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 만의 분야를 갖고 싶은 제작자, 이선욱
<미디어IN싸를 찾아서>는 미디어오리가 미디어업계 인싸라고 생각하고, 더욱 인싸가 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다양하고 멋진 사람들을 인터뷰하는 코너입니다.
닷페이스 소울푸드는 10분 이내 콘텐츠에 집중하던 닷페이스가 15분 가량의 숏다큐에 첫 도전했던 사례였다. <미디어IN싸를 찾아서> 저번 편에 필름메이커로 나왔던 이인규는 인터뷰에 이선욱 PD를 여러번 언급했다. 한국 뉴미디어에서 전례가 거의 없었던 저널리즘 숏다큐 영상. 이선욱PD는 어떤 마음으로 이 콘텐츠를 기획했을까?
아인 |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려요. 간단하게 자기 소개해주시겠어요?
선욱 | 닷페이스에서 영상을 만들고 있는 이선욱입니다.
<소울푸드> 발행이 딱 일년 전 이맘 때(인터뷰 시점 2020년 2월)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나서 일 년동안은 설명용 영상 콘텐츠 <그거앎>이라는 걸 진행하다가 지금은 다시 닷페이스 채널로 복귀했습니다.
아인 | 어떻게 팀에 처음 합류하시게 된 거에요?
선욱 | 완전 초기 멤버는 아니구요. 구글에서 하는 넥스트 저널리즘 스쿨에서 만나서 조소담 대표와 ‘우린 이런 거 하고 있고, 이런 거 진행해’라고 서로 얘기를 나누다가 ‘아, 그럼 같이 해보는 게 좋지 않을까’ 한 게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네요).
아인 | 제가 얼마전 인규님을 만나서 ‘선욱님은 어떤 분인가요’라고 물어봤는데, 뭐라고 대답하셨을 것 같으세요?
선욱 | 욕을 하지 않던가요?
아인 | 하긴 했는데, 그건 포함하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웃음)
‘선욱님은 기획력이 진짜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이야기 하시더라구요. 선욱님의 기획력은 어디에서 나오시나요?
선욱 | 제가 성향상 엄청 중요하고 사람들이 집중하는 이슈에 정면으로 들이받는 거를 잘 못해요.
예를 들면, ‘지금 코로나19가 있으면 그 이슈를 가장 잘 분석해서 소개해야지’, 이런 거는 절대 못하는 스타일이에요. 그러면 살아남으려면 뭘 해야 될까, 남들이 안 가는 길을 좀 찔러보면 좋지 않을까 생각해서 그런 걸 주로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아인 | 그럼 선욱님은 기획을 구체화 시키기까지 어떤 프로세스를 거치시나요?
선욱 | 사전 기획하는 단계에서 남들보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편이에요. 책이든 영화든 뭐든 많이 봐야 생각이 조금 명확해지는 스타일이에요. 직관적으로 하나에 꽂혀서 ‘(현장에) 나가봐야지, (누군가) 만나봐야지’하는 사람이 있고, 오래 고민하다가 (그 생각이) 튀어나오는 사람이 있다면, 저는 후자에 가까운 것 같아요.
아인 | 그마저도 멋진데요. 그럼 저희 미디어오리가 자문한 <소울푸드> 시리즈에 대해서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볼까요.
이 시리즈를 마무리를 지은 시점에서, 선욱님에게 <소울푸드>는 어떤 의미일까요?
선욱 | 내용적으로도, 분량적으로도, 형식적으로도 ‘힘준 걸 하고 싶다, 좀 더 길고 때깔 좋은 걸 하고 싶다’는 욕심이 계속 있었어요. 그래서 제작 하면서도 연출, 편집, 기획적으로 많이 배웠어요.
그런데 과연 유튜브를 중심으로 하는 이 환경에서 이(소울푸드) 형식이 우리한테 맞는 건가라는 얘기를 되게 많이 했어요. OTT 쪽으로도 넘어가도 되는 거 아닌가라는 생각도 해보고요. 그러다 ‘우리는 제작사보다는 조금 더 언론사의 포지션에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소울푸드의 숏다큐) 방식으로 갈 수 없다’, 라고 지금은 잠정적으로 결정을 해놓은 상태예요. 그런 의미에서 저 개인한테도, 회사한테도 되게 중요했던 콘텐츠였어요.
아인 | 디아스포라나 인종이나 이주 여성과 같은 깊이가 있는 소재들을 짧은 영상에 무겁지 않게 담으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럼 이걸 제작하실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찍게 되셨나요?
선욱 | 말씀해주셨던 게 되게 중요한 포인트인 것 같아요.
