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 미국 공작과 소비에트 붕괴

웹 소설 같은 논픽션 에세이 _ 세계를 움직이고 있는 미국

by 김성원

나의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소비에트 연방 붕괴에는 고르비(소련 공산당 서기장 고르바초프의 애칭)의 성향을 파악한 미국이 그동안 준비해온 소련에 대한 공작을 단계적으로 실행한 것이 아닐까 한다.


실제로 1989년 초부터 헝가리와 폴란드를 시작으로 ‘Eastern Block'의 모든 국가들이 시기의 차이는 있었으나 자유와 민주주의를 원하는 일련의 행동들이 발생하기 시작하였다. 한국어로 표현하자면 ‘쟁의'를 시작으로 한 미국의 공작이었다.


내가 검토하던 보고서의 검은색으로 칠해져 있던 부분은 아마도 공작 대상의 이름과 소속이었을 것이다. 어떤 방아쇠로부터 시작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동유럽의 혁명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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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더한다면 1979년부터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아프가니스탄과의 10년 전쟁을 끝내고 철수하였다. 과도한 전쟁 비용을 부담할 능력과 필요도 없어진 이유였다. 이 전쟁 기간 동안 미국은 소련을 견제하기 위해 중공과 파키스탄에서 에서 훈련을 받던 아프가니스탄 군대에게 무기를 지원하고 있었다. 대리전쟁의 양상이었지만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서 민족주의를 과소평가한 나머지 미국 전쟁 역사상 최초의 패전을 겪었 듯 소련은 아무런 이득도 없이 물러나게 되었다.


미국 CNN 방송이 외국 방송사로는 유일하게 모스크바의 사보이 호텔에 한하여 방송 허가를 받았다. 공중파가 아닌 케이블 방송이라 외국인 투숙객에게만 시청할 수 있는 조건으로 소련 입장에서는 통제가 가능할 것이라 판단하고 허가를 했을 것이다. 외부적으로는 소련인 기술자의 실수라 하였지만 어쨌든 모스크바 대중 방송 라인에 연결되었고 모스크바 시민들은 외국인의 입장에서 보는 자국 내 사정을 알게 되었다. 눈과 귀를 가려왔었던 정부의 실제 모습을 알게 된 사람들이 분열되기 시작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출장에서 얻는 경험과 지역 정세에 관한 지식이 쌓이면서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객관적이란 시각에서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이해관계가 상당 부분 배제된 외국인이란 제 삼의 관점에서 보는 순수함이었을 것이다.


미국의 유명한 장군이 남긴 말이다

“민간이 사상자는 갈등의 부산물이 아닌 위대한 결과의 오점으로 여겨져야 한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입장이 다른 것인데 모든 면에서 합리화를 위한 미국의 입장인 것 같다.


자유 민주주의 수호가 목적이던 미국의 국익이 목적이던 내 입장에서 미국은 어떤 경우에서도 본인들이 일등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공격보다는 수성이 더 어렵다 말처럼 미국은 반드시 일등 자리를 지켜야만 했다.


복잡한 세계정세 속에서도 나는 하루도 빠짐없이 서류와 싸움이 계속되었다. 이제는 익숙해진 출장을 계기로 서류에서 탈출하고 싶은 마음에 언제쯤 출장이 잡힐까 하는 희망으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연일 동유럽의 민주화 운동에 관한 보도가 이어졌고 소련의 움직임을 자세히 다루었다.


체코에서 소련군이 완전히 철수하는 등의 실질적인 행동들이 나타났고 미국이 원하는 그림대로 유럽의 색깔이 변화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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