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정황 포착에 따른 긴장된 하루하루가 지나가고 있을 때 두 번째 룸 헤드가 필리핀 클락 공군기지 인근의 지층 사진을 들고 들어왔다. 클라크 공군기지 인근에 위치한 ‘피나투보’ 산의 단층 부분에서 열화상 이미지가 잡혔다는 것이다. 화산 폭발로 이어질 경우 클라크 공군기지는 물론 수빅만의 해군 기지까지도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라고 하였다. 미국 입장에서 합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기지를 사용할 것인지 고민하고 있던 차에 이 상황이 미국에 득인지 실 인지는 모르겠으나 자연재해 발생 가능성이 대두된 것이다.
이라크의 움직임도 중요하겠지만 클라크와 수빅 기지를 합치면 삼만 명이 넘는 군인과 그 가족 그리고 민간인 근로자들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상부의 결론은 필리핀으로 지질 탐사를 위한 인원을 보내 정확한 상태를 파악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고 지원팀에서 내가 차출이 되어 필리핀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
1년이 넘게 세상 이곳저곳을 다니던 내가 펜타곤 지하에서 반년이라는 시간을 아무 불평 없이 지낸 이유는 ‘생존'을 위함이었다. 유색 인종으로 서류상 미국의 시민권자이지만 세 번째 룸에서 나를 제외한 모든 인원은 백인들이었고 가끔 인근에 위치한 다른 부서나 조직으로의 출장 시에도 나를 맞이하는 사람들의 표정은 의아한 그 자체였다. 본인들은 본인들의 표정에서 나타나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었겠지만 상대방인 나는 정확하게 느낄 수 있었다.
다만, 필리핀 출장에 앞서 세 번째 룸 내 군인이 현지 필리핀의 날씨를 비롯한 정황이 기록된 보고서와 함께 일정을 보고해주는 것으로 당시 나의 지위에 대한 만족을 느낄 수 있었다.
버지니아 공군기지를 출발하여 괌 공군기지에 내린 일행은 간단한 식사 후 일본 가데나 공군기지를 향해 출발하였다. 동서남북도 분간할 수 없었던 풋내기 시절 방문했었던 가데나 공군기지를 다시 방문했었던 순간은 짧았지만 굵직했었던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2년 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유일한 국방부 소속인 나를 중심으로 군대식 의전과 방문 기지마다 보조를 해줄 군인이 배속되어 편의를 제공해준 것이었다. 필리핀 클락 공군기지에 착륙을 위해 두 번의 선회를 하면서 내려다본 클라크 공군 기지는 내 시야에 전부 들어올 수 없을 만큼 광활한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다.
민간 지질연구소 직원이 문제의 피나투보 산을 가리키면서 정말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것이라는 실감이 나기 시작하였다. 클라크 공군 기지에서 우리 일행의 실질적 방문 목적은 사령부 내에서도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 인지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정확한 상황이 파악되기 전 불필요한 소문이나 동요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이유였다. 외부 활동이 극히 제한적일 만큼 맨살에 느껴지는 햇빛의 뜨거움은 덥지만 긴소매의 옷을 입게 하였다. 지질 탐사를 위해 공군 기지 경비를 담당하는 해병대와 함께 피나투보 산으로 향하였다.
나를 포함한 지질 탐사팀 다섯 명 총 여섯 명이 미국에서 왔는데 동원된 해병대원은 2개 소대로 완전무장한 군인들이 수십 명이었다. 2개 소대를 통솔하는 중위에게 묻자 인근에 필리핀 민족해방전선 소속 반군들이 출몰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또한, 최상의 엄호 명령이 하달되어 지상에서는 2개 소대가 하늘에서는 2대의 무장 헬리콥터와 한대의 구급헬기가 교대로 뜬다고 하였다. 약간은 우쭐한 기분도 들었지만 업무에 충실하기 위해 민간 지질 탐사 인원들에게 신속 정확한 탐사를 요청하였다. 오는 길은 멀었지만 탐사팀의 측정은 의외로 간단하였다.
탐사는 시료와 계측장비를 이용하여 종료되었고 공군 기지로 돌아오는 차에서 담당자에게 물어본 결과 지진활동이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언제가 될지는 미국으로 돌아가 연구소 차원에서 예측이 가능하다고 하였으나 본인의 경험으로 “조만간"이란 결론을 말해 주었다. 나는 그에게 내게 말한 내용을 미국 도착 전까지 그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말 것을 요청하였다. 기지로 돌아온 후 기지 사령관실에는 수빅만의 해군기지 사령관도 도착하여 있었다.
사령관들에게 까지 숨길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차 안에서 담당자에게 들은 내용을 그대로 전달하였다. 사령관들 입에서는 ‘F…’이 연발하였고 나는 군 통신을 통해 현재 상황을 펜타곤에 보고하였다.
사령관은 그날 저녁 여섯 명의 일행을 장교 클럽으로 초대하여 맛있는 저녁을 대접하였고 기지 밖으로의 외출을 대비하여 해병대 중위를 소개해 주었다. 친구에게 들은 이야기와 사령관의 알듯 모를듯한 언질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였고 급기야 저녁을 마친 후 기지 밖을 구경하기로 하였다.
기지 밖으로 나오자마자 완전히 다른 세상으로 타임머신을 타고 이동한 듯 요란한 불빛들과 외출 나온 군인들을 유혹하는 여성들로 북적거렸다. 나를 에스코트하는 중위의 말로는 약 15,000여 명의 여성들이 일하고 있다고 하였다. 수빅만 기지까지 합치면 약 3만여 명의 여성들이 매춘에 종사한다고 하였고 두 곳의 기지 근무자들의 연간 소비지출액이 약 1.5억 달러라고 하였다.
뉴욕에서 필리핀 기지와 관련된 발표 회의 때 CIA팀들이 접근했었던 경제적 측면의 숫자들이 떠올랐다. 약 8만여 명의 필리핀 근로자들의 일자리 창출과 함께 미군기지와 관련된 경제적 효과가 년간 약 10억 달러로 당시 필리핀 GNP의 4~5%에 해당되는 무시할 수 없는 금액이었다.
필리핀 정부와의 교섭이 어떤 상황인지 알 수는 없었으나 중위도 그 내용을 알고 있었고 군인답게 지정학적 요충지로서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나는 화산 폭발의 위험성으로 수빅만 해군 기지는 모르겠으나 클라크 공군 기지는 어쩔 수 없이 폐쇄의 절차를 밟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였다. 다만 이 상황을 미국 정부가 어떤 식으로 이용할지가 궁금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