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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인문학으로 시작하는 의학용어 수업 1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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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Apr 21. 2022

가위눌림 이해하면 벗어날 수 있다

의학용어, 가위, 수면 마비, 렘수면, 고유 수용 감각

한 밤중에 깨어나 목이 말라 물이라도 먹으려고 몸을 일으키는데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잠이 덜 깼나 싶어 눈을 똑바로 뜨는데 눈앞에는 시커먼 형상이 어른 거리고, 손발은 누가 눌러 놓은 듯 아무래도 움직이지를 않습니다. 두려움에 식은땀이 나며, 엄마를 소리 질러 부르지만, 목소리는 안으로 삼켜질 뿐 밖으로 나오는 소리는 없습니다.

정말 생각만 해도 끔찍한 가위눌림인데요, 사실 가위눌림은 우리에게 꼭 필요한 현상이에요. 이 가위눌림이 없으면 우리는 큰일이 날지도 모릅니다. 가위눌림을 의학용어로는 수면 마비(sleep paralysis)라고 합니다. 영어 표현에 scissor locked란 표현이 있는데, 레슬링 같은 기술로 꼼짝 못 하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I got scissor locked while taking a nap"이라고 하면 낮잠을 자던 중 꼼짝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즉 가위눌렸었단 이야기입니다. 이런 수면 중 일어나는 이상현상을 parasomnia라고 합니다. 궤도 밖에, 즉 정상에서 벗어난 수면 현상이란 뜻이에요.

*Parasomnias are abnormal actions while sleeping. e.g. sleepwalking, night terror, etc

불면증은 보통 insomnia라고 하는데, 잠을 뜻하는 somnus와 부정의 접두사 in이 결합된 용어입니다. 잠이 부정되니 못 잔다는 말이 됩니다.

dyssomnia라는 용어도 있습니다. dys는 '제기능을 못하는'이란 뜻의 접두사입니다(dysfunction). 수면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포함합니다. 하지불안증후군(Restless Legs Syndrome), 수면무호흡(sleep apnea)등이 여기 해당합니다.

in·somnia
dys·somnia
para·somnia

가위눌림, 수면 중 수면 마비는 꼭 필요한 현상입니다.

가위가 눌리는 원인을 확실히 이해하면 가위눌린 상황에서 안정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제 아내도 원인을 알고 난 후 두려움이 훨씬 덜해졌다고 매우 고마워했습니다. 왜 수면 마비가 필요한지, 또 가위눌림은 어떤 현상인지 이해하기 위해서 수면의 생리적인 면을 먼저 설명하겠습니다.

위의 수면 사이클을 보면 검은색으로 칠해진 부분을 렘(REM; rapid eye movement) 수면이라고 합니다. 눈동자가 아주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 특징인 수면상태입니다. 아래 사진에서 눈꺼풀 뒤에 눈동자의 움직임이 보이지요?

주로 꿈을 꾸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는 수면이 아주 얕은 상태로 정신은 거의 깨어 있는 것과 유사한데, 우리 몸으로 가는 운동신경은 차단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꿈을 꾸는 동안에도 안전하게 누워있을 수 있습니다. 수면 마비가 꼭 필요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꿈속에서 남을 때리기도, 달려가기도 합니다. 수면 마비는 이럴 때 우리 움직임을 막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그때마다 우리 근육이 마비되지 않고 움직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아마 몸이 성 할 날이 없고, 옆에서 자는 아내와 아이들은 정말 위험할지도 모릅니다. 수면 마비가 풀린다면 아래 강아지처럼 뻘쭘해질지도 모릅니다.

"그래, 자연스러웠어.."

수면 중에 정상적인 마비가 일어나지 않아, 잠든 상태에서 걸어 다니거나, 심지어 이야기도 하는 상황을 몽유병(sleepwalking)이라고 합니다. 몽유병도 가위와 마찬가지로 parasomnia의 일종입니다.

