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으로 알아보는 명상 (3)
육하원칙으로 알아보는 명상 시리즈의 첫 내용으로 '명상은 무엇인가?' 에 대해 다뤘다.
그 때 내렸던 명상의 정의를 바탕으로, 명상에 흥미를 느낄만한 사람이나 명상을 잘할 것 같은 사람에 대해 알아보겠다. 말미에는 명상이 필요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짧게 다뤄보려 한다(명상이 필요한 사람에 대한 글은 나도 다른 글에서 이미 다룬 바 있고, 이미 다른 사람들이 많이 써놓았기 때문에 굳이 다뤄야 할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명상 활동에 있어, 메인 콘텐츠는 단연 '나에 대한 탐구' 라고 할 수 있다. 내 생각에 이완, 정서조절, 인지조절과 같이 현재에 이르러 밝혀진 명상의 긍정적 효과들이 아무리 대단해도 탐나는 것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효과들을 명상에 메인 콘텐츠로 간주해서는 안되며, 이런 효과들 또한 어디까지나 '나에 대한 탐구'를 하는 과정에서 오는 부산물 같은 것이라는게 내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명상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나에 대한 궁금증'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본다. '요즘 나 왜 이러지?' 라거나 '어떻게 생겨먹은 인간이길래' 와 같은 다소 과격하고 부정적인 궁금증도 좋고, 청소년기에 들어 한번쯤 해본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무엇이 진짜 나인가?' 와 같은 진지한 고민도 좋다.
실제로 내 경험을 돌이켜보면, 나 개인적으로 나에 대한 고민이 가장 치열했던 시기는 퀴어 이론, 젠더사회학 및 페미니즘 이론을 공부하던 대학교 학부 시절이었고, 내 스스로가 답을 내리는 데 성공한 지금, 돌아보면 명상이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당시 내가 하던 나에 대한 고민을 약간만 꺼내 이야기해 보겠다.
여러분은 스스로를 어떻게 정의하는가? 교차성 개념을 바탕으로 개인을 살펴보면, 나는 생각보다 다양한 정체성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역, 성별, 나이, 거주지, 학력, 인종, 직업, 소득, 특정 경험의 여부 등이 모두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고, (불가능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가 모두 동일한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더라도, 각 개인이 그 요소 중 무엇을 중심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설정하느냐에 따라 두 개인의 정체성은 전혀 다르게 설명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자신이 남성인 것이 너무나도 중요하여, 어떤 상황이든 남성성을 중심으로 설명할 수 있고(남자는 어쩌구, 남자라면 어쩌구, 남자가 아니면 어쩌구), 어떤 사람은 자신의 모든 경험을 설명하는 근간에 지역이라는 요소가 깊게 자리하고 있을 수도 있다(서울도 지방만큼 힘들어, 너네는 지하철 없어? 당일배송 안되는 곳이 아직도 있나? 올리브영 가서 사면 되지 뭘 걱정해?)
교차성 이론은 '나를 탐구'하는 데 꽤 괜찮은 도구라고 할 수 있다. 내가 할 일이란 그저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무엇인지 파악(1)하고, 그 요소들을 중요도 순으로 줄 세우기(2) 하면 된다. 머릿속에서 이런 작업을 끊임없이 하다 보면, 나를 구성하는 일종의 흐름이 무엇인지 파악할 수도 있고, 나에게 있어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은 덜 중요한지 알 수 있게 된다.
내가 어떤 관점을 중시하는지, 어떤 인식론(Epistemology)을 바탕으로 의사결정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대략적인 판단만 해도 충분하다. 이미 이전 세대의 철학자들이 ~~주의(-ism) 및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한 놈만 본격적으로 패고 난 결과물을 친절히 준비해 놓았기 때문에, 나는 쇼핑하듯 내게 잘 맞는 정체성을 갖다가 입기만 해도 충분하다.
위에서 한 일련의 얘기가 어렵지 않게 이해되고, 다소의 흥미가 느껴진다면 당신은 명상에 흥미를 느낄 수 있는 타입이다. 위에서 말한 방법들은 내가 지어낸 것이 아니라, 포스트 모너니즘 이후 철학까지 반영된 최신 트렌드를 바탕으로'나에 대한 탐구'를 하는 유명한 방법이며, 다른 많은 서적에서도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명상은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솔루션을 제공한다. 나를 알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단계별로 제공할 뿐만 아니라,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 사전에 필요한 TODO 까지 친절하게 제공하고 있다. 자아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런 류의 고민은 하룻나절만에 잠깐 하고 금새 답이 나오는 성격의 것이 아니다. 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뭔가 찜찜해서 넘어가지 않는 부분을 끊임없이 발견하게 되며, 가끔은 그런 고민들이 넘을 수 없는 벽처럼 공고하게 느껴져 시간이 필요할 때도 있다. 시간이 지나며 사유하는 과정에서 경험치가 쌓이고, 그 결과 사고력이나 인지능력의 향상이 있어야 해결되는 일도 있다.
