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이 가만히 숨을 쉬자, 갈비뼈가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때 선생님은 나를 바로 똑바로 바라봤다.
“자네를... 사랑하네.”
선생님이 힘겹게 말했다.
“저도 사랑해요. 코치.”
“그건... 아네... 그리고 또 알아...”
“뭘 또 아시는데요?”
“자네가... 늘... 그랬다는 걸...”
선생님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어느새 울기 시작했다. 꼭 어린아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눈물을 흘렸다. 나는 몇 분간 선생님을 꼭 끌어안고 있었다. 그리고 흐물흐물 살갗을 문질렀다. 머리칼도 쓰다듬고. 내 손바닥을 선생님의 얼굴에 대고, 앙상한 뼈를 만지고 눈물 자국도 매만졌다.
위 내용은 모리와 작가가 작별인사를 하는 장면이다. 나는 여기에서 눈물을 쏟았다. 작별인사도 없이 훌쩍 떠나신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 사랑해요.”
“그래... 알아... 그리고 또 알아...”
“뭘 또 아시는데요?”
“네가... 늘 그랬다는 걸...”
돌아가신 아버지와 나누고 싶었던 대화를 대신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스승인 모리와 제자인 미치는 매주 화요일 ‘인생의 의미’라는 주제로 만난다.
모리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고 죽어가고 있는 중이다. 먼저 사지가 마비된다. 처음에는 춤을 출 수 없었고, 다음은 걸을 수 없었다. 그리고 팔을 움직일 수 없었고, 안경을 혼자서는 쓸 수도 없다. 나중에는 고개를 돌릴 수도 없고, 말하기도 힘들고 숨 쉬는 것도 힘들어졌다.
모리는 자신의 죽음을 삶의 중심이 될 마지막 프로젝트로 삼고 싶어 했다. 누구나 죽으니까 자신의 죽음을 대단히 가치 있는 일로 승화시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제자인 작가 미치에게 생명이 사그라드는 자신을 보면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지켜보고 죽음을 연구하라고 했다. 그는 삶과 죽음, 그 좁은 여정을 잇는 마지막 다리로 걸어가고 싶어 했다. 자신을 통해서 살아있음의 의미, 죽음의 의미를 배우라는 것이다.
내가 만일 인생의 마지막에 있다면 나의 죽어가는 모습을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내어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직업적으로 죽음을 많이 접해왔지만 아무리 죽음을 많이 만나왔어도 담담할 수가 없을 것 같다.
내 생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해 본다. 너무 많이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고, 호흡곤란으로 너무 힘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른들이 말한 것처럼 잠을 자듯 죽음을 맞이했으면 좋겠다.
죽기 직전 다시 건강해져서 24시간이 주어진다면 가족과 하루를 보내야겠다. 어머니와 시부모님, 형제자매,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나를 있게 해 주었고 나와 함께 성장해주었던 가족들께 감사의 인사를 해야겠다.
“사랑한다”, “고마웠다”고 말하리라. “당신을 만나서 좋았고 즐거웠고 행복했다”고 말하리라. “못된 말이나 행동, 서운하게 했던 말이나 행동에 대해서 미안하다”라고 용서를 빌리라. “더 많이 사랑한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말하리라. 친구들에게도 같은 말을 해야겠다.
저녁에는 집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들과 조촐한 식사를 해야겠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음악을 듣고 책을 보리라. 남편과 동네 산책을 하며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눠야겠다. 잠들기 전에는 마지막 일기를 쓰리라. 아이들을 안아주고 남편에게 굿 나이트 키스를 하고 손을 잡고 잠자리에 들리라. 그리고 동이 터올 때쯤 새벽으로 가듯 생을 마감했으면 좋겠다.
훗날 시한부 인생을 살아간다면 모리처럼 내 장례식을 치러야겠다. 친척과 지인들을 초대한 즐거운 파티 같은 내 장례식을 치르는 상상을 해본다. 그런데 상상만으로도 기분이 이상해진다.
예전에 써보았지만 한동안 쓰지 않았던 묘비명과 유언장도 다시 써봐야겠다. 죽음을 잊지 않고 살면서도 삶의 의미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야겠다. 그리고 더 많이 사랑하면서 살자고 다짐해본다. 모리의 다음 말을 떠올리면서.
“인생은 밀고 당김의 연속이네. 자넨 이것이 되고 싶지만, 다른 것을 해야만 하지.... 상반됨의 긴장은 팽팽하게 당긴 고무줄과 비슷해. 그리고 우리는 대부분은 그 중간에서 살지.” 상반된 인생에서 이기는 쪽은 “사랑이 이기지. 언제나 사랑이 이긴다네.”
“루게릭병을 앓으며 배운 가장 큰 것은 사랑을 나눠주는 법과 사랑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