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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왕씨일기 Jan 02. 2024

2024년 01월 02일: 불행에 관대한

매일 쓰는 짧은 글



작년 10월쯤부터 써보기 시작한 다이어리. 거창하게 인생을 계획하고 그렇다기보다는 간단한 투두 리스트에 해야 할 공부의 순서, 시험일정, 매일의 간단한 리뷰 정도를 끄적여봤다. 그중에 하나로 쓰기 시작한 매일의 감사일기 + 그날 있었던 행복한 일 리스트. 이게 생각보다 어려워 매일 저녁 책상 위에 앉아 오늘은 어떤 즐거움이 있었는지를 되뇌며 끙끙거리기 일쑤이다.






어딘가에서 읽은 기억이 있다. 우울할 때는 종이를 반으로 접어 한쪽에는 내가 살고 싶지 않은 이유, 즉 나를 힘들게 하는 일들을 쭉 써보고 나머지 반쪽에는 내가 살아가야 할 이유, 내가 힘을 얻고 행복을 느끼는 요소들에 대해서 쭉 적어보는 연습을 해보라고. 그러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되짚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말이다. 


한 번이라도 해 본 사람이 있다면 알 것이다. 불행은 정말 누가 옆에서 그만 써!라고 말리고 싶을 정도로 술술 막힘없이 영원히 써내갈 수 있을 것만 같은데, 반대쪽으로 넘어가서는 딱히 쓸 말이 없어진다. 불행에 대해서는 사소한 것 하나까지, 오늘 먹었던 맛없던 직원식당의 메뉴, 간발의 차이로 놓친 전철까지 나를 괴롭혀 꾹꾹 눌러 적고 싶은데 내가 살아가야 하는 행복에 대해서는 뭔가 거창하고 큰, 남들이 들어도 멋지다고 해줄 만한 일들을 떠올려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람이란(아니, 나란 인간은) 알게 모르게 불행에게는 관대하게, 행복에게는 그렇게도 야박하기 그지 없을 정도로 빡빡하게 대하고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달을 수 있었다. 


왜 그렇게 된 걸까? 이것도 태어난 타고난 성향의 문제로 이런 경향성을 더 지닌 사람들이 더욱 그렇게 되는 걸까? 나이를 먹어갈수록 세속적인 성공에 의한 행복보다도(물론 그렇다고 그것들을 전부 부정하는 것은 절대 아니지만) 그저 행복할 줄 아는, 그런 습관을 가지고 행복에 관대한 사람이 계속 행복하다고 했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먹을 줄 안다고 행복도 행복해본 놈이 행복할 줄 안다는 것일까. 타고나길 우울과 좌절의 경향을 지닌 마음에 불순물이 낀 나 같은 사람은 틀려먹은 걸까 하는 습관적인 비난을 애써 애써 누르며 생각해 본다. 그래. 결국 행복은 바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발견하고 받아들이고, 매일이 수많은 불행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이 들어도 그 속에서 아주 콩알만 한 행복이라도 계속 찾아 헤매면서 이 '행복 근육'을 길러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지금 그 근육을 키우기 위해 근력 운동까지는 엄두를 못 내도 스트레칭 정도는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라고. 


오늘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다이어리 앞에 앉아서 감사의, 오늘 하루 행복했던 순간에 대한 글을 써보려 한다. 차라리 오늘의 불쾌했던 순간 리스트를 쓰라면 술술 써 내려갈 것 같은 나 자신에게 이제 그만 행복의 순간을 찾고 받아들이는 노력과 습관을 쌓아가자고 다독이며, 오늘도 그 많은 짜증의 순간 속에서 건져 올릴 수 있는 감사의, 행복의 순간을 찾아 멍하니 눈을 감고 하루를 되뇌어 본다. 그러면 정말 신기하게도, 꼭 하나라도, 그게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어 보여도 반드시 하나정도는 나오기 마련이다(정 쓸게 없다면 '감사 일기에 뭐라도 쓸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도로 퉁치는 뻔뻔함 정도는 장착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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