현실적이고 체계적인 솔루션이 필요한 이유가 있다. 나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삶의 여유가 많으리란 법이 없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의 벽에 치어, 나에 대한 고민이 마냥 없이 살면 안되고, 슬슬 자기만의 철학을 갖고 사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지만(1), 막상 바쁜 일상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철학책 같은 것을 사서 읽기를 도전하지만 금새 복잡한 내용에 흥미를 잃는 자신을 발견(2)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여기 좋은 것이 있으니 한번 보십쇼, 근데 좀 복잡해요' 라며 명상을 들이미는 게 답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명상을 요소 별로 나눠, 명상 훈련을 먼저 하며 다음 단계로 명상 마인드에 대한 학습을 잠시 미뤄둘 수도 있고, 그러다 보면 명상 상태에 대한 감이 생기기도 한다. 그리고 각각의 과정에서 몰입감을 느낄 수 있다.
말이 좀 길어졌는데, 어찌 되었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명상에 흥미를 느낄 것 같은 사람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명상을 잘 하는 사람은 정말 납작하게 말하면, '똑똑한 사람' 이다. ('어떻게' 챕터에서 본격적으로 다루겠지만) 나는 명상을 '명상 상태', '명상 마인드', '명상 훈련'의 3요소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편인데, 일반적으로 명상을 잘 한다는 것은 내가 쓰는 용어로는 '명상 상태'에 잘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명상 상태'에 잘 들어가기 위해서는, 명상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인지능력(sustainable attention, attention span, sensory perception, meta cognition)을 기본적으로 확보해야만 가능한 것이다.
주의력이 좋고, 기억력이 좋고, 인지를 잘 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보통 '똑똑하다'고 말하지 않는가?
많은 초심자들은 '명상 상태'를 한 번 경험하는 것을 미션으로 삼아야 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위에서 말한 인지능력을 기르기 위한 목적으로 준비된 '명상 훈련'을 소화한다. 그 훈련의 결과 우리는 '고차원의 정신활동'을 할 준비를 하게 되는 것이고, 그 활동 중 하나인 '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한다는 것이 기본적인 명상의 논리구조이다.
하지만, 꼭 이런 관계(명상 훈련 -> 명상 마인드 -> 명상 상태)가 순차적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닌데, 개중에는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고차원의 정신활동'을 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들이 자신의 경험을 명상 훈련이라고 이름붙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명상의 본질과 다를 것이 없는 행위를 해낸 사람이라면, 명상 상태에 대한 경험이 없이도 그 사람은 명상 상태를 경험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예상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리고 이런 사람들은 간단한 설명을 듣는 것만으로도 명상에 대한 감을 쉽게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면 그런 '고차원의 정신활동'에 해당하는 것에는 무엇이 있을까? 지금 이 대목에서 생각나는 것은 '장승수' 라는 사람이다.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책을 펴내 뭇 학생들의 원망을 산 바 있으며, 이 사람이 공부했던 당시와 지금의 상황이 같다고 보는 것에도 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진짜로 공부는 쉽다' 같은 것이 아니라 크게 상관이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의 책을 읽어보면, 이 사람은 요즘 말로 '흙수저'의 삶을 살며 개천에서 용난 경험을 한 사람이다. 어려운 가정환경, 가장으로서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상황, 당연히 공부와 거리가 먼 순간을 살았던 이 사람의 경험은 책에는 비록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지만, 조금만 깊게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의 하루하루는 정말로 쉽지 않았을 것이다. 어찌 보면 공부가 가장 쉬웠다는 표현은 자신이 놓여있는 상황과 당시 자신이 해결해야 할 것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공부는 어렵지 않았다는 얘기로 이해될 수도 있다. 실존적 고민, 삶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야말로 '고차원의 정신활동'에 해당하는 것이고, 이러한 고민이 결국 '나에 대한 탐구'(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지금 나의 삶이 맞는 삶인가 등등)로 수렴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그렇기 때문에 나는 명상이 치열한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올 여지가 분명하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일분 일초가 아깝게 살아가는 미국의 기업가들이 명상의 효과를 일찍이 느꼈고, 애플, 구글 할 것 없이 실리콘 벨리에서 명상 붐이 불지 않았는가? 이들의 하루를 살펴본다면, 그들은 비록 명상이라고 표현하지 않더라도 명상의 본질과 다름없는 사고, 행위를 매 순간순간 해내고 있을 것이라는 데 나는 내기도 걸 수 있다.
일관되게 논조를 유지해 보자면, 명상이 필요한 사람은 '나에 대한 탐구'가 필요한 사람이다. 하지만 세상 사는 사람 중 어떤 사람이 자신에 대한 탐구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기준은 사실상 전 인류에게 명상이 필요하다는 공허한 메아리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요즘 대중들의 니즈를 바탕으로 명상이 필요한 두 가지 유형의 사람들을 꼽아 보겠다.
(1) 열심히 사는(?) 사람
요즘 외국의 명상 서적의 마케팅 포인트가 무엇인지 아는가? 실리콘 벨리의 누구누구가 명상을 했다, 스티브 잡스가 명상을 했다, 미라클 모닝의 위대함은 명상으로부터 시작한다. 인류의 대학자 누구누구가 매일 아침 명상을 하며 세상의 비밀을 깨우친다 등등..
