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의 경계를 정해 드리겠습니다.
명상이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을 한 1년 째 하고 있는 것 같다. 최근 교통정리를 마치고, 특히 초심자의 수준을 고려해 흥미가 떨어지지 않고 일정 정도 이상의 정보가를 제공할 수 있는 형태로 명상의 정의를 구성했다.
사람마다 명상의 정의는 다를 수 있고 아마 다를 것이다.
특히 명상을 하게 되면 할수록, 세부 관심 분야가 달라질 것이고 명상의 확장 가능성은 무궁무진한 편이다. 하지만 어찌 됐건 초심자라면 한 분야의 시작점과 끝점, 그 점 사이를 이어주는 선의 모양이 어떻게 될지 대략적으로 알고 가는 것이 실보다 득이 있을 것이다.
여러분의 통념 속 명상과 내가 정의하는 명상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명상은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인류의 유산이다. 명상에 대한 정보는 특정 문화권에 국한되지 않은 많은 곳에서 이름은 다르더라도 명상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있으며, 시간적으로도 과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항상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잊을만 하면 등장하고 있다.
이런 명상의 특성이 뭔가 멋있고 그럴듯하게 보이기도 하지만, 명상이 오만 곳에서 다 언급되는 진짜 이유는, 명상이 인간의 정신 활동과 관련된 것이라면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처럼 어디에든 갖다 붙이이기 좋은 특성을 갖기 때문이다.
명상과 관련된 다양한 심리학적 연구를 진행한 Lutz 등에 따르면, 명상은 이완 촉진의 기술에서부터 건강을 증진시키기 위한 운동에 이르기까지 어떤 것이든 포괄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명상의 유형들을 제대로 구별하지 않고 명상이라는 단어를 쓰면, 마치 '스포츠'라는 단어를 쓰면서 그 안에 포함되는 수많은 종목(구기, 격투기, 체조, 보디빌딩 등등..)이 본질적으로 동일한 것처럼 표현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Lutz, A., Slagter, H. A., Dunne, J. D., & Davidson, R. J. (2008). Attention regulation and monitoring in meditation. Trends in cognitive sciences, 12(4), 163-169.)
최근에는, 특히 사이비 단체에서 부족한 자신들의 논리를 그럴싸하게 만드는 데 명상의 개념을 활용한 사례가 적지 않은데 그 중 최악의 단체를 꼽자면 오옴진리교를 들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의 종교명에 들어가 있는 '오옴'은 인도 명상에서 하나의 명상법으로 널리 알려진 만트라 명상에서 그 컨셉을 차용한 것이며, 너무나 당연하게도 만트라 명상에서 살생이나 테러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명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서 발생한다. '명상' 이라는 단어만을 들고 이 바닥에 들어왔다가는 길을 잃기 너무 쉽다는 것이다. 마음챙김 명상이 수입되며 명상에 대한 관심이 다시 시작된 요즘, 대부분의 명상 초심자는 힘들고 불안한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자 명상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취약한 그들의 상태를 비집고 들어와 그들의 간절한 마음을 특정 단체의 이익을 위해 오용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고(사이비 종교에 인권 착취를 당한다거나), 말도 안되는 희망(돈을 많이 번다거나, 로또에 당첨되게 해준다거나 하는)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결과, 많은 상식적인 사람들은 오히려 명상에 대한 흥미를 잃고 명상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강화하게 되는 것 같다.
멀리 떠날 것 없이 내가 그랬다. 명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보지만 정작 스스로가 납득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다. 분명 명상이 뭔가 좋은 것이라는 느낌은 오는데, 알 수 없는 어려운 단어들과 개념이 많아 헷갈리기 일쑤였고, 외부인에게 한없이 불친절하기만 한 설명 한 가닥을 붙잡고 감을 완전히 잘못 잡았던 적도 있다.
'금액은 전화 주시면 그 때 알려드릴게요'
마치 용산이나 동대문을 떠올리는 듯한, 명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기 보단 숨기며 호객하려 드는 것 같은 모양새에 정이 떨어지기도 했다. 이제는 시간이 흘러, 나 자신에게는 명상을 특정한 하나의 논리구조 안에서 설명할 수 있게 되면서, 나와 같은 불편함을 느낄 명상 초심자들을 위해 안내자를 자처하며 글을 쓰고 있다.
명상을 이해하고 명상의 장점을 라이프스타일의 일부로 끌어 와 적용하는 것이 결코 만만치는 않다. 생각보다 많은 시간과 에너지 투자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명상 초심자라면 본격적으로 명상을 하기에 앞서 명상을 하면 가게 될 방향과 도착지점에 대해 한번쯤은 러프하게 짚고 넘어가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이게 나에게 맞는 길인지 빨리 판단하여 계속 가볼 것인지, 아니면 멈추고 나의 소중한 시간을 다른 활동에 쓸 것인지 정할 수 있지 않겠는가? 지금 읽고 있는 이 내용이 정답이자 진리라는 보장도 사실은 없다. 하지만 내가 장담할 수 있는 것은, 이 글에 다른 목적이 숨어있거나, 영 틀려먹은 망상에 불과한 수준의 내용은 아닐 것이라는 것이다.