'디아스포라 같은 말을 한 번도 쓰지 않고,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공감할 수 있게 하자'. 그 주제를 얘기하는 사람들은 맨날 디아스포라, 경계인 이런 되게 어려운 말들을 하고, 그걸 또 한 쪽에서는 짱깨, 깜둥이 뭐 이런 말들을 너무 쉽게 하잖아요. 간극이 너무 크다고 생각해서 그 중간에 음식같은 쉬운 매개체가 있으면, 두 집단 다 흡수할 수 있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아인 | 그럼 이런 주제들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가 뭔가요?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선욱 | 특별한 계기는 없었구요. 너무 어릴 때이긴 하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한 5-6년 살다가 초등학교 1학년 때 한국에 왔거든요. 근데 그게 되게 충격적인 경험이었어요. 미국에서도 저는 마이너리티였는데, 한국에 왔는데 한국말 못한다고 왕따 당했었거든요.
그리고 생각해보니까 집안에서도 그런 것들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얘기들이 있어요. 할머니, 할아버지가 6.25 때 북에서 피난 오신 분들이시고. 위에 또 남겨놓은 자식들이 있으시대요. 그래서 어릴 때 부터 국가나 경계에 에 관심을 가지면서 살아왔던 것 같기는 해요.
아인 | 이 시리즈를 만들 때 되게 힘드셨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선욱님은 어떤 것들이 어려우셨어요?
선욱 | 닷페이스가 인터뷰 위에 인서트 올리는 식의 원래 텍스트 기반의 영상들을 많이 만들었어요.
작년에 <소울푸드> 시리즈를 하면서 (그런 영상들이) '이미지에 비해서 메세지가 주는 힘이 너무 크다'라는 것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소울푸드는 음식에 힘을 실어줘야 하는데, 그 힘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 모르겠는 거예요. 그래서 되게 힘들었어요.
제가 ‘그냥 이거 대충 이렇게 찍으면 되겠지’라는 나이브한 생각을 가지고 갔었어요. 촬영하는 인규님 입장에선 어떤 의도로 이걸 찍는지를 알아야 하는데, 어떤 플로우로 진행이 될지 감을 못 잡고 들어간 촬영이 많아서 마지막 편집 단계가 진짜 힘들었던 것 같아요.
아인 | 그래서 미디어오리에 도움을 청하게 되셨던 거군요.
선욱 | 1, 2편 편집을 하다가 아무리 내부에서 여러번 피드백을 하고 뒤집고 해도, ‘아, 이건 아닌 것 같다’라는 얘기가 너무 많아서 나리 님한테 SOS를 쳤어요. 되게 여러가지로 도움을 받았는데, 크게는 텍스트가 아닌 영상 자체로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것. 말없이 영상(이미지)의 힘을 느끼는 것. 인터뷰랑 영상(이미지)을 대등한 위치에 놓고 생각하는 것, 그런 것들을 많이 배웠구요.
디테일하게는 인터뷰 컷이 어떻게 넘어가는지. 시선이 어떻게 위치가 되고, 이런 것까지 이야기 했어요. 사실, 제대로 배운 사람들한테는 너무 기본적인 것일테지만 저희는 그런(전문적인 교육을) 배경으로 시작을 하지 않았으니까 너무 몰랐던 거예요.
아인 | 그럼 연출이 뭔가요?
선욱 | 아, 되게 어려운 질문인데요. 그동안의 롤은 연출이라기보다는 기획하고 구성하는 쪽에 치우쳐 있었던 것 같아요. 미디어오리의 나리님과 <소울푸드> 얘기를 하고 나서부터는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캐릭터와 이야기를 어떻게 화면을 통해 몰입을 시켜야 될지를 내용적인 부분이랑 비슷한 선상에서 고민하게 되었다고 해야 될까요?
아인 | 딱 잘 떨어지게 잘 설명해 주셨는데요?
선욱 | 저희가 어떤 걸 엉성하게 붙여서 보여드리면, 화면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나리님 앞에서 되게 발가벗겨지는 기분이 들어요. 제가 영상에서 불편하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그 불편한 이유가 뭔지 저보다 더 잘 간파를 해서 알려주셨어요.
"이건 구리니까 저렇게 해", 라고 하는 방식이 아니라 "너무 구려요. 이게 왜 구릴까요." 라며 그 의도에 대해서 같이 생각을 하거나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인 | 기억에 남는 댓글들 있으신가요?
선욱 |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그 전에 소울푸드로 북한 두부밥 아이템했던 거요. 욕이 너무 많이 달려서 댓글창 아예 닫아버렸거든요. ‘거기가 그렇게 좋았으면 왜 왔냐, 다시 돌아가라.’ 이런 댓글이 정말 많이 달렸어요. 그래서 '갈 길이 정말 멀구나. 이걸 어떻게 깨지' 라고 계속 고민하게 만드는 댓글이라 기억에 남아요.
