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ilentMeditator Nov 10. 2024

죽음만큼...



이 이야기는 정확하게 2009년 7월 1일 점심때쯤 네이트 판에 올라왔던 글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군요.





이십 대 중반에 사랑했던 사람과 결혼을 약속했고 뱃속에 아이까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자궁이 아닌 나팔관에 착상을 했고 5주 만에 아이와 나팔관을 제거하는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이는 당연히 살릴 수가 없었고 저도 수술을 받지 않으면 쇼크로 사망할 수도 있었을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아이아빠는 수술하고 입원해 있는 동안 바쁘다는 핑계로 병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렇게 이별을 하고 전 유학을 떠났습니다.

3년 전 이 일을 톡에 올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전 다시는 사랑 같은 거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이런 몸으로... 이런 상처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게 미안했고 아직도 미안합니다.

공부에만 집중했고 유학을 갔다가 올해 1월에 돌아왔습니다.

그렇게 3년을 보냈습니다.

3년 동안 제 과거를 모르고 다가오는 사람이 있었고 전 다 막았습니다.

내 과거를 말하면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다 떠나갔습니다. 

한국에 돌아와서 정신없이 바쁘게 하루하루를 보내던 중에 그 사람을 알게 됐습니다.

2월 초에 쑈가 잡혔고 모델들 메이크업 때문에 정신없던 중에 처음 만났습니다.

제가 담당했던 모델들 중 한 분이 쑈가 끝나고 나서 연락처를 물어왔고 그렇게 시작됐습니다.

저보다 두 살 어린 모델이고 사는 곳도 가깝고 제가 일하는 샵과 그 사람이 작은 사업을 하는데

그 사무실도 가까워서 점심시간 때도 자주 만나서 같이 점심 먹고 커피 마시고

가끔씩 퇴근도 같이 하고 심심할 때 영화도 같이 보고 서로 일에 도움도 주면서...

직업과는 다르게 그 사람도 저도 조용한 걸 좋아하고 식성이나 취향도 비슷했고 그래서

친구처럼 편하게 지냈습니다.

성별도 나이도 다르지만 참 많이 닮았다고 느꼈습니다.

그냥 친구처럼 손잡고 가벼운 포옹... 그 이상의 스킨십은 전혀 없었습니다.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이상은 안된다고 항상 조심하고 또 조심했습니다. 

근데 그 사람이 어제 제 퇴근시간에 샵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동네에 자주 가던 공원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좋았어... 네가 나 밀어내는 것 같아서 마음 접어보려고도 했는데...

정리가 안 돼서 고백하는 거야... 우리 진지하게 만나보자. "

정말 듣고 싶었던 말이었지만 또 걱정했던 말이었습니다.

전 그런 상처가 있었고 그 사람에게 미안하고 제 스스로 떳떳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다 밝혔습니다.

결혼하고 싶었던 만큼 사랑했던 사람도 있었고 임신도 했었고 수술을 해서 배에 상처도

남았고 의사 선생님이 어쩌면 자연임신도 힘들지도 모른다고 했다고... 이런 몸으로 누굴

사랑하는 게 미안하고 겁난다고...

그 사람 많이 놀랜 듯했고 전 나중에 보자고 하고 먼저 집에 돌아왔습니다. 

어젯밤에 한숨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일을 하는데도 피곤한 줄도 모르겠고 정신을 반쯤은 놓고 일을 했습니다.

그런데 퇴근시간에 그 사람에게서 전화가 왔고 이미 샵 앞에 와 있었습니다.

어떤 얼굴로 그 사람을 봐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평소보다 더 오버하고 웃으면서 인사했고

그 사람은 아무 말도 없이 저를 차에 태우고 무작정 저희 집 방향으로 갔고 저는 혼자서

떠들었습니다.

안 데려다줘도 된다... 밥은 먹었냐... 오늘 덥지 않았냐...

그래도 그 사람 한마디도 안 하고 운전만 했습니다.

주차장에 도착해서 고맙다고... 잘 가라고 인사하고 내리는 데 따라내려서는 제 손목을 잡고

" 몇 호야? "

"... 2301..."

그때부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어리둥절했고 그렇게 끌려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23층까지

아무 말도 없이 올라갔습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초인종을 누르고 집에 들어가서는 저희 엄마한테 인사를 드리고는

바로 무릎을 꿇고 하는 말이

" **이 울리지 않겠습니다. **이 상처 다 알고 나서 잠깐 흔들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포기가 안 돼서 이렇게 왔습니다. **이 제가 끝까지 책임지겠습니다. 교제 허락해 주세요."

엄마도 우시고 저도 울었습니다.

엄마는 고맙다고... 예쁘게 만나라고 하셨고 전 계속 울다가 미안하다는 말만 했습니다.

그 사람은 저를 달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바로 전화를 해서 우리 이젠 사귀는 거 맞냐고... 너무 떨렸다고... 어머니 처음 뵙는데

미친놈 아니냐고 할까 봐 걱정했다고... 그래도 너무 행복하다고 바보처럼 웃고... 자연임신만

힘든 거지 불가능한 건 아니니까 꼭 셋은 낳아줘야 한다고 말합니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너무 행복하지만 또 미안하고 두렵습니다.

이런 좋은 사람이 왜 하필 저에게 온 건지... 또 그 사람에게도 그 사람 부모님께도 미안합니다.

제가 과연 이런 사랑을 받을 자격이 있는 건지... 자격도 없는 제가 이런 사랑을 받는다는 게

정말 두렵습니다.

욕심내면 안 되는 걸 허락 없이 훔쳐버린 기분입니다.

또 아직 그 사람과 제가 이겨내야 할 일들이 무수히 많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용기를 낸 만큼 저도 용기를 내보려고 합니다.

오늘은 제 인생 최고의 순간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네요.

여러분도 예쁜 사랑 하세요. ^^      





이 두 사람은 지금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저는 아직도 사랑을 키워나가며 예쁜 사랑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무조건...

그래야만 하고요.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투기는 음부같이 잔혹하며...

성경(아가서 8장 6절)에 나오는 말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가 생략되어 있지만

그대로 해석을 해보자면


내 허락 없이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열지 말라... 왜냐하면 사랑은 죽음을 몰고 올 만큼 강하며 그로 인해 생기는 투기도 죽음을 불사하기 때문이다. 


굉장히 강렬한 메시지지요.

특히나, 한번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태도도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오히려 더 사랑에 대하여 소극적일 수 도 있고요.



그 아픔이라는 것이 죽음만큼 강하고 아프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간절히 윗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분이 예쁜 사랑을 잘 만들어 갈 것이라고 무조건 믿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강 건너편에 내려놓은 마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