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으로 알아보는 명상(2) - 나는 재미로 명상한다.
누가 나보고 왜 명상을 하나고 물어본다면, 나는 나의 내부에서 스멀스멀 악이 받쳐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그만큼 이 주제는 내 골머리를 앓게 했고, 쉽사리 답을 얻을 수 없었던 힘든 시간을 내게 선사했다. 사실 사람마다 명상을 하는 이유는 다 다를 것이라고 생각한다.
철들기 전부터 명상 비스무리한 것을 이미 해오고 있던 나로써는 명상을 안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입장이다 보니, 필요에 의해 도구적으로 명상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이해는 되지만 공감은 어려운 편이다. 하지만 요즘은 아무래도 명상을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트렌드라서, 관련된 글이나 영상이 주는 정보들은 내가 왜 명상을 하는지에 대한 답이 되지는 못했다. 이에 답답함을 느껴온 지가 꽤 되었다.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파야지, 결국 나는 내 스스로 내가 왜 명상에 빠져있는지 답을 찾을 수 밖에 없다. 그러면서 내가 무엇인지 찾는 과정이 명상 아니겠는가? 고민해 본 결과 내린 결론에 따르면, 나는 재미로 명상한다. 재미로 명상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다음 내용을 참고하시라.
사실, 나는 '명상'이라는 것에서 이제 그만 헤어나오고 싶은 사람이다. 명상 말고도 세상에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은가. 일은 일대로 많고, 시간 나면 신경 써서 해줘야 할 다른 취미 활동도 많다. 관심 있는 운동만 대여섯 종목이 되고, SNS에 올릴 사진 찍으랴, 먹을 것과 입을 것에만 신경 쓰기에도 24시간은 짧다.
그 와중에 명상을 전파하는 입장에서 내 스스로가 명상을 하지도 않으면서 명상을 영업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생각에 '적어도 일주일에 몇 번', '오늘은 아니라도 내일은' 해야한다는 의무감과 부담감은 그것대로 가지고 있다. 명상이 좋다는 다른 사람들은 새벽같이 일어나 한시간이고 두시간이고 명상을 한다는데, 솔직히 말해 나는 그런 사람은 아니다. 필 받으면 일주일에 서너번 정도 각 잡고 하고, 평소에는 틈날 때 생각날 때 가끔 하는 정도다.
이 지경에 이르고 나니, 갑자기 명상을 이제 그만 내 인생에서 놓아주면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명상을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명상을 한다고 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로 인해 부담감까지 느끼는 것이라면, 명상을 하지 않는 것이 꽤나 괜찮은 결론이 아니겠느냐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든 게 작년 가을쯤이었다.
내 스스로 명상에 대한 회의감을 느낀 이유는 사실 '주변 사람들은 나만큼 명상에 관심을 갖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 글을 쓰면서 다시 생각해 보니 충격적인데, 나와 가까운 사람들 중에서는 어느 누구도 나와 함께 명상을 하지 않는다. 명상에 대해 약간의 호기심을 보이거나, 기회가 된다면 언젠가 알려달라는 정도의 반응이 최선의 반응이었고, 나와 함께 명상의 경험을 이어나가는 사람(명상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거나, 스스로 명상을 해보고 경험을 공유한다거나)은 아직 없다.
명상에 관심이 있다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눠보면, 신기할 정도로 다들 비슷한 논조를 유지하는데, 정리해보면 '명상에 대해 관심이 있어, 나름대로 시도를 해보지만 내가 하는 것이 명상인지에 대한 확신은 없어 그냥 모르는 사람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이다. 명상을 가르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아직까지는 자기 나름대로의 확신을 가지고 명상을 한다고 응답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명상에 대해 확신이 없는 사람이 명상에 시간과 노력을 투자할 리가 없고, 명상을 하는 이유에 대한 자신만의 결론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개인적으로 2010년대 후반부터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는 과정에서 제대로 된 휴식과 에 대해 관심을 가지며 자연스레 그런 흐름이 마음챙김이나 명상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가설을 바탕으로, 명상이 앞으로 사회의 주요한 트렌드가 될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으며, 즐겁게 그 흐름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실제로 그런 흐름이 있다는 말은 요란한 것에 비해, 내 주변에서 명상을 하는 사람을 찾은 적도 없고, 적어도 나처럼 명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서 이것저것 찔러보는 사람도 목격한 적이 없었다.