또 하나는 <소울 푸드> 양꼬치 아이템 했을 때 조선족 3세, 2세인 10대 청소년들이 댓글을 다는 거예요. ‘엄마 아빠가 연변에서 왔고, 나는 중학교, 고등학교 한국에서 다니고 있는데 이렇게 얘기해줘서 고맙고.’라는 식의 얘기를 10대인 분들이 할 때, 이런 영상에 다른 누군가가 큰 영향을 받을 수 있겠구나, 라고 새삼 되게 무겁게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아인 | 개인적으로 <소울푸드> 파트 2를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해보았을 때, 어떠한 이야기를 해보고 싶으신지.
선욱 | 취재하다가 발견한 재밌던 것 중 하나가 '하와이 김치'에요. 하와이 김치가 일본 영향을 되게 많이 받은 김치더라고요. 1920년대에 거기(하와이) 플랜트 안에서는 한국인도 일본인도 다 아시안이라는 하층민으로 묶여서 어느정도 교류를 하고 살았더라구요. 자기의 아이덴티티가 궁금해서, 일반 회사에 다니면서 이 내용을 혼자 취재한 어떤 한국인 이민 3세 아저씨가 있어요. 개인적으로 그 사람을 만나서 꼭 뭔가를 하나 풀어보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이건 무조건 해야 해’ 라고 생각해서 내용은 거의 다 만들어놓은 상태예요.
아인 | 요즘 선욱님이 관심있는 건 뭐예요?
선욱 | 기후변화에 대한 거. 이러다 진짜 망하는 거 아닌가 싶어서요.
아인 | 오, 저희 인터브이 팀에서 이번에 진행하고 있는 숏다큐가 기후변화에 대한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인데.
선욱 | 아, 기대되네요. 저는 못했지만, 잘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아인 |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그럼 마지막엔 역시 클리셰로 마무리 하죠. 선욱님은 어떤 피디로 남고 싶으신가요?
선욱 | 와, 진짜 어려운 질문이네요.
아인 | 근데 궁금해요. 오늘 선욱님의 얘기를 들으면서 사실 더 궁금해졌어요. 선욱님이 어떤 피디로 성장하실지가.
선욱 | 제가 어떤 영역을 확보 했으면 좋겠어요. 최근 1, 2년 사이에 디아스포라 문제가 제일 화두였던 것 같은데, 그런 주제에서 갑자기 어떤 궁금증이 생겼을 때 (사람들이) 찾아볼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게 목표에요.
해외 언론 보면 되게 부러운 게, 어떤 분야의 전문 기자들이 정말 많잖아요. VICE랑 VOX나 월스트릿 저널에 트렌스젠더 관련해서 칼럼쓰는 트렌스젠더 기자(Katelyn Burns)도 있고, 이번에 코로나19가 문제가 되니까 가디언에서 전문 기자인 사람(Laura Spinney)이 관련된 문학을 추천해주더라구요.
그에 반해서 저는 그런 전문 분야가 정말 없는 사람이어서, 볼 때마다 아 이런 걸 하나 만들어야 하는 구나, 그래야 제대로 사회에서 하나의 중요한 무언가로 기능하고 있구나라고 생각이 들겠다 싶었어요.
아인 | 오, 생각보다 되게 멋있게 말씀해주셨는데요.
선욱 | 아, 아닙니다. 제 포지션이 너무 애매해서 그래야 살아남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말을 너무 못해서.... 감사합니다.
인터뷰를 하고 이런 저런 이유로 업로드가 늦어졌다. 그 사이 이선욱PD가 제작한 콘텐츠 '남북 분단이 바꿔버린 명란 젓의 맛', '한국에 사는 흑인이 말했다 '제 피부색은 여러분의 농담거리가 아닙니다' 가 닷페이스에 업로드 됐다.
가만히 보다 보면 그의 콘텐츠들 안에서 신기하게도 하나의 방향성을 찾을 수 있었다. 그는 '전문 분야가 있는 PD'를 그의 목표라 밝혔지만, 어쩌면 이미 그는 '음식'과 '디아스포라'는 영역을 가지고 있는 지도 모른다.
인터뷰 권아인
정리 최주연
<숏다큐로 미디어 만들기>
미디어오리의 오리지널 미디어 '인터브이' 제작기
#숏다큐 #영화같은미디어 #뉴미디어
https://brunch.co.kr/magazine/startanewmedia
<미디어 인큐베이터 오리>
미디어 창업 생태계를 위한 오리들의 활동
#미디어창업 #미디어컨설팅 #미디어교육
https://brunch.co.kr/magazine/mediaincubator
<5층 사람들>
미디어오리 사람들은 누구일까?
#자율근무제 #미디어창업 #미디어인큐베이터
https://brunch.co.kr/magazine/storyof5f
<미디어IN싸를 찾아서>
당신이 몰랐던 미디어업계의 '인싸'들을 만나다
#뉴미디어 #인터뷰 #미디어인싸
https://brunch.co.kr/magazine/findingvideoins
⬇️ '미디어오리'와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미디어 '인터브이' 소식 받아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