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하원칙으로 명상 이해하기 마지막
앞의 1부에서 소개한 명상 상태, 명상 마인드에 이어, 오늘은 명상 훈련에 대해 소개하는 날이다. 시리즈가 끝날 시점이 다 되어 이 챕터를 쓰게 되었는데, 그 만큼 시간을 들여 열심히 준비한 내용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명상을 하는가, 실제로 명상을 할 때 내가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은 내가 명상을 처음 접했을 때 가장 궁금했던 내용이기도 하고, 열심히 기존의 자료를 뒤졌으나 만족스러운 결론을 얻지 못했던 부분이었으며, 이것에 대한 답을 내린 순간이 명상에 대한 큰 깨달음을 얻는 날이기도 했다. 나름대로 치열한 노력의 결과로 정리하는 데 성공한 내용이니만큼, 명상에 관심이 있는 초심자 여러분들께 어서 빨리 공유하고 싶다.
앞서 명상 상태에 대해 설명한 것을 떠올려 보자. 삼매, 선정 등으로 표현되는 명상 상태 1은, 일상을 살면서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상태이다. 일반인이라면 보통 잠들면서야 명상 상태1을 우연히 경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인이 일생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항상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만 해도, 그 난리를 치며 명상 훈련을 하고도 (4단계로 나눠 표현되는 선정을 기준으로) 4선정까지 경험한 적은 손에 꼽는다.
만약 정말 아무 노력 없이 명상 상태 1을 경험할 가능성을 굳이 수치화 한다면, 나는 0.3%도 안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1년 약 300일동안 잠 자면서 한번을 경험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실, 아무런 준비 없이는 10년 매일같이 잠들면서 1번 경험할 지 모른다는 게 내 생각이다.
명상 상태를 인간의 특정한 정신 상태로 정의할 때, 인간 원리를 바탕으로 그 특정 상태를 의도적으로 유도할 수 있는 커맨드(command) 세트를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위의 가정이 명상 훈련의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명상 상태를 올바르게 정의하고(1), 그 상태와 관련된 인간 원리를 제대로 파악한 뒤(2), 그 인간원리와 관련 있는 과제(task) 세트를 개발한다면(3), 명상 훈련과 명상 상태 사이의 유의미한 관계가 생겨, 훈련을 잘 할 수록 명상 상태에 보다 더 잘(더 쉽게, 더 자주) 진입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의지를 바탕으로 명상 상태에 쉽게, 자주 접어들기 위해 필요한 인간 요인은 무엇일까?
먼저 '주의 조절 능력'을 꼽을 수 있다. 많은 명상 연구에서는 인간의 주의 기제와 명상 간의 연관성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주의 조절(focused attention, open monitoring) 및 지속된 주의(sustained attention)이 명상 상태와 관련 있을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많이 있는데, 이를 바탕으로 하면 주의 조절 수준을 높이는 것이 명상 상태를 위한 구체적인 스펙이라고 가정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러한 주의력은 인간의 인지능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으며, 우리가 하는 수많은 인지처리(지각, 정서, 운동, 기억, 사고, 의사결정)능력의 바탕이 된다.
두 번째로는 '감각의 왜곡'이다. 이미 지각심리학 연구를 통해 인간은 외부 자극을 보이는 것을 그대로 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자체적인 정보처리의 결과로 변형하여 받아들인다는 것이 밝혀진 바 있다. 이 때 인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극은 시,청,미,후,촉의 오감이고, 이 외부 감각을 인간 각각이 내부적으로 지각하는 과정에서 정보는 균질하지 않고 변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왜곡은 일반적으로는 대단할 것이 없는, 일상 속에서 늘상 경험하는 일인데(착시현상이나 맹점현상 등으로 검색하면 더 많은 정보를 알 수 있다), 이러한 왜곡이 극단적으로 진행될 경우, 우리는 현실세계의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환각까지도 경험할 수 있게 된다.