심호흡 한번 하고, 편안한 까페에 앉아 아래의 내용을 한번 읽어 보자.
1. '고차원의 정신활동'에 적합한 '특정 상태'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 상태가 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
2. 1을 바탕으로 '나'에 대해 보다 깊게 탐구하는 사고행위.
위의 네모 박스만 보고 한번에 명상이 무엇인지 이해한 독자가 있다면, 당신은 타고난 명상가일 수 있다(그 분께 나의 진심을 담아 박수를 보낸다.). 짧은 문장이지만 저 문장이 스무스하게 읽히기 위해서는 몇 가지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먼저, 따옴표 친 4개 키워드에 대해 충분한 이해가 필요하다. 어렵게 들어가면 한없이 어렵게 들어갈 수 있는 개념이기 때문에 최대한 간결하게 설명해 보도록 하겠다. 그리고, 2개의 문장을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먼저 4가지 키워드에 대해 알아보자.
'나에 대한 탐구'는 탐구가 심화될 수록 '고차원의 정신활동'에 속하게 된다. 정답이 있는 것도 아닌 수많은 질문들(어떤 것이 진짜 나이고 무엇은 내가 아닌가?)을 동시 다발적으로 생각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등장하는 단어 하나하나(나, 진짜 나, 어떤 것, 무엇, 가짜 나) 를 모두 정의해 놔야 하는 것은 기본이며, 워낙 복잡하고 신경 쓸 게 많다 보니, 이 생각을 하는 일이 마냥 기분좋은 일인 것은 아니다(왜 철학자들이 항상 인상을 쓰고 있는지 생각해 보자.) 심지어, 수 일에서 수 년에 걸쳐 고민한 결과 나에 대한 어떤 결론이 났다고 해서, 그게 꼭 답인 것도 아니고, 그 결론이 인생에 당장 도움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인지심리학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이러한 탐구행위를 위해 개인에게는 지각, 주의, 인지, 기억, 전반에 걸쳐 높은 수준의 인지 처리 능력이 필요하다. 컴퓨터에 비유하자면, 하드웨어 스펙(인지 처리 능력)이 딸리는 사람은 고사양 게임(나에 대한 탐구)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컴퓨터를 통해 키워드를 이해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고차원의 정신활동'을 고사양이 필요한 프로그램 실행이라고 생각하고, '나에 대한 탐구' 는 그 중에서도 게임을 실행하는 것이라고 생각해 보자.
만약 내가 고사양의 컴퓨터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 컴퓨터로 무조건 고사양 게임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컴퓨터가 너무 오랜 시간 켜져 있었다면, 혹은 게임과 함께 다른 고사양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고 있다면, 혹은 컴퓨터에 먼지가 너무 많이 쌓인 상태로 방치되어 있었다면, 충분한 사양의 컴퓨터로도 게임이 실행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것이다.
이럴 경우, 고사양 게임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컴퓨터를 준비시켜 최적의 상태에 놓는 절차가 필요하다.(먼지 청소, 컴퓨터 껐다 켜기 등등). 먼지가 청소되고, 리셋된 지 얼마 안된 상태가 위에서 말한 '특정 상태'인 것이고, 청소하기나 리셋하기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스스로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명상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이유는, 명상인 줄 알지만 명상이 아닌 상태/행위들과, 명상이 아닌 것 같지만 명상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상태/행위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헷갈림이 발생하는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 보면, 1번 문장이나 2번 문장 중 하나만을 명상의 정의로 생각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그래서 초심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문장을 2개로 나눠 놓았지만, 문장을 잘 살펴보면 사실 하나로 합쳐도 이해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는 문장이기는 하다.
명상인 것 같지만 실제로 명상이 아닌 상태/행위를 계속해서 컴퓨터 게임에 비유해 보겠다. 그래픽 카드 성능을 보기 위해 벤치마크를 돌리는 행위가 실제 게임과 다른 것이라는 것을 게임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게임을, 혹은 벤치마크 프로그램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벤치마크를 돌리며 나오는 화면과, 특정 게임 플레이 화면이 같다는 것만을 보고 벤치마크와 게임이 같은 행위라고 착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컴퓨터로 같은 사람이 같은 상황을 만들어놓고, 겉보기에는 같지만 실상은 전혀 다른 행위를 하는 것이 가능한 것처럼, 명상도 겉 보기에는 같아 보이는 행위(가부좌를 튼다거나, 눈을 감는다거나, 스님같이 하고 있다거나(!) 하는 겉보기)를 하더라도 그 내부에서는 전혀 명상이 아닌 사고와 행위가 발생하고 있을 수 있다.
1번 문장만을 명상으로 정의할 경우, 명상의 범위가 (인간의 모든 정신활동으로) 너무 넓어지며 명상에 대한 컨센서스를 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를 컴퓨터 사용에 비유하면, 게임을 목적으로 '게이밍 컴퓨터'를 맞춰 놓고, 그 컴퓨터로 정작 고사양 게임(나에 대한 탐구)이 아닌 다른 활동을 하는 것과 같다.
