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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지 Mar 10. 2021

미눼리,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미나리는 어떤 맛, 어떤 형태의 {영화} 일까.


"저는 산문은 글쓰기의 기술이나 기교가 아니라, '느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느낌은 감성이 아니라, 내가 그걸 받아들이는 거죠. 저는 그게 쉽지 않다고 생각해요. 일상화 되어야 하고 그걸 자연스럽게 수용해야한달까. 어떤 루틴? 그런 게 되는 거죠. (음) 언론사 생활할 때 늘상 메모하던 습관이 있었는데요, 이제는 어플을 이용해서 하는 거죠. 에버노트 쓰다가 유료화, 그런 거 때문에 안 써요. 저는 네이버 메모장 씁니다. 편하고 그런 건 있는데, 그 때 한 번 유료화 얘기 나오길래 바로 접었어요. (절레절레)"


며칠 만에 클럽하우스 들어가 들어보는데, 초메가 베스트셀러 작가 (하지만 본인이 '진짜' 작가라고 생각하는 이들로부터 질시 섞인 비난을 받는) 의 '글쓰기에 관해서' 치고 너무 '슴슴'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긴 그의 "&&의 온도" 책 또한 딱 그만큼의 맛과 온도를 가졌었지.


작가의 목소리 또한 너무나 진지해서, 너무나 뻔한 내용을 마치 천지창조의 비밀을 바로 지금, 역사상 최초로 공개한 듯 압도적으로 진중해서 듣고 있는 순간 즉각적인 현실박리 현상이 일어날 정도다. 서점마다 '광고' 매대에 걸려 있는 작가의 세련된 미모와 도무지 매칭이 되지 않는 (내 기준에는), 중학교 시절, 단지 '문학을 가르치는 어른 남자'의 위치를 이용해서 세상의 모든 낭만을 내가 다 얘기해주마 -- 라는 태도의 국어 선생님, 교생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 


-- 하아. 나 또한 나의 '느낌'을 산문화 하고 있는 것 뿐이다. 어떤 이들이 그의 책을 사나 궁금했고, 어떤 진정성으로 그가 유사한 책을 계속 내고 있는 지 궁금했다. 그는 그의 책에 진심인 '편'이었구나.


유사품이지만, 아직 잘 씹히지 않고 있는 영화 "미나리"가 있다.


어제 합정동 롯데시네마에서 영화 미나리를 보았다. 


영화에 대한 혹평과, 수상에 대한 국뽕적 '비호' 호평이 조심스럽게 엇갈리는 가운데, 나는 이렇게 보았다. 공감 포인트도 있었고 실은 비공감 포인트가 더 많았긴 하지만, 이런 종류의 스토리텔링이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 필요성이 정당한 평가를 빗겨나가게 해주느냐, 그건 아니라는 데 동의하는 이들이 더 많겠고, 이미 다양한 평가와 소감, 감상들이 나오고 있으니 그 논의는 그 걸로 충분한 듯.


사춘기 시절에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가족과 함께 '기회의 땅' 미국으로 이민을 갔었고, 우연한 일치로 영화 속 장면과 마찬가지로 나의 가족 또한 바퀴 달린 집 ' 트레일러 하우스' 에서 살아본 적도 있다. 그 부분에 대한 감상은 나의 기억과 추억으로부터 소환한 지점들과 불일치해서 오히려 놀랐을 정도지만, 다른 부분들은, 특히 '미국 기독교인' '십자가'란 것을 두고 경험했던 '기이한' 경험들과는 겹치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영화를 보면서 내내 궁금했던 건, 저 건 직/간접 경험한 일이어서 (허구나 상상이 아니라) 감독, 작가에게 소중하게 느껴져서 내용에 집어넣었음이 분명한데, 그런 경험을 하지 않은, 못 한 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질까 하는 점들.


예컨대, 영화 속에 나오는 남서부 백인 '레드넥' 기독교인 '폴'의 행동들 말이다. 뭐랄까. 한국의 전통 신앙같은 맹목적인 면이 있으면서도, 결코 '기복적'인 의도로 점철되지 않고, 오히려 이타적인 면에만 초점이 맞춰 진, 다분히 이질적이면서도 인간보편성에 대한 믿음을 탐구하고 싶게 만드는 그런 만남들이.  내게도 있었다. 여러 이름들을 떠올리게 한다. 


미국 고등학교에 처음 등교했을 때 꿀먹은 벙어리로 앉아 있던 내게 다가 온 베티 젠슨. 나와 남동생은 그 학교에 유일한 동양인이었었는데 (나는 텍사스 어스틴 소재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악의적인 놀림을 당한 기억은 없다. 운이 좋았겠지만. 영화 속에서도 '칭챙총' 대사가 나올 때 저런 부분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기대하면서 봤다. 그 부분을 뻔하지 않게 처리한 것에 큰 점수를 주고 싶다. 


(할 말은 많지만 오랜만에 브런치에 긴 글을 써 볼 의욕이 생겨 그쪽으로 미루기로 하고.)


페친 분들의 포스팅, 댓글에서 호기심이 생긴 "빈센조" 를 2화째 보고 있다. 


빈센조 에 비하면 미나리는 진짜 이 맛 저 맛도 아닌, ‘형편없는 짜임새’, 희한한 마무리, 그야말로 슴슴한 맛의 대명사인 평양냉면에도 비할 수 없는 그 어떤 무언가가 아닌가. 그렇다고 대놓고 '신파' 라고 손가락질 할 수도 없는, 어이없는 맛, 질겅질겅한 식감, 영화에서 구체적으로 자태가 드러나지도 않는, 어떤 형체의 (상상만 할 뿐) 매력없는 식물같은, ‘비건’ 영화다.


상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그게 정치적이든, 제작자 브래드 핏의 이름값이든, 딱히 상관하고 싶지는 않다. 아는 척 할만할 전문성을 갖춘 바 없고. 윤여정 배우가 평소 연기력의 50% 도 발휘 못 했는데 저런 호들갑이라니, '버닝'에서 처음 본 스티븐 연이 또 다시 불길에 휩쌓이는 모습이 이상한 데자뷔였다, 한예리가 소비되었다 등등의 왈가왈부도 내게는 와 닿지 않는다. (데이빗 역의 꼬마 배우의 연기는 때때로 감탄하면서 봤다.)


'미눼리' (한국 영화가 아니라 미국 영화라는 의미의 발음법) -- '미나리'라는 작명의 상징성도 크게 다가오지 않았고 (과한 의미 부여가 아닐까 하는) 영화는 그저 뚝뚝 떨어진 에피소드들의 연결일 뿐 한국 대중이 익숙해마지 않는, 온국민이 거의 전문가가 되어 있다시피한 "영화의 마땅한 ‘완성도'에 대해" -- 이 부분, 논란의 지점이 있다는 건 충분히 알겠다. 


아는 만큼 보이고, 보고 싶은 만큼 이해하는 것이다.


반면 현재 내가 넷플릭스에서 보고 있는 '빈센조' 는....


딱 지금의 한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명징하게 보이고, 곧바로 이해되는만큼 아주 잘 보이는 작화, 작화법이다. (처음엔 이건 뭔가, 했더니만 바로 이해되고 바로 즐길 수 있게 됨. 이런 거구나. 당장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곳이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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