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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Han Jan 25. 2022

여러분은 이미 명상을 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명상이라 이름붙이지 않았을 뿐

(이전에 작성된 글을 재구성하여 새로이 업로드했습니다.)


들어가며


명상만큼 사람마다 정의나 필요에 따라 다르게 이야기되는 분야도 또 없는 것 같다.


누구는 진정한 마음공부, 개벽에 임하는 개인이 행하는

영적인(spritual) 신통력을 쌓는 공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누구는 마음챙김 명상이야말로 현대인을 위한 군더더기 없는 명상이라고 하거나

당장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사람을 위한 

치료방법 중 한가지로 접근하기도 하고


나 개인적으로는 재미와 취미 부분을 강조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그러면서 정작 '그래서 명상을 어떻게 하세요?' 라는 질문에

속 시원히 답해주는 사람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명상은 

굉장히 일상적인 것이며 누구나 할 수 있는(하고 있는) 것이며,

그렇기 때문에 이해하고 적용하기 쉬운 하나의 방향으로

명상의 정의를 수렴해놓는 것이 명상가들에게 내려진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한다.


나는 명상을

'나의 대한 탐구'와 관련한 '고차원의 정신활동'에 적합한 '특정 상태'에 자신을 위치시키고, 그 상태가 되기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상태 및 행위

으로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 

이 문장을 바탕으로 나는 누구나 일상적으로 쉽고 재밌게 명상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느 누구도 자기 스스로에 대한 관심이 없는 사람은 없다. 자기 자신에 대한 관심이 뒷전으로 밀리거나, 다른 강력한 자극(돈, 관계, 유튜브(!))에 잊혀진 채 그 관심의 존재를 까먹을 뿐, 누구나 인생을 살며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각자의 방식으로 조금씩은 해 나가고 있다.


또한, 잠을 자는 시간까지 포함해 24시간 내내 우리의 뇌를 활용해 어떤 형태로든 정신활동을 하고 있다. 그 활동 중에는 너무 간단해서 신경써보려 해도 신경 쓰는 것이 오히려 어려운 정신활동(시지각)도 있을 것이지만, 꽤 높은 사양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쉽게 해내지 못하는, 도전적인 정신활동도 있을 것이다. 


이런 일련의 활동을 명상이라 이름붙이지 않았고, 체계화해서 활동하고 있지 않을 뿐 

많은 사람들은 명상을 구성되는 핵심 개념들을 일상 속에서 실천하고 있다.


명상을 하지만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라니.. 이해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명상과 유사한 특징을 가지는 다른 활동이 또 없을까? 

고민해본 끝에 비유해 볼만한 다른 분야를 생각해 냈다. 바로 '스트레칭' 이다. 


Photo by Alora Griffiths on Unsplash

스트레칭과 명상


살면서 특기, 취미를 적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어떤 사람은 딱히 취미랄 것이 없어서 독서, 영화보기 같은 무난한 답안을 적어 내기도 하지만, 나는 오만가지 취미를 얕고 넓게 하는 사람이라 그 때마다 무엇을 적어야 할지 고민하는 편이다. 보통은 최근에 가장 관심있는 분야를 적어내곤 하는데, 최근에는 요가와 역도를 적어내고 있다. 


(명상은 특기에 적어낼 수 있는 분야이긴 하지만, 그렇게 써내고 나면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말을 걸지 않을 것 같아 적당히 분위기를 봐 가며 써내는 편이다. 결국 나와 얘기하다 보면 명상에 대한 나의 열정은 들통나곤 한다.)


그런데 그런 나도 '스트레칭' 을 하나의 취미분야로 설정해서 적어낼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을 방금 깨달았다. 다양한 운동을 접하면서 자연스레 스트레칭을 하고, 배우고, 그것에 투자했던 시간과 에너지를 생각해보면, 스트레칭이 내 취미가 될 자격은 충분한데, 스트레칭이 하나의 취미이자 특기가 될 수 있다는 생각까지 이어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이다. 왜 그럴까?


가장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이유는, 스트레칭은 배우지 않고도 할 수 있는 본능적인 행위라는 점이다. 누구나 피곤하거나 찌뿌둥할때 가르쳐주지 않아도 기지개를 편다. 신생아 때 부터 '쭉쭉이'를 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어린 시절 뻐근한 부위가 있으면 어렵지 않게 그 부위를 타게팅하여 늘려주면 금방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것을 본능적 스트레칭이라고 임시로 이름붙여 보자.)