명상 상태 1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체험은 우주와의 합일이라거나, 신통력의 구현, 신내림의 증거와 같이 반복불가, 검증불가, 실험불가 한 비과학적인 방식으로 설명하기 보다, 인간의 인지적 왜곡이 일어난 사례로 받아들이는 것이 훨씬 훨씬 더 합리적이다. 오컴의 면도날을 생각하자. 쓸데 없는 것이 가정되지 않을수록 진실에 가깝다.
'주의 조절'과 '감각의 왜곡'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가 명상 훈련의 핵심이다. 주의 조절 능력을 길러주고, 감각의 왜곡을 의도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만드는 과제들을 가져다가 명상 상태에 진입하기 전 훈련을 한다면, 이런 과제들에 익숙해지고 과제를 더 잘 수행하게 될 수록, 명상 상태에 들어갈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는가?
이 정도의 전제를 바탕으로, 우리는 같은 컨센서스를 가지고 테이블에 앉아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어떻게 훈련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까? 이렇게 훈련을 하고 들어가는 명상 상태는 그래도 균질한 상태라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여기까지 이해했다면, 명상 훈련에 대한 정의를 한 문장으로 소개할 수 있다.
명상에 적합한 신체(1)를 만들고, 명상 상태(2)에 도달하기 위해 하는 특정한 행동들(3)의 모음
명상에 적합한 신체란, 주의 조절 능력과 감각 왜곡 능력이 충분하게 받쳐주는 신체를 의미한다. 사람마다 타고난 것이 다르고, 살면서 경험한 것이 다르기에 누군가는 별다른 훈련 없이도 이미 명상을 경험하기에 충분한 스펙을 확보하고 있을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다소의 노력을 투자해 이러한 인지 능력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명상의 경험 외에는 필요없는 시간 낭비는 아닌 것이, 위에서 소개했듯 주의 조절능력은 인간이 일상 속에서 늘 의식적으로 수행하는 수많은 정신활동, 쉽게 말해 머리로 하는 일을 잘 하게 만드는 기본 단위라고 이해해도 무방하다. 그러니까 주의 조절 능력의 증진은, 명상 뿐만 아니라 나의 업무 생산성을 늘려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명상 상태와 관련해서는, 명상 상태 1 뿐만 아니라 명상 상태 2도 관련이 있다. 명상 상태 2는 명상에 적합한 신체를 만들고 나면 발현되는 일종의 패시브 스킬이라고 이전 글(명상, 언제 하는가)에서 설명한 바 있다. 내 신체 능력이 받쳐 주고 효율적으로 작동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가용 자원에 여유가 생긴다면, 긴장될 때도 이완을 유지할 수 있고, 나를 둘러싼 다양한 사건을 보다 정확하게 판단할 수 있으며, 그러다 보면 당연히 좋은 결과를 낳는 행위를 하게 될 것이다. 이런 당연한 일상의 상식을 불교에서는 정견, 정사유, 정업, 정념과 같은 팔정도로도 표현하는 것 뿐이다.
그러니까 명상 상태 1의 경험 유무가 명상에 적합한 신체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명상에 적합한 신체라는 표현 자체가 명상 상태 1의 경험을 위한 하나의 조건 이라는 점을 이해하면 된다.
마지막으로 특정 행동들이란, 주의 조절과 감각 왜곡을 훈련할 수 있는 행동이라면 무엇이든 가능하다. 좁게는 아주 간단한 task(촛불 잔상 지각하기, 난수 배열하기)에서 부터, 여타의 다른 취미활동(클라이밍, 스도쿠, 러닝, 카드 외우기)을 통해서도 증진 가능한 여지가 있다. 그저 내가 명상에 취미를 붙여, 이러한 활동을 명상 역량 강화의 측면에서 이름을 붙일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만 다를 뿐이다.
일상 훈련이든 전지 훈련이든 훈련의 핵심은 '주의 조절 능력'과 '감각 왜곡 능력'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명상 상태에 필요한 신체 역량이기 때문이다. 이 대전제에서 벗어나지만 않는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훈련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 가능하다.
