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1990년) 연초부터 포스터를 통해 홍보해온 벚꽃축제가 한창이란 것을 쿠웨이트 친구와 점심을 먹으러 가는 길에 비로소 알게 되었다. 수천 그루의 벚꽃나무에 핀 연분홍색 카펫이 깔린듯한 꽃잎들과 바람이 불면 흩날리는 그 모습들은 실로 장관이었다. 친구와 나는 원래 가기로 하였던 식당 예약을 취소하고 벚꽃이 한창인 서쪽 포토맥 강변 공원에서 피자 한쪽과 콜라로 점심을 먹었다. 무엇을 먹느냐 보다는 누구와 먹느냐 그리고 어디에서 먹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상기시켰던 점심이었다. 실로 오래간만에 펜타곤 시를 벗어나 짧지만 자유롭고 한가롭게 봄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다.
세 번째 모니터링 룸의 업무가 어느 정도 익숙 해고 전쟁게임(War Game)을 즐기고 있을 때쯤 2층 사무실에서 호출이 왔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사무실로 간 나는 관리자인 대령에게 나의 보직 이동과 선택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나는 대령에게 “이동이 먼저입니까 선택이 먼저입니까?”라고 물었다. 내가 그 질문을 한 이유는 ‘이동'이란 내게 선택의 입지가 거의 없는 것이지만 ‘선택'이란 군대란 조직 내에서 내가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대령은 “선택할 수 있다. “라고 하였다. 나는 대령에게 ‘Game room”(그때는 ‘Command Center’라고 불렀다.)에서 일하고 싶다고 하였고 대령은 흔쾌히 알았다고 하였다.
물론, 나의 희망대로 Game room에서 근무하게 되었지만 내가 바랬었던 전략 및 전술 부분에서는 제외되었다. 아니, 제외되는 것이 정답이었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은 유색인종이 군대 경력도 없이 미국의 국방에 관련된 전술 및 전략에 투입된다는 것이 미합중국 헌법에 기초한 ‘평등'이라는 명문에는 위법 일지 몰라도 실무선에서는 꺼릴 수밖에 없는 조건이었을 것이다.
결국 나는 Game room에서 근무는 하였지만 전략이나 전술이 아닌 지원업무에 투입되었다.
사실 Game room에서 지내는 동안 전략과 전술에 대해 합당한 순발력을 발휘할 수 없었다. 변명 같지만 군 생활을 못한 내게 비록 비디오 게임 같지만 군대가 요구하는 수준의 공격과 방어를 위한 전술적 대응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슈퍼컴퓨터가 내린 결론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당시 상황에서 전투에 해박한 이론이나 실기를 갖춘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는 것은 개인용 컴퓨터와 슈퍼컴퓨터를 비교하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Game room에 있었던 일곱 명의 인원 중 나를 포함한 다섯 명은 나름의 훈련생들이었으며 세명은 전략과 전술 담당으로 보직이 결정되었고 나와 다른 한 명은 지원 쪽으로 배정되었다.
전략 및 전술이나 지원부서간의 협업 관계는 거의 동시에 이루어져야 하나 실전 발생 시 전략 및 전술팀의 결정에 따라 지원팀은 그에 따른 최적의 지원을 위한 명령 체계를 완성하여야 했다.
특정 지역에 미군의 개입이 필요할 경우 전략 및 전술팀에서는 해군이나 공군의 지원을 요청하면 지원팀은 가장 가까운 함대의 위치와 전투기나 폭격기의 도착 시간을 고려하여 함대와 공군기지를 지정한 후 전달하는 역할을 담당하였다.
글로는 긴 설명이지만 시스템이 내린 정보를 확인만 하면 되는 동시 다발적으로 순식간에 모니터에 여러 형태의 이미지로 보여주었다. 다만, 인공위성과 지상 레이 다간의 통신이 원활하지 않는 경우가 발생할 때에는 모든 인원들이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내부적인 소식으로는 더 많은 첩보위성의 발사 계획과 함께 호주 ‘Pine Gap’에 레이다 시설 추가로 좀 더 신속하고 정확한 정보 입수가 가능해질 거라고 하였다.
냉전은 종식된 것 같았으나 무기가 아닌 우주전쟁 서막이 시작되었다. 당시 소련도 여러 대의 위성 발사 계획으로 미국과의 경쟁을 준비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