오히려 아이들이 성인보다 잘 하는 몇 가지가 있다

하지만 본격적으로 몸을 쓰는 일, 대표적으로 운동 종목을 수련하는 사람들에게는 스트레칭 또한 '배워야 하는 어떤 것'이 되기 시작한다. 태권도를 배우면 고관절과 햄스트링을 위주로 스트레칭하고, 복싱을 배우면 어깨와 등과 같은 상체 스트레칭법을 배운다. 각 운동 동작에 최적화된 방식으로 여러 동작들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스트레칭은 여전히, 발차기와 펀치라는 주 동작을 위한 일종의 보조동작이며, 처음 운동을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메인 운동이 중요하면 중요했지 굳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은 일종의 시간낭비라고 느끼기도 한다.


아무래도 이때 하는 스트레칭은, '본능적 스트레칭' 보다는 높은 수준을 요할 것이다.

(이 파트를 초급자의 스트레칭이라고 임시로 이름붙여 구분해 보자.)

스트레칭을 위한 무에타이가 아닌, 무에타이를 위한 스트레칭이다

이 수준에서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경험하는 스트레칭은 거북목 교정, 골반 교정, 어깨 유연성 강화 등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유튜브 등에서 보고 시도한 사람들이 많을 텐데, 막상 해보면 생각보다 혼자 하기 어렵고, 효과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 레벨부터는 스트레칭에 있어서도 전문가의 지속적 손길이 필요하며, 수련자 본인도 생각보다 긴 훈련기간을 투자해야 한다. 즉, 액세서리, 선택, 보조의 느낌이 아닌 일정 수준의 양적, 질적 투자를 요구하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대충 감이 올 것이다. 중급자의 스트레칭이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은 이 시기 즈음 스트레칭이라는 장르 자체에 대한 전문성이 붙으며 함께 일종의 흥미, 매력을 느끼기도 한다.

정적 스트레칭과 동적 스트레칭을 구분하거나, 근막이완, 혹은 도수치료 같은 세부 분야를 키워드로 정보를 찾아보고 스스로 연습해 보거나, 불편한 친구들을 찾아 마사지를 해 주기도 한다.


(출처 마사지볼, 폼롤러:휘니스포츠 /그라스톤: 수드)


같은 동작이더라도, 특정 운동의 보조적 동작으로 스트레칭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컨디셔닝의 관점에서 스트레칭을 바라보면서 일종의 '주객전도'를 경험하는 것이다.


몸의 움직임을 이해하기 위해 해부학도 공부해 본다거나

모르는 사람이 보면 똑같아 보이는 폼롤러를 종류 별로 여러 개 사기도 하고, 

스트레칭을 본운동보다 훨씬 열심히 하기도 한다.


이런 사람들은, 마치 태권도나 복싱을 배우듯

스트레칭 기술 하나하나를 전문가, 코치에게 찾아가 배우게 되고

돈을 주고 세미나, 레슨을 듣는다.

(이 때부터는 스트레칭의 고급자 단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스트레칭을 하나의 독립된 분야로 보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똑같은 '스트레칭'이라도 내가 어떤 레벨에 있는지, 나의 관심도가 어디까지인지에 따라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것에서 돈을 주고 어렵게 배워야하는 것 까지 접근방식이 천차만별이 될 수 있다.



명상의 단계


명상도 스트레칭과 다를 바 없다.

사람들은(마치 본능적 스트레칭 처럼) '본능적 명상' 을 한다. 어디서 배우지 않고도 인지발달의 일정 단계를 지나면, 자아 개념이 생기고 남과 나를 구분하기 시작한다. 이것을 구분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에 대한 탐구가 시작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비단 나를 탐구하기 위한 목적이 아니더라도, 다양한 인지적 기제를 활용하여 보다 더 나은 정신활동을 하기 위해 많은 전략을 개발해 나간다. 


하지만 어느 시점이 지나면, 이러한 '본능적 명상'으로 해결할 수 없는 (스트레칭으로 치면 거북목이나 어깨말림 같은) 문제가 개인의 정신에 발생한다. 나에 대한 탐구가 어느 수준 이상으로 올라가지 않으면서, '나'가 아닌 것들을 나라고 생각해 끌어앉고 낑낑대며 산다거나, 더 빠르고 효율적인 업무 생산성 증대를 원하는 데 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인지능력이 충분히 따라오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하게 된다. 혹은 우울과 불안 같은 정서조절이 원활히 되지 않아 자체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순간을 경험할 수도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도구적 측면에서 명상을 찾기 시작한다. 내가 처한 문제, 내가 당면한 이슈를 처리하기 위한 스킬, 기술로써 명상을 찾는 것이다. 명상의 효능과 효과를 검색하며, 명상을 하면 이게 좋다는데, 이게 나아진다는데.. 마치 홍삼 먹듯이 명상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자기의 필요에 따라 명상을 배워보기 시작한다. 정서 조절이 필요한 사람은 그와 관련된 명상법을 찾고, 믿음과 신앙이 필요한 사람은 귀신같이 명상에 그러한 부분만 찾아서 명상을 믿어가기 시작한다. 애초에 본능적 명상조차도 충분히 잘 되지 않은 사람들은 명상이 가지는 어두운 단면, 그러니까 비상식적이고 비과학적이지만 달콤한 말을 늘어놓는 부분에 코가 꾀어 명상이 아닌 것을 명상이랍시고 열심히 하기도 한다. 여튼 나는 이 단계가 보조운동으로 스트레칭을 하는 단계쯤과 비슷하다는 입장이다.