지금 소개하는 것은 가장 본질적이고 핵심에 가까운, 작은 단위의 훈련만을 소개하지만, 여러분은 명상 훈련의 원리만 이해한다면 여러분의 다른 취미활동(독서,등산,요가,다도,러닝,파워리프팅, ...)을 하면서도 얼마든지 명상 훈련의 맥락을 유지하며 명상 능력을 개발할 수 있다. 여러분이 스스로 자신만의 훈련 task를 개발할 수 있다면, 나는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을 것이다. 부디 스스로 실험해보고 나에게도 자신만의 노하우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앞선 글(명상, 언제 하는가)에서 각잡고 명상하기와 일상에서 명상하기의 두 방식을 소개한 바 있다. 각 잡고 명상하기를 할 때 여러분이 머릿속에서 실제로 수행해야 하는 것들을 나는 전지 훈련(전지 훈련은 보통 날 잡고 특정한 장소에 이동해서 하는 거니까)이라고 이름붙였고, 일상에서 명상하기를 할 때 여러분들이 할 행위들을 일상 훈련이라고 이름 붙였다.
명상 훈련 : 일상 훈련
일상 훈련의 경우는 어쨌든 일상을 영위하며 훈련을 해야 하니, 감각 왜곡보다는 낮은 단계에서 훈련이 필요하다. 감각 왜곡에 앞서 필요한 것은 감각 지각이다. 우리는 많은 정보를 의식하 영역에서 암묵적으로 처리하고 있다(계단을 걸으면서 계단의 높이와 발의 위치, 무릎의 각도를 일일히 의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생각해 보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인 정보처리를 의식의 영역으로 끌어올려 지각하는 것이 감각 지각이다.
일상에서 접하는 시각 정보, 청각 정보, 촉각 정보, 내부 감각 등에 의식적으로 나의 주의를 기울여 보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마음챙김 명상에서는 바디스캔이니 건포도 명상이니를 하는 것이다. (건포도가 명상의 본질이 아니었던 것이다!) 건포도에 특수한 에너지 파장 주파수가 있어 그것을 통해야만 명상의 비밀에 접근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건포도 명상의 의미는 건포도를 접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암묵적으로 처리해버렸던 수많은 감각정보(냄새,질감,형태,촉감, ..)를 여러분의 의식적 주의에서 처리해 보라는 아주 간단한 원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건포도가 아니라도 지금 여러분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물건들을 하나씩 지각해 보는 것도 얼마든지 좋은 명상 훈련이 된다.
여기에 한 가지 더 추천하는 것은, 사진 기억을 연습해 보는 것이다. 나는 기억력이 굉장히 나쁜 편이다. 눈으로 본 모든 것을 마치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사진 기억은 경험해 본 적도, 그 근처에 가본 적도 없는 사람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진 기억은, 시각장에 담긴 여러 물체의 모습을, 눈을 감고 나서도 마치 사진처럼 기억해보는 연습을 의미한다.
재생 중인 영상을 일시정지 하고, 그 영상을 사진처럼 기억해 눈 앞에 떠올려 보는 연습을 한다고 이해하면 된다. 이 역시도 주의 조절 능력, 그 중에서도 주의의 지속과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는데, 우리는 사람이지 사진기가 아니기 때문에 사진과 똑같은 원리와 방식으로 기억을 할 수는 없지만, 하나의 비유로써 사진 기억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명상 훈련 : 전지 훈련
전지 훈련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감각 왜곡을 훈련한다. 감각의 왜곡이라고 하니 환각, 환시, 환청, 더 나아가 조현병과 같은 무서운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을까 걱정된다(실제로 어떤 분이 이런 식으로 표현한 적이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것이, 여러분이 매일 자면서 꾸는 꿈이 바로 환시와 환청, 환각의 향연이라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세상에 없는 것을 보고 듣고 느끼는 것이 꿈인데 꿈은 잘만 꾸면서 감각 왜곡은 무서운 초현실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실제로 나는 전지 훈련의 많은 방법들을 자각몽 훈련에서 차용해서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자각몽 형식 중 와일드 방법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현존하는 수많은 명상법 중 가장 원리에 기반하고 효과적으로 삼매를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굳이 나의 훈련 방식을 참고하지 않고, 자각몽의 와일드 방법을 이용해 훈련을 해도 전혀 상관이 없다(물론 크고 작은 추가 설명을 바탕으로 자각몽을 접근해야 여러분이 경험한 것이 명상과 관련한 의미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기회가 된다면 자각몽과 명상 상태의 관계를 주제로 따로 글을 써 보려고 한다.
