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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별것 아닌 의학용어 May 23. 2022

파묻은 시체가 내 방문을 열고 있다

의학용어, 말라리아, 미아즈마, 어셔가의 몰락에 표현된 전염병의 원인

지난번에 이어서 에드가 알란포의 소설 속 의학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https://brunch.co.kr/@medicalterms/31


19세기 출간된 에드가 알란포의 어셔가의 몰락은 여러 가지 상징을 담고 있습니다.  19세기 초 서구사회는 매우 흥미로운 시대였습니다.  과학과 마술(magic and science)이 공존하는 시대였어요. 약간 후이지만 셜록홈스 역시 19세기 과학과 마술의 공존의 시대를 잘 보여주고 있죠. 눈부시게 발전하는 도시와 달리 시골지역은 발 빠른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토마스 에디슨은 전구로 도시를 밝혔지만, 강령술의 지지자이기도 했습니다. 에디슨과 동시대를 살았던 티콜라 테슬라는 천재 과학자이자, 신비주의자였습니다. 테슬라 자동차는 그의 이름에서 따온 상호입니다. 테슬라의 사상은 기독교와 동양의 신비적 사상을 넘나 듭니다.

“나는 고통받는 친구를 보고 나 자신도 고통받습니다. 친구와 나는 하나입니다. 그러나 나는 패배한 적, 즉 한 덩어리의 물질을 보고 있습니다. 이 물질 덩어리는 전 우주의 다른 모든 물질 덩어리 중에서 가장 나에게 가장 사랑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를 슬프게 합니다. 이것은 우리 각자가 전체의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증명하지 않습니까?"

테슬라는 발명의 아이디어와 사고 실험을 초월적 환상 속에서 실행했다고 스스로 적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난 이상한 병으로 고생했다. 그때 꿈에서 가끔 내 몸에 이상한 빛이 나를 감싸는 영상을 보았다. 빛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면 시간이 경과해서 나는 차원의 경계를 넘어서 내가 알고 있는 작은 세상으로 여행이 시작되고 새로운 영상들을 발견하게 된다. 처음엔 초점이 흐린 상태에서 영상들이 흐리게 보였다. 나중엔 영상을 확대시키는 법을 배웠다."


19세기 의학의 모습 역시 과학과 마술이 공존하던 시대였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의학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지요. 1862년 파스퇴르가 세균을 발견하였지만, 항생제가 상용화(1930년대)되기까지 현대의학은 그렇게 사람들을 사로잡지 못했습니다. '어셔가의 몰락'은 세균이 발견되기 약간 전(1839년)에 쓰였습니다. 그럼 세균이 발견되기 전까지 서양의 사람들은 질병의 원인을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어셔가의 몰락 도입부에서 이 불길한 느낌의 집 주변에 대해 이렇게 묘사합니다.


These appearances, which bewilder you, are merely electrical phenomena not uncommon—or it may be that they have their ghastly origin in the rank miasma of the tarn.

-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Edgar Allan Poe (1809~1849)



역사 속 의학용어, 미아즈마 Miasma, 말라리아 Malaria

여기에는 재밌는 두 가지 단어가 나와요. 'electrical phenomena'와 'miasma'라는 말이에요. 전기적 현상은 매우 과학적인 느낌의 표현이죠. 반면, miasma는 매우 마술적인 표현입니다. 이 문장에서도 magic and science가 혼재되어 있습니다. 역사속 의학용어 미아즈마는 세균 발생 이전까지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했던 '나쁜 기운'을 말합니다. 늪지나 움푹 파이고 습한 지역, 동물의 사체가 있는 지역에서 발생하는 나쁜 기운이 사람에게 들어와서 병을 일으킨다고 생각했어요. 위의 그림에서 표현된 어셔가의 주변 역시 이러한 나쁜 기운, 불길한 기운을 잘 표현하고 있지요. 이런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해 의사들은 새부리 모양의 가면을 쓰고 다녔습니다.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약초를 넣어 나쁜 기운을 정화하려고 했습니다. 주로 향기가 나는 박하나, 정향 등을 넣었다고 해요. 새부리의 가면은 공포를 유발하게 생겼지만, 사실 공포를 극복하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이러한 나쁜 기운이 병, 특히 전염병을 일으킨다는 생각은 유럽에서 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중국에서 흑사병은 실크로드를 타고 유럽을 죽음으로 몰아넣었지만, 중국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이때 중국 의사들은 병의 원인을 장기, 려기, 역기 등으로 불렀는데 모두 깨끗하지 않은 나쁜 기운을 뜻하는 말입니다. 전통적으로 중국 의사들이 질병의 원인으로 생각했던 '사기'라는 말도 정확하게 나쁜 기운이라는 의미지요. 아직도 아프리카 지역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어가는 말라리아라는 병이 있습니다. 말라리아는 malaria라고 쓰는데, 나쁘다는 의미의 mal, 그리고 공기라는 뜻의 aria가 합쳐진 말입니다. 그러니, 역시 나쁜 기운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접두사 mal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prefix: mal~ , 나쁜, 비정상의, 질병의, 악마의

mal·formation : 잘못된 형태(form)니까 기형을 의미
mal·ignant : 악성의, benign의 반대말, 예후가 좋지 않은, 특히 악성종양을 말할 때 사용
mal·icious : 잘못되기 쉬운, 나쁜
mal·nutrition : 잘못된 영양(nutrition)
mal·practice : 잘못된 의료행위(practice), 즉 의료과실
mal·function : 잘못된 기능
mal·eficient : '해로운, 나쁜 영향을 끼치는' 이란 뜻입니다. 남자를 뜻하는 male과는 상관없고, mal(나쁜)과 eficinet(영향)이 붙어서 나온 말입니다.
꽤 많이 기억할 수 있겠지요?


어셔가의 몰락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관속에 파묻었던 여동생이 살아 돌아오는 장면입니다. 늪지에서피어오른 미아즈마가 서서히 마을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듯, 사신이 되어 돌아오는 여동생은 서서히, 매우 서서히 두 주인공을 공포로 몰아넣습니다. 그리고, 발자국 소리는 바로 문 앞에 다다르지요.


She is coming — coming to ask why I put her there too soon. I hear her footsteps on the stairs. I hear the heavy beating of her heart.” Here he jumped up and cried as if he were giving up his soul: “i tell you, she now stands at the door!!”

- The Fall of the House of Usher, Edgar Allan Poe (1809~1849)


이 어셔가를 둘러싼 미아즈마와 같은 악마의 기운이 서서히 인간의 공포를 잠식하는 장면을 드라마틱하게 묘사했습니다. 조금씩 죄어오는 공포감이 일품입니다. 그라고 이 가족은 파멸을 맞이합니다.


미아즈마를 표현한 그림(1831, Robert Seymou)
공포스럽게 다가오는 죽은 여동생(1986년 출판 표지)


여동생은 미아즈마, 그리고 죽음의 기운, 병의 기운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전염병의 모습과 매우 닮았습니다. 어셔가의 몰락은 세균이 발견되기 직전 유럽인을 공포에 떨게 했던 병인(미아즈마), 전근대적 낭만, 전통에 대한 양가적 감정, 귀족주의, 신분의 몰락등을 그린 작품입니다.
어셔가는 '전근대'의 상징이며, 반면 화자는 유령을 전기적 현상이라고 표현하는 대사에서 볼 수 있듯 '근대 과학'의 상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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