그러니까, 가뜩이나 바쁘고 시간이 금인 사람들이 자신의 인적 자원을 보다 효과적으로, 효율적으로 쓰기 위한 훈련의 방법으로 명상을 활용한다는 것이다. 기업가, 활발히 활동하는 학자, 사업가 등등 굉장히 동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며, 파워풀한 서구적 이미지가 생각나는 이런 사람들이 굉장히 정적이고 차분하며, 동양의 신비를 좇는 듯한 모습으로 명상을 하는 모습이 반전매력으로 다가오는지 국뽕(동양문화뽕)의 일부로 다가오는지 모르겠으나, 요즘은 생산성이나 자기계발, 비즈니스 영역에서 명상을 접근하는 사람들이 많다.
명상을 도구적으로 접근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이런 접근이라도 해서 명상의 저변이 확대될 수 있다면 좋아해야 하는 것인지, 결국 명상도 특유의 인싸감성(정확히는 1세계 백인 남성성)에 휘말려버리고 있음에 슬퍼해야 하는지 가닥을 잡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나 스스로도 명상의 인지적, 정서적 효과와 그 원리를 검증한 심리학 및 인지과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명상에 관심을 가졌던 전적이 있기 때문에 마냥 부정하기에도 애매하고, 결국 효과는 필요한 사람이 잘 가져다 누리면 그만이라는 생각이다.
만약 자신이 주의력 개선을 바탕으로 한 인지능력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면(쉽게 말해, 멀티태스킹을 좀 더 잘 하고 싶다거나, 우선순위를 잘 세워 일을 처리하고 싶다거나, 최적의 의사결정을 바탕으로 자신의 사업을 성장시키고 싶다면) 나는 명상을 해보길 권장한다.
(2) 마음이 힘든(?) 사람
열심히 사는 사람들에게 명상을 권하는 것 만큼이나,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명상을 권하는 것 역시도 (진짜 솔직히 말해) 나는 다소 구리다고 생각한다. 요즘이야 많이 나아졌지만, 우울증, 불안증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호의랍시고 밖에 나가 사람을 만나 보라거나, 운동을 시작해 보라는 식의 조언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울증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정신건강의학과에 가서 전문의의 치료를 받아야 한다. 위염인것 같다는 사람에게 등산을 권하지는 않으면서 정신질환에는 거리낌없이 자신의 (근거없는) 의견을 밀어붙이는 사람들이 빈약한 논리를 채운답시고 운동 다음으로 마수를 뻗치는 것이 바로 '명상'이다.
물론 명상이 우울 및 불안증세에 대해 행동치료의 일환으로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처방에 활용되기도 하고, 가볍고 일시적인 형태의 우울 및 불안'감'에 대해서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얘기도 어디까지나 전문가의 입장에서 얘기되어야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전문가는 명상 전문가도 해당되지 않으며, 사람을 고치는 전문가인 의사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울과 불안을 심화시키는 기전 중 하나인 '반추'와 관련해서, 잘못된 명상 수행이 반추를 심화시켜 오히려 증세를 악화시킨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도 있으며, 명상에 호의적일 수 밖에 없는 나의 입장에도 우울과 불안으로 인해 이미 많은 정신자원을 비효율적으로 쓰고 있는 개인이, 그 상황에서 겉핥기로 명상을 접하는 것 만으로 마법과 같은 명상의 효과를 누린다는 것은 너무 행복회로를 많이 돌린 분석으로 봐야하는 게 맞다.
그러니까, 마음이 힘든 사람에게 명상을 권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제약조건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먼저 우울감 및 불안감이 일시적이고 가벼운 것이어서, 개인 차원에서 개선을 시도하는 것이 가능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과, 명상의 기전을 똑바로 이해하고, 명상같은 것을 제멋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제대로 명상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최근 마음이 힘든 사람들이 많이 접하게 되는) 마음챙김 명상과 관련해서 한 마디를 더 얹자면, 마음챙김 명상을 정말 명상의 차원에서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마음챙김'을 일종의 고유명사로써 다뤄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마음챙김 명상을 좋은 풍경을 보고 좋은 명언들을 들으며 좋은 생각을 하는 것으로, 그러니까 마음(일반명사)를 챙기기(일반..동사?)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이 인도 명상에서 많이 강조하는 삼매 기법이나, 불교 명상에서 보이는 사상적(종교적) 접근을 많이 덜어내고 서구적 시각에서 개편되었다고 해서, 명상이 갖는 본질까지 사라진 것을 '마음챙김'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그 자체로 좋은 도구가 될 수는 있지만 절대 '명상'으로 불려서는 안된다.
명상에 흥미를 느낄 것 같은 사람, 명상을 잘할 것 같은 사람, 명상이 필요한 사람으로 유형화하여 명상은 누가 하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해 보았다. 정리하자면, '나에 대한 탐구' 와, '높은 역량의 정신활동'의 두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로 명상을 접근하자는 이야기이다. '두 키워드 모두 21세기 인류에게 필요하지 않을 수 없지 않느냐?' 는 질문을 슬쩍 흘리며, 글을 마무리하도록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