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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영등 Jan 01. 2023

드레곤 볼

드레곤 볼 Dragon Ball


 드래곤볼’ 갖는 방법을 알려줄까? 원불교 뉴욕교당 학생들과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뉴욕의 교포 자녀들에게 원불교 교당은 한인 커뮤니티이자 신앙수행 공동체라는 두 가지 의미가 아울러 있습니다. 그 아이들에게 한국말은 어려운 외국어라 부득이 저는 법회마다 서툰 영어로 떠듬거리며 부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래서인가 “교무님 그냥 한국말로 하세요.”라는 핀잔을 받기도 합니다. 


 온몸에 꿈틀거리는 에너지를 가진 십대들에게는 단 5분간의 좌선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명상보다는 성적이나 이성 친구, 스마트폰 게임에 관심을 가지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오히려 숱한 선택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매주 법당에 앉는 것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불교 수행을 간결하고 쉬운 영어 한 마디로 말해줄 수 있을까? 긴 고심 끝에 건진 단어는 전설적 일본 만화 ‘드래곤볼’입니다. 바로 그것을 가지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 낼 수 있다는 ‘여의주’입니다. 원불교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마음에 욕심을 떼고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에 자유로우면 여의주를 얻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무슨 말일까요?


 ‘드래곤볼’을 갖게 해 준다는 말에 흥미를 느낀 아이들을 방석 위에 앉히고 종을 울려 명상 시작을 알리면 얼마를 지나지 않아 몸을 비비 꼬고, 긁적거리고 눈을 두리번거립니다. 그때 그 아이들 마음속에는 ‘드래곤볼’이란 말로 꼬여 힘들게 하는 저에 대한 원망이 일어났을지도 모릅니다. 


 명상을 마치는 종을 울리고 나서 아이들 얼굴에 나타난 가지가지 모습을 살펴봅니다. 그러곤, 명상이 어땠는지 물어봅니다. 무릎이 아팠다고 하고, 가려웠다고 하고, 졸렸다고 하고, 여러 생각이 끊임없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어떤 아이는 마음이 편안하고 좋았다고도 합니다. 하나하나 이야기를 챙겨 듣고 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풀어갑니다.     


 무릎이 아프거나 가렵다는 싫은 느낌이 나더라도 거기에 끌려 화내지 말고 그 느낌 자체를 바라보는 연습을 해봐. 편안하고 좋을지라도 거기에 끌려 계속 앉아만 있으려 하지 말고 그 느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연습을 해봐. 나쁜 느낌이 일어날 때 교무님을 원망하는 감정도 일어났을 거야. 그러나 알지? 명상을 마치는 종이 울리고 몸을 자유로 움직일 수 있게 되자, 머지않아 우리 모두는 좋은 느낌이건 나쁜 느낌이건 그것이 사라지는 것을 알 수 있었어. 


 이렇게 느낌이나 감정은 그게 무엇이든 순간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야. 만약 좋은 느낌에 끌려간다면 다음 명상시간에 좋은 느낌이 일어나지 않으면 괴로울 거야. 만약 나쁜 느낌에 끌려간다면 다음 명상시간이 다가올 때마다 공포도 같이 밀려와 괴롭겠지. 느낌이나 감정은 단지 파도와 같이 일어났다 사라질 뿐이야. 그러니 거기에 끌려가 고통스러워하는 건 부질없고 어리석은 일이야. 


 일어나는 느낌이나 감정은 어쩔 수 없겠지만, 그것에 반응하고 안하고는 각자의 몫이란다. 그러면 어떻게 연습을 해야 할까? 마음과 호흡을 배꼽 약간 아래 지점에 집중해보렴. 그 집중을 유지할 수 있다면, 어떤 느낌이 밀려오더라도 그 느낌에 쉽게 끌려가지 않을 거야. 물론 처음에는 힘들지만 오래오래 계속하면, 차츰 마음의 힘이 길러진단다. 


 일어났다 사그라지는 느낌이나 감정을 그 자리에서 바라보는 연습을 명상시간에 해서 마음의 힘을 기르면, 일상생활에서 우리를 유혹하는 무수한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게 되지. 네가 좋아하는 스마트폰 게임에 푹 빠져 한참 즐기고 있는데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그것을 못하게 할 때 얼마나 괴롭고 화가 나니? 그러나 명상을 열심히 해서 마음의 힘을 얻으면, 게임 할 땐 즐기되 멈추어야만 할 때는 기꺼이 멈출 수 있어.


 명상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 끌려 다니지 않는 힘을 기르는 데서 시작한단다. 어른이 되어서까지 오래오래 힘을 기르면 돈이나 명예 권력이라는 달콤한 유혹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어, 그 누구도 너희들을 마음대로 할 수 없을 거야. 더 깊이 나아가면 죽음의 공포에서도 벗어나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도 있단다.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너를 누가 괴롭힐 수 있겠니? 


 좋아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는 슬픔에서도, 싫어하는 것에 대한 공포에서도 벗어나 온전히 우리 자신으로 존재할 때, 우리의 고통 없는 참마음은 밝게 드러날 거야. 그 참마음이 ‘드래곤볼’이란다. 이미 네 안에 있는 참마음을 드러낸 너는 무엇이든 이룰 수 있단다. 


 아이들은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나는 미소 지었다. 죽비소리가 그치고 주린 배를 채우러 아이들이 떠난 법당은 텅 비어 고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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