불교 명상에서는 인간이 처리하는 정보를 오온(안의비설신-색,수,상,행,식)이라고 표현하는데, 현대어로 보면 인지, 정서, 감각에 해당한다. 그리고 오온이 무상하다고 표현하는데, 이것 역시 알아들을 수 있게 표현하면, 왜곡이 가능하다고 이해하면 된다. 즉, 인간의 감각, 정서, 인지는 균질하고 불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때 그때 변한다는 얘기다. 그리고 위에서도 말했듯 이미 이것은 과학적 사실로 지각심리학에서 다 밝혀진 내용이다. (재밌게도, 불교 이론은 이미 과학적으로 검증된 부분이 생각보다 많다.)
우리는 인지나 정서가 왜곡된다는 것은 이미 경험적으로 너무 잘 알고 있다. 같은 사안을 보고도 <이건 나쁘다 / 오히려 좋다> 라고 정 반대의 두 방식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 바로 그 증거이다. 하지만 감각에 대해서는 마치 내가 보고 듣고 먹는 것이 불변하는 객관적인 진리라고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감각 왜곡 훈련을 겪으면서 감각이 왜곡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 전지 훈련의 중요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명상 상태 1을 체험하는 것의 불교적 의미도, 그 상태에서 무상, 고, 무아라고 하는 핵심 기제를 들어서 간접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내 몸으로 직접체험할 수 있는 데서 오는 것이다.
아쉽게도 전지 훈련의 모든 방식을 이 짧은 지면에서 오픈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분량상으로도 그렇고, 실제로 내가 글로써 간결히 전달하여 한번에 독자 여러분을 체험시킬 수 있을 만큼의 역량이 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그리고 너무 모든 것을 동시에 보여 주면 나중에 보여줄 것이 없는 현실적인 이유도 부정할 수 없다..) 사실 PT가 이미 널리 알려져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운동법을 실제 체험하고 경지를 이룬 사람이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세히 설명하고 코칭하는 것이라는 것을 이해한다면, 전지 훈련이야말로 내 명상 안내서에서 PT가 절실히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히 그 흐름을 설명해 보자면, 일단은 침대에 누워 최대한 외부 감각을 차단할 수 있는 방식으로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귀마개 및 안대의 착용은 사실상 필수이고, 훈련을 하는 90분동안 꼼짝하지 않고서도 전혀 문제 없을 정도로 내 몸을 세팅해 놔야 한다.(이불을 적당히 덮어 너무 덥거나 춥지 않게 조정해야 한다.)
그리고 나서는 몸을 이완시킨다. 당연히 눈은 감은 상태에서, 나는 60부터 1까지 거꾸로 세면서 몸을 이완하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 외에도 들숨과 날숨을 관찰하면서도 가능하고, 인도 명상에서는 미간 사이의 '제 3의 눈'을 상상하며 바라보라고 안내하기도 한다. 방법은 무엇이든 좋으며, 이 미션의 성공 여부는 여러 가지로 판단할 수 있다. 그 중에서 가장 측정가능한 지표를 소개하자면, 뇌파를 들 수 있다. 만약 이 단계를 잘 수행해 이완 상태에 도달했다면, 그 상태에서 여러분의 뇌파를 측정하면 알파파가 측정될 것이다.