즉, 내 피부로 느껴지는 명상과 관련된 사회적 흐름은 여전히 없었다는 것이다. 캄, 헤드스페이스 같은 명상 앱을 쓰며 명상한다는 사람. 미라클모닝을 한다는 사람. 자기 전 명상을 한다는 사람... 인터넷에서는 넘쳐나는 그 사람들을 찾아다녔지만 정작 내 눈으로는 본 적이 없다. 자연스럽게 나로써는 '아, 사람들은 명상을 하지도 않고, 관심도 없구나.' 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다른 사람들이 명상을 하는 이유도 알 수 없었다. 명상을 하지 않는데 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답답한 마음에 오픈채팅방이나 다른 모임 앱을 통해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들과 소통을 해보려고도 노력했는데, 아쉽게도 나쁜 기억만을 남기고 말았다. 기본적으로, 다른 취미활동과 비교해 명상과 관련된 모임의 갯수 자체가 현저히 적었고, 그 안에서도 명상이라는 활동을 실제로 시간을 내어 일상과 병행하는 것 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
채팅방에 들어와 앉아있는 정도의 시간 투자가 최선인 사람들, '명상 한번 해봐야지' 마음먹은 당일에 들어와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그 다음부터는 잠수를 타는 딱 그 정도의 열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그 사이에 끊임없이 명상의 장점을 설명하는 한두 사람이 가끔 보이는 형상이었다.
나는 그 중에서는 '명상을 설명하는' 사람에 속할 텐데, 나도 참 까다로운 사람인 것이 그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는 섞이지 못하고 튀어나올 수 밖에 없었다. 명상을 한다는 사람들이 공유하는 특유의 <꾸며낸 듯한 답답한 느낌>에 숨이 막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뜬구름을 잡는 듯한 화법, 일상과 철저히 괴리된 상태에서 관념만을 따지는 과정에서 나오는 단어들, 실제로 이 사람들이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명상을 느끼고 즐기는 것 처럼 보이지 않는 행동들을 보면서, 나조차도 만약 이게 명상의 본질이라면 이렇게 되기 싫어서라도 명상이라는 것과 엮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다.
그런데, 나는 결국 명상을 포기하지는 못했고, 다시 여기에 와서 명상에 관련한 글을 쓰고 있다. 사실은 최근 어느 정도의 결론을 스스로 내린 상태에서 조금은 홀가분한 상태에 이르렀다. 시련을 이겨낸 결과 작은 성장을 이룬 듯한 느낌이다. 한 마디로 그 결론을 얘기하자면, 나는 명상이 재미있기 때문에 명상을 한다.
대학원에 와 명상을 다시 접하고, 이것을 어떻게 영업할까 고민하는 과정에서, 생각해 보면 나는 명상이 가지는 효과나 장단점 등을 수집하고 전달하는 데 급급했었던 것 같다.(앞써 작성한 글들이 뭔가 붕 뜨는 것 처럼 느껴지는 이유가 그것이 아닐까 싶다.)
쉽게 말해, '너도 명상 해봐, 재밌어!' 가 아닌, '너는 명상이 필요해, 명상은 이런이런 데 좋아.' 의 형식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명상을 설명했다는 것이다.
효능 및 효과에 미친 우리 민족 아니랄까봐 나 역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명상의 효능 및 효과에 집착하며 명상을 도구적으로 접근하고 있었고, 달리 생각해보면 내 사고의 기저에는 <명상이 재밌을 리가 없다>, <명상은 기본적으로 지루한 것이다> 라는 전제가 나도 모르는 사이 깔려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명상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 기다리고, 답답하고, 침착하고, 지루하고, 이완되는 느낌인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보통 뭔가 흥미있고 재밌는 것을 경험하면 가슴이 뛰고, 어쩔 줄 모르고, 빨리 하고 싶어서 발을 동동 구르는 역동적인 상태로 상상한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재미와 흥미를 명상과 연결짓는 게 익숙하지는 않다.