여기서 좀더 특별한 수면상태가 있습니다. 위의 그래프서 두 번째 렘수면 바로 직후 awake로 잠깐 곡선이 올라가는 것을 보세요. 이때는 살짝 잠이 깨는 것입니다. 잠은 깨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버립니다. 우리는 그 상황을 '가위가 눌렸다'라고 표현합니다. 정신은 말짱하니, 몸이 움직여야 하는데, 아직도 렘수면 상태를 유지하는 마비상태입니다. 마치 수술 중 의식만 깨어나는 상황처럼 말입니다. 그래서, 소리를 질러도 삼켜지고, 손발은 옴짝 달짝 못하는데 머리로는 온갖 생각을 합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게 가위예요. 그래서, 의학용어로는 수면 마비(sleep paralysis)라고 부릅니다. 엄밀히 말하자면 수면 중 마비가 아니라, '수면 중 각성 마비'라고 표현해야겠지요. 렘수면중 마비는 꿈으로 지나가지만, '수면마비(sleep paralysis)'시에는 마비 상태에서 정신이 완전히 각성하기 때문에 가위눌림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왜 하필이면 그때 목소리도 나오지 않는 그때에 눈앞에 산발을 한 여성이나, 영정사진 속의 사람의 환영이 내 눈에 보이는지는 아직 과학적으로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떨어지는 꿈

우리는 자주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는데요, 어릴 적 이런 꿈을 꿀 때면 키가 크는 꿈이라고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떨어지는 꿈 역시 우리의 신비한 수면과 관련이 있습니다. 렘수면 단계에서는 단지 운동신경만 마비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지각신경의 하나인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도 일을 멈춥니다. proprio는 나(prio)를 향하는(pro), 즉 자기 자신이란 뜻이고, ception은 '받아들여 느끼는 감각'을 말합니다.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은 근육, 힘줄, 관절로부터 '나에게 오는 움직임에 관한 정보'를 느끼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이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이 없으면 우리가 얼마나 힘을 주었는지 알지 못해요. 저는 총각 때 갓난아이를 안는 것이 매우 두려웠어요. 잘못 안으면 너무 약한 아이가 부서져 버릴 것 같은 느낌 있잖아요?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이 없으면 여러분들도 귀여운 아기를 너무 세게 안아서 울릴지도 모릅니다. 커피잔을 움켜쥐다 깨뜨릴지도 모르며,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로 걸음을 걸을 수도 없습니다. 내가 얼마나 땅에서 저항을 느끼고 내 근육이 그에 반응하는지를 알지 못하니까요. 그래서, 근골격계 질환을 오래 앓고 난 후에는 재활훈련을 통해 이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을 회복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떨어지는 꿈은 수면 중 모든 신체적인 감각을 수용(ception), 특히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이 마비된 상태에서 내 팔과 다리가 허공에 떠있는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머리는 팔다리를 움직인 다고 생각하는데,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의 마비로 아무런 정보가 되돌아오지 않으니 허공을 떨어진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실제 이런다고 키가 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아닐 것 같지요??

감각을 뜻하는 esthesia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은 운동감각(kinesthesia)라고도 하는데, kines는 움직임, esthesia(aistehsis)는 느낌을 말합니다. 느끼지 못하게 마취하는 것은 부정을 뜻하는 a를 붙여 (anestheia)라고 합니다. 무감각증, 마취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aesthetic 역시 '느끼다'라는 aisthesis에서 나온 말입니다. 감상(느낌)을 아름다움으로 표현한 단어입니다.

esthesia: 감각, 느낌

kinesthesia : 움직임에 대한 감각

aneshtesia : 감각을 무효화함, 마취

aestheic : 아름다움을 느끼는

'받아들임'을 뜻하는'ception' in proprioception

고유 수용 감각(pro·prio·ception)의 ception은 받아들여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각(perception) 혹은 개념(conception)도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의학에서 conception은 임신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per·ception은 꽤뚫어(per) 받아들이니 지각이나, 통찰을 의미합니다. conception은 같이(con) 받아들여서 개념을 이해하거나, 임신이란 뜻이 됩니다. 의학에서 ~cept는 '수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recepter는 수용체를, noci·cept·or 해가되는 통증을 느끼는 수용체를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