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클라크 공군 기지의 해병대 중위와 ‘천사의 도시'를 한 바퀴 돌고 난 후 기지 투어를 부탁했다. 활주로와 격납고를 제외하면 미국의 여느 도시와 같은 모습으로 엄청난 시설들을 구비하고 있었다.
기지 내 숙소인 호텔로 들어가자 프런트 직원이 봉인된 서류 봉투를 주었다. 펜타곤의 담당자인 대령으로부터 온 팩스 전문이었다. 클라크 기지의 CRC(Control & Reporting Center)인 방공관제 시설과 수빅만 기지 관제시스템 상황 파악을 2박 3일간 하고 오라는 출장 연장의 내용이었다. 사실 클라크와 수빅만 기지의 관제시스템을 파악할 필요성은 없었다. 다만,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 내에서 사수가 해줄 수 있는 일종의 배려라는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클라크 공군 기지의 CRC 시스템은 펜타곤에 비하면 낙후된 것이었으나 동남아시아 전역을 관장하고 있었다. 다만 그 지역에 큰 이슈들이 없었고 훈련에만 전담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중국의 군사력이나 영향력에 있어서 발톱을 숨기고는 있었으나 자신들의 힘이나 영향력을 나타내는 행동은 일체 없었기에 미국 입장에서 자체 훈련만으로도 중국에 대한 억지력을 발휘하기에 충분하였다.
클라크 기지 CRC 시설 확인 후 어김없이 완전군장 한 2개 소대의 해병대원들과 함께 수빅만 기지로 향하였다. 오르막길의 정상에 올랐을 때 멀리 위성사진을 통해 보아 왔었던 수빅만 기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수빅만 기지에 들어간 후 나의 소감은 이곳은 기지가 아니라 휴양시설이었다.
펜타곤에서 나와 같은 민간인 근로자들을 제외한 모든 군인들은 군복을 착용하고 있었는데 이곳엔 헤어스타일이나 나이를 보더라도 군인임이 확인되는 사람들이 꽃무늬가 있는 하와이안 셔츠를 입은 상태로 기지 않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3~6개월간 바다에 머무르다 육지를 밟은 수병들에게 약 일주일간의 자유를 주는 것에 대해서 반대할 이유는 없지만 민간인 근로자가 아닌 이상 합당한 복장이나 행동수칙은 지켜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이곳의 관제 시스템 또한 내 입장에서 확인이 필요한 사항들은 없었다. 천혜의 요지답게 방어적 측면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지리적 구조로 되어있어 휴식을 위한 이용 시설이 많은 것이 이해는 되었다. 기지 밖 풍경은 클라크 기지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펜타곤에서 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3박 4일 동안 양쪽 기지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고 본토로 향하였다.
펜타곤 도착 후 출장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지진활동에 대한 언급과 함께 폭발의 강도에 따라 적용되는 피해지역에 수빅만 기지도 포함시켰다. 또한, 클라크 공군기지 내 방공망 시스템 시설을 사전에 이동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내용도 기술하였고 클라크 공군기지 폐쇄 시 수빅만이 보유한 활주로를 확장하여 공군이 주둔할 수 있는 시설 확충이 필요할 것 같다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어쨌든 이듬해 1991년 3월 피나투보 화산에서는 폭발의 조짐을 암시하는 지층 활동이 계속되었고 결국 6월에 폭발하였다.
공식적으로는 클라크 공군기지가 11월에 철수한 것이지만 주요 장비와 최신 전투기와 폭격기 그리고 전술 핵무기는 이미 이동시켜 놓았고 최소한의 군인들과 비전투 요원들만 남아 폐쇄를 위한 업무 처리들을 수행하고 있었다.
다만 예상했었던 것보다 훨씬 강한 폭발로 수빅만 기지까지 피해를 입어 대다수의 전자 장비를 비롯한 주요 장비들이 폐기되었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자연재해로 인한 완전 철수에 대한 타당성이 성립되었고 필리핀 정부 입장에서는 거래의 구실을 상실한 결과였다. 화산재로 뒤덮인 공군기지 시설을 복구하는데 필요한 비용도 만만치 않았었던 것이 사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