물론 웹서핑과 같은 간단한 작업이 고사양 PC에서는 훨씬 쾌적할 것이고, 영상편집이나 3D 모델링과 같은 작업에 필요한 사양과 게임에 필요한 사양이 동일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고사양 PC로 고사양이 요구되는 다른 프로그램을 돌리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포토샵이나 프리미어 프로를 돌리면서 '나는 지금 게임 중'이라고 이야기하게 되면 사용자들 간 소통에 문제가 될 수 있다.
2번 문장만을 명상으로 정의하는 경우, 명상이 가지는 경험과 체험의 성격이 희미해지게 된다.
사양을 맞추지 않으면 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다. 하지만 게임 플레이 영상을 보거나, 게임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게임에 대해 탐구해나갈 수는 있을 것이다. 1번이 배제된 2번은 실제로 게임을 하지는 않으면서 게임에 대한 정보만 꿰고 앉아있는 상황과 유사하다.
이런 사람들은 얼핏 보면 게임에 대해 굉장히 잘 알고 있는 것만 같고, 실제로 게임에 대해 잘 아는 것도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실제 게임을 하는 사람들과 비교하면 아무래도 손색이 있다. 그러다 보면 뜬구름 잡는 비현실적인 이야기나, 잘못된 정보를 이야기하게 될 가능성도 높다.
명상을 정의하는 일은 명상의 과정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이다. 명상에 관심있는 많은 사람들이 명상 책도 사서 읽고, 명상과 관련된 내용을 인터넷에서 검색하지만, 그 정보들은 명상의 백그라운드에 따라, 명상의 시기에 따라, 문화권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적혀 있다. 그러다 보니 나는 명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를 접하며 오히려 명상의 본질을 캐치하는 것이 실제로 어려웠다. 하나의 주제에 대해 여러 사람들이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있다면, 내가 해야 하는 일은 그 말들을 모두 다 살펴보고, 맥락을 따져내고, 거를 것은 거르고 남길 것은 남겨가는 탐구의 시간이 필요하다.
말장난 같지만 명상에 대해 이해하는 과정부터가 명상의 시작인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에 젖어있는 1세계 백인이라면 '쿠우울, 풔킹 어썸!' 어쩌고 하면서 역시 동양의 문화는 신비해 라는 생각을 할지 모르지만, 헬조선 거주자로써는 짜증만 날 일이다. 이런 직관적이지 못한 접근을 연속으로 겪다 보면, 괜히 명상이 커다란 벽으로 다가오게 되고(나는 명상에 재능이 없나봐, 훌륭한 사람들만 명상을 하는 건가봐), 명상의 핵심이 아닌 다른 좋은 점(마음이 편해집니다, 기분이 좋아집니다, 삶이 바뀝니다)에 집착하거나, 명상이 밑도 끝도 없는 영업(그냥 일단 한번 해보세요, 명상 좋은 것 다들 아시잖아요?)으로 느껴져 비호감 딱지를 붙이게 될 수도 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명상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행위라는 점이다. 과거에는 명상이 특별한 사람들만 할 수 있는 신비하고 전설적인 비밀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에 이르러서는 그 원리와 효과가 대부분 밝혀진 인간 행동이다. 누구나 쉽고 재미있게 명상을 했으면 싶은 마음, 그래서 나와 비슷한 영역을 공유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하는 것이 명상과 관련한 나의 가장 큰 동기가 아닐까 싶다.
설명하기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두 시간이고 세 시간이고 계속 말하는 것은 별로 어렵게 느껴지지 않지만, 압축하고 정제하는 것이 중요한 글쓰기, 그 중에서도 어떤 개념에 대해 정의하는 글을 쓰는 것은 쉬웠던 적이 없다. 보통 이해를 돕기 위해 추가되는 부연이나 예시는 자칫 개념에 대한 오해를 줄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줄일 수 밖에 없고, 문장 자체도 짧고 간결하게 끊어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결국 짧을 지는 몰라도 어려운 한자어 투성이인 문장들만 남는다.
게다가 이 바닥(!)에서 주구장창 쓰이면서 이상한 뉘앙스가 묻어 별로 쓰고 싶지 않은 단어들(수련, 수행, 차원, 깨달음, 고등, 정신, ...)이 많다. 그런 단어들을 최대한 피해가며, 단어 하나하나의 뉘앙스를 신경쓰려니 모자란 글쓰기 실력에 자꾸 멈칫하게 된다.
앞으로 다양한 방식으로 명상에 대해 설명하는 글을 꾸준히 써 보려고 한다. 오늘 글이 다소 붕 뜨는 현학적인 감이 있다고 느껴진다면, 부디 다른 글을 함께 읽어보며 한 두번만 더 이해를 시도해보면 어떨지 부탁드리고 싶다.
(궁금한 점에 대한 댓글이나 메일도 언제든지 환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