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머. 꽃이 피었네.”
주말농장에 꽃이 피었다. 지난번에 꽃을 보려고 남겨두었던 열무에서 꽃이 피었다.
“아이 예뻐라.”
벌써 꽃을 볼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꽃이 피었다. 꽃잎은 안쪽은 하얀색이고 바깥쪽은 연분홍색이다. 안쪽으로 노란 암술과 수술이 있다. 열무 잎 사이로 줄기가 높이 솟아 있고, 손톱만 한 꽃잎이 네 장씩 붙어있다. 꽃이 핀 곁 다른 가지에는 꽃봉오리가 올라와 다음 꽃을 준비하고 있다. 멀리서 보는데도 꽃향기가 몰려온다.
꽃이 피니 밭에는 이미 새로운 손님이 주인을 대신하여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얀 나비가 꽃잎 위에 앉아 날개를 퍼덕거린다.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카메라를 들이댔다. 나비는 인기척을 느끼고 포르르 날아가 버렸다.
“나비야. 가지 마.”라고 붙잡아도 뒤도 돌아보지 않는다.
꽃만 카메라에 담고 잠깐 딴짓을 하는 사이 나비가 다시 날아왔다. 다시 카메라를 들이대는 순간 또다시 도망가 버린다. 간신히 나비를 카메라에 담았다. 열무 꽃과 나비를 보고 무척 행복했던 5월 말 풍경이다.
6월 첫 주는 건너뛰고 6월 둘째 주에 농장에 방문했다. 그사이 날씨는 30도를 웃돌 정도로 더워졌다. 이번엔 언니와 함께 주말농장에 방문했다. 부지런한 언니 덕에 아침 다섯 시 반쯤 집을 나섰다. 교통 체증 없이 30여분 만에 농장에 도착했다. 언니와 나는 옛날에 어머니가 농사지을 때 새벽녘에 일 나가시곤 하던 때를 떠올렸다. 우리는 고생 많았던 어머니를 생각했다.
농장에 도착한 시간은 아침 여섯 시가 조금 지난 때였다. 농장에는 우리가 첫 손님인 듯 아무도 없었다. 농장에는 아직 아침햇살도 들지 않았다. 아침이슬을 머금은 초록의 식물들이 싱그럽다. 농장에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는 일들로 가득했다.
주말농장이 꽃밭으로 바뀌었다. 2주 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다. 전에 방문했을 때만 해도 몇 송이 피었던 열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었다. 가지를 길게 뻗어 한 구획을 차고 넘쳐 고랑을 넘어서 옆 구획까지 손을 뻗었다.
밭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식물들의 반란인가? 이것은 꽃들의 *소리 없는 아우성인가? 새로움이 뒤덮은 주말농장의 모습에 놀라울 따름이다.
“아휴 왜 이리 예뻐. 예쁘다. 예뻐!” 나와 언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었다.
열무 뿌리 일부가 땅 위로 튀어 올랐다. 중심 줄기는 거의 나무 수준으로 굵어졌다. 중심 줄기를 가운데 두고 수많은 잔가지들이 자랐으며, 잔가지 끝에는 열무 꽃들이 가득하다. 꽃이 얼마나 피었다가 졌는지 벌써 손가락 크기의 씨앗을 맺었다. 열무 씨의 겉껍질 끝이 뾰족하게 하늘을 향해 있다. 아직은 초록으로 이제 막 씨앗을 품은 듯하다. 열무의 잎사귀는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오직 꽃만이 눈에 들어찬다.
내가 카메라를 들이대며 사진을 찍는 동안 벌이 날아와 바삐 일을 시작했다. 꽃향기가 어찌나 진한지 벌들은 아마 향기에 취했을 것이다. 바삐 일하는 벌에게 카메라를 들이댔다. 벌의 모습을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카메라를 가까이했다. 이런 웬걸? 벌이 갑자기 나에게 달려들었다.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손위의 카메라가 흔들렸다. 민감한 벌이 위험을 감지했나 보다. 벌이 자신의 일을 방해하는 나에게 화가 난 것 같다.
누군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카메라로 찍는다고 했을 때 나도 싫을 것 같다. 벌에게 허락도 없이 사진을 찍으려 했으니 화가 날만도 하다. 초상권 침해? 벌의 공격에도 기어코 벌의 모습을 동영상에 담았다.
나비도 날아왔다. 지난번에 카메라에 담았던 나비인지 모르겠다. 이번에도 나비는 사진 찍을 기회를 주지 않고 멀리 달아나 버렸다.
한참을 벌과 나비, 열무 꽃과 대화를 나누고 곁에 눈길을 돌렸다. 노란 겨자채 꽃이 밭을 가득 채웠다. 겨자채 잎사귀 사이로 꽃대가 길게 올라와 내 허벅지까지 올라왔다. 노란 겨자 채 꽃은 유채와 프리지어 꽃을 닮았다. 겨자채 향기는 어떨까? 겨자에서 나는 쓴 향일까? 아 이건 모르겠다. 그냥 꽃향기다. 겨자채 잎은 이제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구멍 숭숭 뚫렸던 그 겨자채와는 완전 다른 모습이다.
겨자채 옆에 있는 치커리는 겨자 채보다 더 길게 자랐다. 족히 1미터는 넘게 자랐다. 줄기 사이사이에 여린 겨자채 잎이 달려있다. 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집에 와서 먹어보니 아직은 먹을만했다.
열무, 겨자채와 치커리가 이제는 농작물이라기보다는 정원의 꽃이 되었다.