하지만 명상은(적어도 내가 정의하는 명상은) 그 자체로 재미있다. 훈련 과정도 재밌고, 그 상태를 지향하는 것만으도 기쁨을 느끼며, 그렇기 때문에 명상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그냥 재밌다.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실제로 명상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뛸 때가 있고, 아주 가끔이지만 명상을 하고 싶어서 명상을 하는 시간이 기다려졌던 적이 있다. (매일 그렇다고 하면 그 때부터는 거짓말이다.) 어제까지 안 되던 것들이 오늘 갑자기 되면서 희열을 느끼고, 명상을 하지 않을 때 인터넷에 명상 관련된 정보를 검색하고 명상에 대해 생각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취미활동이 그렇듯 말이다.
우리 주변의 다양한 취미활동을 생각해 보자. 웨이트 트레이닝이 될 수도 있고, 등산이 될 수도 있고, 가죽공예가 될 수도 있다. 커피나 사진이 취미일 수도, 맛집 탐방이 취미일 수도 있다. 커피나 사진의 효능 효과를 누리기 위해 취미활동을 하지는 않는다. 그냥 그 활동을 하는 순간이 재밌어서, 그리고 같은 활동에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 사이에서 교감을 느끼는 것이 좋아서 나의 시간과 돈을 들여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다.
흥미와 재미는 인간 행동에 있어 매우 강력한 동기로 작용한다. 물론 흥미가 동기의 전부를 구성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흥미가 아닌 다른 어떤 것이 개인의 행동에 있어 강력한 동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내가 재밌다고 느끼는 것'이 나의 일상, 특히 여가에 있어서 중요한 이유가 된다는 것은 너무 상식적이기 때문에 부연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더더욱 명상을 단순한 것, 그저 재미있는 것으로 접근하는 발상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지금 사람들에게 명상은 뭔가 너무 무겁고, 결연하며, 진지하다. 마치 새해가 되면 입버릇처럼 결심하는 금연, 자기계발, 책 더 많이 읽기, 운동하기와 같은 리스트 한켠에 '올해는 좀더 명상하는 사람이 되자' 같은 글귀로 존재할 것만 같은 느낌이다.
해탈, 열반, 초능력, 지복, 궁극의 뭐시기 같은 엄청난 인류의 유산을 '얻기 위해' 힘든 것을 참아가며 스승에게 배워야만 할 수 있는 고행으로 명상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장난처럼, 하나의 유희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별 것 아닌 작은 활동으로 '치부'하며 조금은 무시하는 마음으로 편안하게 시도해 보자. 그렇게 명상을 접하고 난 후에 명상을 계속 나의 취미 리스트에 둘 지 판단하는 것이 지레 겁먹고 담을 쌓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물론 명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사람들 사이의 합의(보리차를 내려 먹으며 커피를 마신다고 할 수는 없는 것 처럼)라거나, 명상을 즐기기 위한 보다 효과적인 방법, 그리고 명상을 오래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좋은 점들이 도구적 차원에서 여전히 얘기될 수 있다. 다만 재미와 흥미를 먼저 생각해 보고, 도구적 차원을 함께 생각해 보자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명상에 대한 진입장벽과 거부감 등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명상 자체에서 재미와 흥미, 도전의식을 느끼는 사람들을 찾고 싶다. 코너에 몰려 마치 동앗줄처럼, 인생을 바꿔줄 획기적인 도구로써 명상을 '떠받드는' 식의 스토리텔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다. 그냥 캐주얼하게, 다른 취미가 그렇듯 나에게 잘 맞고 재밌으니까 명상을 했으면 좋겠고, 그러면서 얻게 된 자신만의 경험을 공유하며 명상을 즐기는 사람들의 커뮤니티를 만들고 싶다.
명상에 재미를 느낄 것이 분명한데도 아직까지 그 맛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을 것이라고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확신하고 있다. <육하원칙으로 알아보는 명상> 시리즈가 그런 사람들에게 하나의 계기를 만들어 주는 발판이 되기를 기원하며 글을 마무리하고 싶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명상에 대해 저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명상과 관련된 사회적 흐름을 피부로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식으로 리액션을 보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