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1994년 가을 인사이동과 함께 나는 로스앤젤레스로의 전출 명령에 고민 끝에 최종적으로 ‘Ok’를 하자 그들은 나에게 어마무시한 조건들을 제시하였다. 기존 GS13 7년 차에서 GS14 3년 차로 연봉은 뛰었고 년간 공무를 위해 사용할 신용카드 한도도 상당한 액수로 책정해 주었다.
H는 해외 출장으로 얼굴은 못 보고 전화로 나의 전출소식을 전하였고 H는 내 말을 듣자마자 10여 초 동안 욕을 해대었다. 본인에게조차 아무런 언급이 없었던 것에도 많이 화가 난 듯하였다. 동부의 모든 친구들과 동료들과의 아쉬운 작별을 위해 뉴욕으로 워싱톤 이곳저곳으로 한 일주일 동안은 Farewell 파티를 했었다. 그동안의 모든 시간들과 추억들을 뒤로하고 로스앤젤레스로 출발하였다.
내가 도착하는 날 로스앤젤레스에 살고 있던 많은 친구들이 LAX로 나와 맞이하여 주었고 살 집을 찾을 동안 머물 임시숙소도 준비해 주었다. 나의 업무를 제외하면 모든 것이 완벽하게 준비된 상태였다. TRW 사무실은 로스앤젤레스 남서쪽 레돈도비치(Redondo Beach) 인근 내륙에 있었다. 한국 관광객들의 필수코스일 정도로 한국식 회집도 많고 유명한 비치들 중 하나였다.
TRW에서 나는 첩보위성의 위치를 조정하는 업무를 담당하였다.
그간의 일과 비교하자면 정말 하찮은 단순 노동과 같은 업무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업무 시간도 9 to 5로 격렬했었던 24시간의 긴장감도 없어졌고 분석을 위한 데이터도 필요 없는 무료한 일상이 되어버렸다. 나와 같은 처지인지 원래 업무 배정을 받은 것인지 모를 3명의 오퍼레이터들과 점심시간을 제외하곤 두대의 24인치 모니터에 나타난 위성들의 궤적들을 멍청히 바라보며 퇴근 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리다 보니 처음엔 미칠 것만 같았다. 사람이 환경에 적응을 할 수밖에 없는 것인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시간들이 무덤덤 해지면서 편한 생각 까지도 들기 시작했다. 물론, 여기도 24시간 돌아가는 곳이지만 오후 5시 이후 교대를 마치고 난 후에 내가 신경을 쓸 사항도 없어 정말 편한 직장이 되어 버렸다.
그동안 퇴근 후와 주말을 이용하여 거주할 주택도 구매하였다. 태평양이 보이는 절벽 위에 위치한 집을 보고는 곧바로 계약을 하였다. 결정을 할 때에는 낮 시간이라 황금빛으로 물든 드넓은 태평양의 멋진 광경이 결정적인 구매의 요인이었는데 정작 아침에 나와 해진 후 들어가 바라본 태평양은 암흑천지에 멀리 깜빡이는 화물선들의 불빛만이 보였다. 그저 주말 집에 있을 동안에만 바라본 태평양이었고 바다 바람의 소금기로 인해 알루미늄 창틀엔 흰꽃처럼 녹이 슬었고 TV를 비롯한 전자제품들도 문제를 일으켰다.
TRW에서의 무료하고 변화 없는 삶 속에서 어느 날 예기치 않은 사건이 일어났다.
내 옆자리에서 근무하던 오퍼레이터가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그 친구가 담당하던 위성에 이상 발생을 알리는 신호가 잡혔다. 일정 시간 내 필요한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제2 관리구역에 전달되어 조치가 이루어지는 것이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상황도 제 때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업무 매뉴얼 상 내 담당 이외의 업무에 대한 그 어떤 조치도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지만 내 입장에서 모르는 것도 아니고 ‘F’ 키 몇 개와 방위 재설정을 위해 마우스만 몇 번 움직이면 되는 일이었다. 계속되는 이상 신호에 나는 옆자리로 옮겨 필요한 조치를 취하였고 잠시 후 이상 신호는 해제되었다.
이 일이 예상외로 흘러갔다. 내 입장에서 계속해서 깜빡이는 이상 신호와 혹시라도 위성의 잘못된 방향으로 필요한 정보 수집에 문제가 발생할까 싶어 대신한 조치였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적절한 순간에 적정한 행동을 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펜타곤을 비롯해 미국의 거의 모든 정보계통 본부에서 감사장 같은 것들이 보내졌다. 무슨 호들갑이지 알 수는 없었으나 아마도 그 순간에 본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위성정보를 얻지 못할 위기였었던것 같다. 펜타곤에서 연락이 와 다시 펜타곤으로의 복귀 의사를 물어왔지만 나는 거절하였다. 어차피 시간의 문제일 뿐 나란 존재의 가치는 이미 시효를 다했다. 거기에 그런 행운이 아니었더라면 나는 업무 규정 위반으로 어떤 조치를 받았을지 모를 일이었다.
H도 소식을 들었는지 전화를 걸어 필요하면 감사장은 본인도 얼마든지 보내줄 수 있다면서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라고 여러 번 강조하였다. 사실 이런 경우가 그 후에도 두서너번 있었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조치들을 취했었다. 어쩌면 이런 나의 사고방식이 미국의 중심부인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오랜 시간 동안 일하지 못할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