충분히 이완이 되었으면, 잠이 들지 않게 주의하면서 감각의 왜곡을 만들어 간다. 시각 감각의 왜곡은, 어두운 곳에서 눈을 감고 있지만 마치 보는 것 처럼 시각에 주의를 기울이다 보면 빨갛기도 하고 보라색같기도 한 점들의 모임이 눈 앞에 떠오르거나, 눈을 떴을 때 시각장에 들어왔던 것들의 잔상이 남기도 한다. 만약 낮에 안대를 끼지 않은 상태라면, 의도적으로 사진 기억 훈련처럼 눈을 떴다 감았다 하면서 떴을 때 눈에 들어온 물체를 감아서도 재구성하는 식으로 해볼 수도 있다. 시각 뿐만 아니라 청, 미, 후, 촉각 등 다양한 감각의 왜곡을 만들 수 있다.
청각의 왜곡도 만들어낼 수 있다. 귀마개를 하고 조용한 방에 있다면, 고막이 진동할 수 없으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정상이지만, 이 때 우리는 미세한 삐 소리 같은 것을 듣게 되며, 이 상태가 지속되면 점점 더큰 소리, 더 나아가면 말소리 같은 것이 들릴 수도 있다. 이것을 누군가는 귀신의 목소리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지각심리학적 관점에 따르면 청각 자극이 없음에도 뇌에서는 청각 정보 처리가 일어나면서(make up) 발생하는 일종의 환청이다.
시각 왜곡과 청각 왜곡의 경우에는, 우리가 일상적으로 너무 많이 처리하는 감각 종류라서 그런지, 단순히 이것만으로 명상 상태까지 이끌고 가기는 어렵고, 보통 이 경험을 하나의 체크포인트 삼아 다음 감각의 왜곡을 경험한다.
보다 강력한 감각의 왜곡은 아무래도 내부 감각의 왜곡이다. 레드썬 선생님이 알려준 방식은 마음챙김 명상에서의 바디스캔과 유사한 지점이 있는데, 몸의 내부 감각에 주의를 기울이며 지각하면서 주의를 유지하다 보면 지각된 내부 감각이 증폭, 확장되면서 왜곡되게 된다. 마치 유체이탈을 하는 것처럼 몸의 무거운 부분은 가라앉고 가벼운 부분이 뜨는 것 같은 느낌을 느끼면 성공이다.
호흡도 중요한데, 이때 숨은 도둑숨을 쉰다. 그러니까 세지 않고 약간 약하게 숨을 이어나가는데, 마치 내가 숨을 쉬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는 것처럼 가늘고 길며 균일하게 들숨과 날숨을 유지한다. 그러다 보면, 아주 자그만 호흡 소리를 듣고 싶어도 전혀 들리지 않는 신기하고도 이상한 감각을 경험하게 된다. 이런 상태에서 계속 버티기(!)를 시전하면 된다. 만약 내부감각의 왜곡(유체이탈과 유사한)이 충분히 강하지 않을 때 호흡이 달라지면, 감각의 왜곡이 깨지면서 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 이럴 때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왜곡 상태를 60분에서 90분동안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 뇌가 완전히 잠들기까지 이 정도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우리가 잠든다고 하는 것, 그러니까 베개에 머리를 대고 의식을 잃는 것은 빠르면 30초 만에도 일어날 수 있지만(졸려 죽겠는 때를 생각해 보라.), 여기서 말하는 '잠듦'은 졸려서 자는 것과는 다르다. 여튼 일반적으로는 우리의 의식은 뇌(혹은 몸이라고 이해해도 좋다)가 잠들기 훨씬 전에 '잠들지만', 전지 훈련의 목표는 뇌가 잠드는 타이밍에 맞춰 우리 의식을 잠들게 하는 것이라고 해도 좋다. 그러니까 잠이 오지 않는 밤에 하면 보다 더 가성비가 좋다고 할 수 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몸이 잠드는(혹은 뇌가 잠드는) 시간인 90분을 버티지 못하고 대부분 잠들어 버리게 된다. 하지만 비몽사몽인 상태로 90분을 버티다가 잠드는 타이밍에 의식을 잠깐 정신 차리게 해서 명상 상태로 들어가게 하는 스킬도 사용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잠들기 직전에 내 의식이 아주 희미하게라도 깨어있는 상태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직전의 상태에 가기 전까지, 여러 가지 인지 왜곡이나 정서 왜곡을 순차적으로 경험(및 유도)하며, 명상 상태에 들기를 기다리면 된다. 물론 이 때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한다고 눈을 떠 시계를 보거나 해서는 안된다. 그럼 다시 처음의 이완부터 시작해 훈련 사이클을 시작해야 한다.
