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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lentMeditator Nov 15. 2024

그릇



예전에 제가 빠져서 봤던 드라마 중에 'JIN'이 있습니다. 


현대 의사가 과거, 그중에서도 애도시대로 떨어져 겪게 되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죠. 


우리나라에도 '닥터 진'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되기도 했습니다.


이 드라마에는 마음에 깊이 새겨지는 대사가 있습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 혹은 후천적인 노력으로 그릇을 갖게 된다.”





주인공이 큰돈이 필요한 상황에서 돈을 빌려줄 사람은 진의 그릇이 어떤지를 보여달라고 요구합니다. 


과거에 그가 도움을 주었던 이는 도움을 받을 만한 그릇을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였지요.


이에 진은 이렇게 답합니다.


“제 그릇은 작습니다. 그렇기에 지금까지 주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왔습니다. 제가 큰 그릇처럼 일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이 말에 상대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합니다.


“자신을 크게 보이려 과장하지 않고 맡은 일을 성실히 해내는 당신은 작은 그릇일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나 그 작은 그릇은 빛나고 아름답죠. 그래서 사람들은 당신을 지켜주고 싶고 돕고 싶어 하는 게 아닐까요?”





어릴 적부터 ‘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고 자랐습니다. 


큰일을 도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세계 제일을 목표로 삼아야만 가치 있는 사람이라 배워왔지요. 


그래서 자동차 산업, 조선업, 전자 산업 등 무엇이든 세계 최고를 목표로 달려갑니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나라 전체를 뒤흔들며 자연의 균형을 깨고 환경마저도 무너뜨리는 일이 발생하곤 합니다.





크다.


스팸 메일 속 광고도 언제나 '더 큰' 것을 주장합니다. 


부부 문제도 ‘작아서’ 생긴다고 하고 무엇이든 ‘크게’ 만들면 해결될 것처럼 이야기하죠.


작으면 루저가 되는 세상. 


큰 차를 타야 ‘사모님’이라고 불리고 작은 차를 타면 ‘아줌마’ 소리를 듣습니다. 


작은 이는 가정을 건사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으로 여겨지고 큰 이는 허세와 과시에도 능력자로 평가받습니다. 


작은 코는 미개한 동양인이라 하고 얼굴에 맞지 않더라도 커다란 코로 재조합해야 서구적 미인이라 불립니다. 


작은 가정을 꾸린 부부조차도 넓은 고층 아파트에 살아야 중산층으로 인식됩니다. 


심지어 미성년자마저 알파벳으로 치수화해 상품화하는 세태까지 왔습니다.


이렇듯 큰 것이 좋다는 사고방식은 우리 머리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며 문득 마음에 와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작지만, 밝게 빛나는 아름다움을 지녔다. 그래서 사람들은 지켜주고 싶어 하고 돕고 싶어 한다.”


커다란 가방을 텅 비운 채 무겁게 짊어지고 걷는 사람과 작지만 물 한 병과 김밥 두 줄이 들어 있는 가방을 메고 걷는 사람. 


커다란 가방을 든 사람은 시간이 흐르면 그 무게에 짓눌리게 될 것입니다. 


언젠가 그 가방을 삶아 먹을 것처럼 끌고 가는 사람에게 다가가 물 한 모금과 김밥 한 줄을 건넬 수 있는 이는 바로 그 작은 가방을 든 사람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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