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조금 관대하고 여유로운 느낌이 있어, 고3이어도 야자, 즉 야간자율학습을 특별히 강요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표면적으로는 수업이 끝나고 일정 시간까지는 자리를 지키며 자율 학습을 진행해야 하는데, 이유가 있다면 수업이 끝나는 대로 바로 귀가를 해도 괜찮은 그런 어중간한 시스템으로 대충 굴러가고 있었다.
매일 마지막 수업이 끝나면 담임 선생님 자리로 아이들이 일렬로 줄을 서서 오늘 내가 왜 야자를 빠져야 하는지 창의력 대회를 벌이고는 했다.
"어디가 아파요, 선생님."
"오늘은 집에 일이 있어요, 선생님."
기본적으로 알아서 해라라는 분위기라 구체적이지 않아도 적당히 말하면 보내주었는데, 나의 핑계는 언제나 한결같이 '도서관'이었다.
"오늘은 책을 반납하러 가야 해요, 아니면 연체예요, 선생님."
"오늘은 미리 예약해 둔 책이 도착해서 빨리 받으러 가야 해요."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계속 늘어놓았다고 생각되어 조금 부끄럽기도 하지만 나는 진심이었다. 정말로 빌려야 할 책과, 돌려줘야 하는 책들은 늘 있었다.
반복되는 나의 변명 아닌 변명이 조금은 질리셨던 것인지 평소 같으면 그래, 조심히 다녀와라 정도로 보내주셨을 선생님이 약간은 내뱉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너는 핑계가 도서관밖에 없니?"
조금은 들켰나,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도서관 이야기를 하고 야자를 빼먹었던 날들은 전부 진짜로 도서관에 갔기 때문에 부끄럽지는 않았다.
남아서 자율 학습을 하는 일보다도 나에겐 도서관을 가는 것이 더욱 중요했으니까 말이다.
망설이지 않고 당당하게 "네",라고 말하는 내가 웃겼던 건지 조금쯤은 귀여웠던 건지 선생님은 그 후로도 방과 후에 '도서관'을 향하는 나를 더 이상 이유도 묻지 않고 보내주셨다.
그렇게 나는 한동안 더 자유롭고 방치된 방과 후 도서관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