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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Mar 11. 2023

#10. <모순>

결국 우리는 불행과 행복의 굴레 속에서 갖지 못한 것을 탐하나, 양귀자


별: 4개 반



책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 속에서 극적인 요소들이 많이 있었지만 담담한 문체에 넘어가 그렇게 큰일이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묘한 감정. 결국 우리네 삶이란 다 그런 것인가 하는 마음.

다 읽고 나니 뭐라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만 가득했다



줄거리


한 20대 중반의 여성이 화자인 책.쌍둥이로 태어난 '엄마'와 '이모', 어린 시절 똑같은 삶을 나눠왔지만 결혼을 기점으로 엄마는 불행 일로로, 이모는 평온 일로로 간다.


주정뱅이에 가정폭력을 일삼는 상습가출자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대신해 시장에서 억척스럽지만 씩씩하게 살아가는 엄마, 철없고 여성편력이 심해 사고를 쳐 결국 감옥까지 간 남동생.


'내' 가족은 그림과 같은 이모네 가족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그런 와중에 내 인생의 부피를 키우고 제대로 한 번 살아보고자 결혼이라는 중대사에 온몸을 던져 내 옆에 있는 두 남자에 대해서 누구를 사랑하는가, 누구와 결혼할 것인가 끊임없이 고민하는 주인공.


책의 마지막 순간에 모든 것이 정해진다.





책을 쭉 읽으면서 한식집밥을 먹는 것처럼 엄청나게 자극적이지도 않지만 부담스럽지도 않고 속이 편한 듯, 찬찬히 차분하게 읽어나갔다.


그러면서도 주인공 화자인 '안진진'이 어떤 남자를 선택할 것인가,에 대해서 나도 함께 감정이입을 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을 하며..


작중에서 주인공 '안진진'은 내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말을 하며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밝히려 노력한다.


다만 제3자인 독자의 입장에서는 결말 직전까지는 아, 결국은 이 사람을 택하겠구나 하는 예감은 있었다.

왜냐면 나라면 그랬을 테니까.


결국 사람은 '더 옳은', '더 안전한' 선택이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 순간, 그 나이, 그 공기 속에서 내 마음이 시키는 대로 하게 되어있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한다.


그렇게 걷게 된 길에 끝이 불행이어도 적어도 돌아본 그곳에 후회는 없을 테니.






행복 일로를 걷고 있다고 생각한 이모가 자살을 선택한 것도, '안진진'이 결국은 사랑하는 '김장우' 대신에 안정적인 '나영규'를 택한 것도, 결국 내가 가지 못한 길에 대한 갈망도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부분에 대한 내용도 책에 나와있었고. 뭐라고 잘 쓰고 정리하고 싶은데 너무 거대한 감정 앞에서 말이 손끝에서 헤매게 된다.


또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도 계속 마음 먹먹함을 자아낸다. 결국은 만나지 못한 두 손이 영원히 마주하지 못한 '아버지'와 '안진진'을 나타내는 것만 같아서..





책 중간에 이모가 이현우의 '헤어진 다음날'을 좋아한다는 내용이 있어 그 구절이 나온 순간부터 노래를 재생하며 책을 읽을 때 동반자로 삼았는데 익숙한 이 노래도 가사를 곱씹으니 새삼 너무도 슬펐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꼭 그 노래를 함께 들으며 읽는 것을 추천한다.







내 마음대로 해석한 김장우의 전화 메시기 때문에 나는 쉽게 하늘색 전화기 앞을 떠날 수 없었다. 동전은 넘치도록 많은데, 뒤에서 빨리 끊어달라고 재촉하는 사람도 없는데, 조용조용 꽃가지는 흔들고 있는 라일락은 저리도 아름다운데, 밤공기 속에 흩어지는 이 라일락 향기는 참을 수 없을 만큼 은은하기만 한데......

- p79



사람들은 작은 상처는 오래 간직하고 큰 은혜는 얼른 망각해버린다. 상처는 꼭 받아야 할 빚이라고 생각하고 은혜는 꼭 돌려주지 않아도 될 빚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생의 장부책 계산을 그렇게 한다.

- p121



슬픈 일몰을 이야기하고 아름다운 비밀 반쪽을 나에게 나누어주던 아버지는 사라졌다. 나는 그것을 확인했다. 아버지 손과 내 손을 맞춰보았지만 맞지 않았던 것이었다. 병과 늙음이 아버지의 손을 축소시켜 놓았다. 아버지의 뼈만 남은 야윈 손가락을 힘들여 펴서 손바닥을 포개봤더니 두께는 고사하고 길이도 반 마디나 내가 컸다.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있다.


아마도, 우리는 영영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 채 헤어질 것이다. 왜 사랑하는 우리를 멀리하고 떠돌아야만 했는지 묻지도 못한 채 나는 아버지와 헤어질 것이었다. 어쩌면 바로 그것이 아버지가 내게 물려주고 싶었던 중요한 인생의 비밀이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p 294




나는 곧 결혼한다. 어머니와 이모에 이어 나도 4월의 신부가 된다. 물론 4월 1일 만우절은 아니다. 일 년 전쯤의 어느 날 아침, 불현듯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라고 부르짖었던 나의 다짐이 마침내 결혼이라는 실천의 단계에 이른 것이다.


그 다짐에 충실했던 일 년이었다. 살필 수 있을 만큼 다 살폈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다 생각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4월의 결혼식에 내 손을 잡아줄 남자는 그래서 나영규가 되었다. 일이 그렇게 되었으므로 '헤어진 다음날'은 나와 김장우의 노래가 되었다. 그러나 나는 헤어진 다음날들은 죽음뿐이라고 생각한 이모와는 달랐다. 나는 잘 견디었다. 김장우는 어떠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인간에게는 행복만큼 불행도 필수적인 것이다. 할 수 있다면 늘 같은 분량의 행복과 불행을 누려야 사는 것처럼 사는 것이라고 이모는 죽음으로 내게 가르쳐 주었다. 이모의 가르침대로 하자면 나는 김장우의 손을 잡아야 옳은 것이었다.


그러나 역시 이모의 죽음이 나로 하여금 김장우의 손을 놓아버리게 만들기도 했다. 모든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보였던 이모의 삶이 스스로에겐 한없이 불행이었다면, 마찬가지로, 모든 사람들에게 불행하게 비쳤던 어머니의 삶이 이모에게는 행복이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종류의 불행과 행복을 택할 것인지 그것을 결정하는 문제뿐이었다.


나는 내게 없었던 것을 선택한 것이었다. 이전에도 없었고, 김장우와 결혼하면 앞으로도 없을 것이 분명한 그것, 그것을 나는 나영규에게서 구하기로 결심했다.


그것이 이모가 그토록이나 못 견뎌했던 '무덤 속 같은 평온'이라 해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삶의 어떤 교훈도 내 속에서 체험된 후가 아니면 절대 마음으로 들을 수 없다. 뜨거운 줄 알면서도 뜨거운 불 앞으로 다가가는 이 모순, 이 모순 때문에 내 삶은 발전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우이독경, 사람들은 모두 소의 귀를 가졌다.

-p295~296


ㅡ<모순>에서 발췌



 왕씨일기의 블로그

https://blog.naver.com/medesu/223031874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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