흐드러지게 핀 열무 꽃과 하늘을 향한 열무 씨
다른 곳으로 눈을 돌려보았다. 열매채소인 고추, 가지, 토마토에도 꽃이 피었다. 고추는 하얀 꽃, 가지는 보라꽃, 토마토는 노란 꽃이다. 모종을 심을 때부터 꽃이 피었던 고추에는 열매가 몇 개 달렸다. 고추와 가지는 파종시기가 늦어서 그런지 많이 자라지는 못했다. 이웃 농부의 것은 성인이라면 우리 것은 초등학교 수준밖에 되지 않는다.
토마토도 벌써 여러 개의 열매가 열렸다. 토마토 역시 파종시기가 늦었지만 그래도 줄기가 많이 자랐다. 어머. 실수로 토마토를 잘못 다뤄 토마토가 떨어졌다. 토마토는 줄기의 아랫부분은 따주고 중심 줄기만 키운다. 토마토 줄기를 너무 많이 남기면 제대로 된 토마토를 보기가 어렵다. 토마토는 지지대를 잘 세우고 끈으로 묶어서 위로 잘 향하도록 해주어야 한다. 지난번 세워두었던 지지대에 파란색 끈으로 묶어주는 작업을 했다.
지난번에 쑥갓은 밑동을 바짝 잘랐는데도 무성하게 자랐다. 이번에도 가위로 밑동을 싹둑싹둑 잘라주었다. 몇 개의 쑥갓은 꽃봉오리가 올라오기도 했다. 꽃봉오리가 올라온 쑥갓은 꽃을 보기 위해 그대로 두었다.
상추는 양배추 꽃처럼 크게 자랐다. 상추 위를 잡고 아래로 훑어내듯이 상추를 따는데 우두둑 청량한 소리를 낸다. 하나의 상추에서 15~20여 장의 상추를 땄다. 올해 상추는 유난히 맛이 있다. 마트에서 사 먹는 상추와는 차원이 달랐다. 상추 줄기가 약간 두꺼우면서 씹을 때 아삭한 식감이 좋았다. 줄기에 적당히 물기를 담고 있어서 인지 청량감이 있다. 상추는 맛도 좋지만 변비에 특효약이다. 유산균을 따로 먹지 않아도 변비가 사라졌다.
깻잎도 무성한 그 잎을 자랑하며 은은하게 고소한 향을 풍긴다. 깻잎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향에 취할 정도다. 손으로 따고 나면 손에 깻잎 향이 가득 묻어난다.
열 맞춰 씨 뿌리기 한 당근도 제법 많이 자랐다. 이미 여러 번 솎음을 해 줬는데도 아직도 뵈게 자라고 있는 당근을 솎음했다. 당근은 손가락 굵기만큼 자랐다. 제법 알도 베어 맛도 들었다.
당근 옆에 근대를 보고는 정말 깜짝 놀랍다. 여린 시금치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배춧잎만 한 크기로 자랐다. 근대는 내손으로 사서 먹어본 적도 없고 키워 본 적도 없어서 자라는 모습이 더 신기했다. 근대를 수확하는 방법은 상추처럼 밑에서 줄기를 하나씩 바짝 따주면 된다. 한 잎 딸 때마다 서걱서걱한 소리가 들렸다. 친정어머니가 근대를 좋아하신다는 지인을 생각하며 많이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아서 마음이 흐뭇하다. 근대는 된장국을 끓여도 좋고, 살짝 대쳐서 무쳐 먹어도 맛있다. 근대 줄기의 아삭 거림이 참 맛나다.
당근 모종인 줄 알고 키웠던 식물은 자라는 잎이 이상해서 찾아보니 셀러리였다. 모종을 팔았던 종묘상에서 잘못 준 것이었다. 셀러리는 진한 초록색으로 허브 같은 향이 났다. 향이 좋아 쌈으로 먹어도 좋고 살짝 데쳐서 초장에 찍어 먹어도 좋았다.
거침없이 자라고 있는 치커리 사이와 꽃이 만발한 열무 사이에 자리한 당귀는 이들에 굴하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당귀는 그늘지고 습한 곳에서 잘 자라는 식물이다. 당귀는 손으로 만지기만 해도 한약 향이 손에 가득 묻어난다. 식탁에 다른 채소들과 함께 있으면 오로지 당귀 향이 식탁을 가득 채운다. 당귀를 데쳐도 향이 진하게 그대로 남아 있다.
고랑 사이사이에 있는 풀조차 싱그럽다. 모든 작물이 6월 햇살을 받아 너무나 건강하게 잘 자라주었다. 잘 자라준 식물들 덕분에 농부의 손길도 바빴다. 수확한 농작물은 어찌나 많은지 10여 가구가 나눠먹을 정도였다. 일을 마쳤을 때는 아침 햇살이 농장으로 들기 시작했다.
농장에서 만난 오늘의 기쁨을 어서 빨리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싶다. 그런데 글로 다 전할 수 있을까. 이거 그냥 보여줘. 그냥! 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은 유치환(1936년) 시인이 쓴 '깃발'이라는 시에 나오는 표현이다.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저 푸른 해원(海原)을 향하여 흔드는
영원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순정은 물결같이 바람에 나부끼고
오로지 맑고 곧은 이념(理念)의 푯대 끝에
애수(哀愁)는 백로처럼 날개를 펴다.
아! 누구인가?
이렇게 슬프고도 애달픈 마음을
맨 처음 공중에 단 줄을 안 그는.
#딸아행복은여기에있단다_하민영
#간호사의우아한사생활_하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