이 시기를 지나면, 명상 자체에 대한 관심, 혹은 애정이 생긴다. 보조적 측면, 도구적 측면에서 한 단계 나아가, 명상 자체에 대해 매력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명상을 하는 과정에서 긍정 정서와 연합이 되어서일 수도 있고, 적절한 보상을 받으며 명상에 대한 정적 강화가 일어난 것이 이유일 수도 있다. 


이때쯤 되면 일상의 많은 것들이 명상의 영향을 받게 되기도 한다. 명상 하는 사람 특유의 마인드가 자리잡으면서, 명상 해본 사람들끼리 통하는 것들도 생길 수 있고, 명상을 하는 것이 노력이나 부담보다는 자연스럽고 편안한 것으로 자리잡게 된다. 예전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길가의 '명상'이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고, 명상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거나, 명상 관련 도구를 사 모으기도 하고, 틈날 때 유튜브에 명상을 검색해관련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다.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2022년 현재 대중들은 아직까지 본능적 명상의 단계에 머물러 있고, 도구적 측면의 명상 단계를 갈까 말까 갈팡질팡하고 있는 것 같다. 꽤 많은 사람들이 도구적 명상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지만, 아직까지는 명상 자체를 즐기거나, 명상에 대한 컨센서스가 충분히 자리잡지는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세상은 점차 고도화되고, 명상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레벨업 할 날도 머지 않았다는 느낌도 동시에 느끼고 있다.



명상이라고 이름만 붙이면 된다


기지개를 펴고 있는 부모님에게 '스트레칭 할 줄 아시냐'라고 물어보면, 대부분 '난 그런 건 잘 모른다' 고 할 것이다. 혹은 고난이도의 동작들(다리찢기라든가, 골반 누르기 자세 같은 것)을 스트레칭으로 생각하고 계실 수도 있다. 하지만 아무리 이분들이 스스로 '나는 스트레칭을 잘 모른다'라고 말씀하셨다고 한들 막상 기지개는 일상에서 항상 어렵지 않게 펴고 있었다는 점에서 이 분들은 스트레칭을 할 줄 안다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하지 않을까?

Photo by BR on Unsplash

부모님의 입장에서도 '기지개가 스트레칭이다' 라는 것을 알고 나서는

그 다음부터 그들의 반응도 달라지게 될 것이다.

('응, 나 스트레칭 할 줄 알지.')


초심자들에게 명상을 설명할 때도 똑같은 일이 발생한다.

내가 보기에는 살면서 이미 명상 상태를 경험한 사람인데,

명상을 해봤냐고 물어보면 '저는 명상을 해본 적이 없다' 고 대답한다.

명상 앱을 써본 적도 없고, 명상 자세도 모른다고 하면서 말이다.


명상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미 '본능적 명상'의 단계를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것이 분명하기에, 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제 그만 명상에 대한 경계를 거두고 그냥 한번쯤 해보라고 권하는 편이다(만약 아직 본능적 명상 단계도 제대로 경험하고 통과하지 못했다면, 그건 진짜 큰일이니까 이러든 저러든 명상을 시작해야 한다고 권하기는 할 것이다.). 


특히나 이미 일상에서 나와 관련된 고차원의 정신활동을 싫든 좋든 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 무의식적으로 명상을 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는데도 단지 그 행위를 명상이라고 이름붙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생 '나는 명상을 해본적도 없고, 할 일도 없을 것이다'고 생각하며 산다면, 그건 너무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마치며


사실 이렇게 설명을 해도 사람들은 여전히 명상에 대한 감을 잡지 못한다. 뭔지 모르겠는 것을 자꾸 해보라고 하는 사람에게 약간의 짜증도 느낄 수 있다. 명상에 대한 감을 잡기 위해서는 명상을 뭉뚱그려 이해하기 보다, 명상을 행위의 차원과 상태의 차원의 두 차원으로 나눠서 이해하는 것이 좋다.


나를 탐구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 나를 탐구하는 행위를 하는 것이 명상이다. 이것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계속 명상에 대한 관심을 유지해 주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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