왜인지 모르겠는데, 명상과 관련된 정서로 빠짐없이 등장하는 것이 바로 공포감이다. 무서운 영화를 보고 머리를 감을 때 눈을 못 감는 것과는 다르게, 명상의 과정에서 아무런 계기나 생각 없이 엄습하는 공포감을 다양한 출처에서 일제히 언급한다. 것이다. 루시드 드림 와일드 기법에 대한 설명을 보면, 역시 희한하게도 뜬금없이 공포감을 경험하는 단계가 나온다. 나도 실제로 경험했는데, 명상 상태에 진입하기 직전 생생하게 공포감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이것을 '명상이라는 신비에 아무나 들어가는 것을 막는 최후의 결계' 라거나, '귀신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느끼는 육감' 등으로 생각하고 싶은 마음 잘 알겠지만, 그러면 오컴 선생님한테 (면도날로) 혼쭐이 날 것이다. 정서 왜곡이라는 더 간결하고 과학적인 자명한 설명이 있기 때문이다. 인지 왜곡도 같은 선상에서 해석 가능하다. 인지 왜곡의 경우는 정서 왜곡보다 유도하는 것이 쉬운데(정서 왜곡은 유도보다 경험의 측면이 강하다), 랜덤하게 아무 단어들을 끊임없이 연상하는 방법이나 규칙이 없는 수를 반복해서 떠올리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 명상 상태 1에 이르는 훈련 과정에 대해서는 이미 분량이 너무 길어져 이번 글에서는 여기까지만 소개하도록 하겠다.
여기까지 성공적으로 잘 버티게 되었다면, 여러분을 기다리는 것은 꿈이 아닌 명상 상태가 될 것이다. 인지, 정서, 감각에서 자유로워지고, 일상에서 경험할 수 없는 특이한 상태를 경험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초심자라면 그 상태를 경험한 직후에 바로 깨어버릴 수도 있다. 이것은 아직 주의 지속 능력이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중에는 단순히 이 상태에 들어오는 것 뿐만 아니라, 이 상태에서 보다 많은 정신활동(나에 대한 탐구)를 진행할 수도 있을 것이지만, 만약 여러분이 그런 경지에 도달했다면 이미 여러분은 명상 초심자를 한참 벗어나 중,고급 수준의 명상을 경험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로써 초심자를 위한 명상 안내 시리즈의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여러분의 고정관념 속에 있던 명상과 내가 안내하는 명상 간의 괴리가 얼마나 있을지 정말로 궁금하다. 어떤 명상가는 나의 안내가 명상과 다소 거리가 있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어찌 보면 이 시리즈의 존재 이유가, 내가 생각하는 명상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먼저 제시하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코멘트를 수집하기 위함이라고도 볼 수 있다. 사실 나는 장님 코끼리 더듬듯 비상식적이고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명상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에 이제는 환멸이 날 지경이다. 이 글을 시작으로, 명상에 대한 기본적인 컨센서스를 만들며 보다 생산적인 차원에서 명상에 대해 정보를 교류하는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