼나곤은 1000년 전 교토 황궁의 잘 알려지지 않은 궁녀다. 그녀는 <베갯머리 서책>에 개인적 즐거움을 위해 자신이 생각하고 느낀 것을 적었다. 그녀의 책은 붓 가는 대로 따라 쓴 글로 ‘세련되고 우아한 것’들에서 ‘가치 없는 것’들로 방향을 꺾었다가 다시 ‘진정으로 훌륭한 것’들로 돌아온다.
작을 것을 볼 준비가 되어 있고 즐길 줄 알았던 세이 쇼나곤에게서 바삐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면 좋다. 그녀는 극도로 더운 여름과 지독히 추운 겨울을 최고로 여긴다. 소가죽으로 만든 안장 끈의 낯선 냄새가 불현듯 풍길 때와 한낮에 희미한 땀 냄새가 나는 살짝 폭신한 기모노를 걸치고 몸을 웅크린 채 낮잠을 잘 때 기쁨을 느낀다. 만개한 꽃보다 막 꽃이 피어나려는 나뭇가지, 시든 꽃잎이 떨어진 정원에 더 많이 관심을 쏟는다. 세이 쇼나곤처럼 순식간에 사라지는 삶의 작은 기쁨을 즐기며 느슨하게 쥐고 살아보자. 너무 세게 붙잡으면 부서져버리니까.
보부아르는 프랑스 여성 혁명가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았던 그녀는 계속 열린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삶에 새로움을 찾아 떠나는 여행길에서 그녀는 “나는 영원을 품은 순간을 산다. 나 자신의 존재도 잊어버린다.”라고 했다.
그녀가 쓴 책 <노년>은 노화에 대한 지침을 삼을만하다. 노년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카이로스’에 해당한다. 딱 맞는 적절한 때, 무르익은 기회의 시간이다. 늙는다는 것은 나이를 말하는 게 아니다. 나이에는 아무 의미도 없다. 나이는 그 사람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는다. 나이는 그 무엇의 원인도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이 때문에 새로운 시도를 미루고, 나이 핑계를 대면서 자신의 나약함을 감춘다. 호기심을 마음속에서 삭제하며 나태와 게으름을 나이로 포장한다. 나이를 먹어서 늙어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늙어서 진짜 늙어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보부아르를 만나다 보면 나이 드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 꺼져가는 빛에 분노하는 것이 아니라 그 빛이 다른 이들의 삶 속에서 계속 타오를 것임을 믿으며 살기로 한다. 그리고 키케로처럼 말할 것이다. “노년은 그리 나쁘지 않다. 나이가 들면 우리 목소리는 더 듣기 좋아지고 나누는 대화는 더욱 즐거워진다. 지식과 배움에서 시간을 쏟는 한가한 노년보다 인생에서 더 만족스러운 것은 없다.”
니체의 ‘영원회귀’처럼 인생이 끝없이 반복되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면 나는 오늘 다르게 살아보기로 한다.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느끼는 법을 배운다. 걸을 수 있다면 춤을 추고 춤을 출수 있다면 패기 넘치게 삶을 찬미하는 *아모르파티를 하기로 한다. 삶이 행복해도 춤을 추고 괴로워도 춤을 출 것이다. 나의 삶을 긍정하고 운명을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고 춤을 추겠다. 내 힘으로 전과 다르게 바라보며 다르게 느끼며 사는 거다.
‘하루를 살아낸 사람은 경험할 수 있는 것을 전부 경험한 것이다.’라는 자신감으로 살기로 한다. 오늘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다 카포”를 외치며 내일은 처음부터 다시 한번 시작하기로 했다. 그리고 나는 나만의 정원을 가꿀 거다. 우리는 모두 자신만의 정원을 가꿔야 하니까.
*아모르파티 : 니체의 운명관을 나타내는 용어로 운명에 대한 사랑, 운명에 대한 수용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