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10부
기원전 160년의 겨울이 지나고 유다 땅에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러나 그것은 평화의 정적이 아니었다.
유다 마카베오가 엘라사 전투에서 쓰러진 이후 예루살렘 성벽을 따라 바람은 낮게 울었고 백성들은 서로의 눈을 피했다.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지도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하나냐는 스스로를 마카베오의 그림자라 불렀다.
그는 형의 검을 감싸쥐었고 무거운 갑옷을 두르고는 산지의 동굴로 사라졌다.
피로 얼룩진 그 길에서 그는 요나단과 시몬을 다시 불렀다.
마카베오가 남긴 마지막 전우들이 모여들었다.
성전은 또다시 지켜야 할 장소가 되었고 유다는 또다시 시작되어야 할 이야기였다.
요나단 압푸스.
형보다 더 조용했고 더 내성적이었지만 마카베오처럼 끝을 모르는 단단함이 그의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는 형의 죽음을 묻지 않았다.
다만 그 다음 날 사람들 앞에 섰다.
“형의 피는 돌 위에 흘렀습니다.
그러나 기억은 바람에 흩어지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두 형의 자리를 잇겠습니다.”
그 말은 선언이었다.
반란은 다시 시작되었다.
하나냐는 지도자의 자리를 요나단에게 넘기고 그림자에 머물기로 했다.
그러나 그는 전장의 후방에 있지 않았다.
오히려 누구보다 앞장섰고 누구보다 많은 적을 쓰러뜨렸다.
마카베오가 살아 있다면 그와 같은 방식으로 싸웠을 것이다.
요나단은 다시 무기를 든 자들을 모았다.
하지만 병력은 많지 않았고 성문은 닫혀 있었으며 셀레우코스 제국은 이미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바키데스는 다시 예루살렘으로 향하고 있었고 그를 막을 병력은 없었다.
“고프나로 가야 합니다.” 하나냐가 말했다.
“우리가 도망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살아야 합니다.”
그들은 산악 지대로 물러났다.
바위틈마다 병사들이 숨었고 거친 풀숲 아래 작은 불꽃들이 타올랐다.
그리고 그들은 죽음을 기다리지 않았다.
반격을 준비했다.
이 무렵, 요나단은 형제 요한 가디를 나바테아로 보냈다.
셀레우코스 제국에 대항하기 위한 외교적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나바테아는 아라비아 남부에서 번성하던 유목민 집단으로 유대와 국경을 접한 사막 지대에서 상업과 무역으로 힘을 키운 부족이었다.
사해와 아라비아를 잇는 교역로를 장악하고 있었고 그들의 낙타대는 향료, 유향, 비단을 싣고 매일같이 국경을 넘나들었다.
이들 부족과의 동맹은 유대 반란군에게 군수 보급로와 도피처 확보라는 실질적 이점을 제공할 수 있는 전략적 카드였다.
그러나 곧 돌아온 소식은 피의 전언이었다.
요한 가디가 협상을 시도하던 중 나바테아인의 배신으로 살해당한 것이다.
필라크는 동맹을 가장해 요한을 유인한 뒤 그의 목숨을 끊었다.
요나단은 며칠간 침묵했다.
저녁마다 그의 앞에서 불이 타올랐고 그 불빛 아래에서 그는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마침내, 하나냐에게만 조용히 말했다.
“복수하겠다.”
그 말은 단단했고, 슬펐으며 형제의 유언처럼 들렸다.
요한은 동맹을 맺기 위해 갔지만 돌아온 것은 피 묻은 소식뿐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냐에게도 뼛속을 꿰뚫는 고통이었다.
“이 땅은 자비를 모른다.” 하나냐가 말했다.
“그러니 우리도 자비를 거두자.”
그러나 복수는 미뤄져야 했다.
왜냐하면 바키데스가 움직였기 때문이다.
바키데스는 유대인들이 요르단강 인근 습지에 은신해 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안식일을 틈타 기습 공격을 감행했다.
유대인들은 종교 율법상 그날 싸움을 피하고자 했지만 하나냐는 칼을 들었다.
“죽는 날이 곧 안식이라면 우리는 오늘 싸워야 합니다.”
요나단은 형처럼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피와 눈발이 뒤섞인 전장 한가운데서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무기를 들었다.
결과는 참혹했다.
1,000명의 셀레우코스 병사를 죽였지만 결국 중과부적으로 밀려 요르단강을 건너야 했다.
얼어붙은 강물을 가르고 피 흘리며 살아남은 자들은 소수였다.
그러나 그 생존이 곧 희망이 되었다.
그리고 마침내 복수가 시작되었다.
나바테아인의 대열을 급습한 요나단과 하나냐는 기습으로 수십 명을 쓰러뜨렸고 필라크의 사내들을 모조리 쓸어냈다.
그들의 피는 돌바닥에 스며들었다.
그날 밤, 하나냐는 오래도록 잠들지 않았다.
불빛 아래서 그는 형의 검을 갈았다.
요나단은 그 옆에서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시 이 땅을 되찾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편 바키데스는 유대 전역에 요새를 세우고 예루살렘 인근의 아크라 요새를 더욱 강화하였다.
그는 도시 곳곳에 병력을 주둔시키며 반란군의 도피처를 철저히 봉쇄했고 유대 내부에 친 헬레니즘 성향의 세력을 키웠다.
그리고 기원전 159년, 알키모스를 대제사장으로 임명함으로써 반란의 정당성을 제도적으로 꺾으려 했다.
알키모스는 종교적 권위는 부족했으나 셀레우코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고 이를 통해 다시 예루살렘 성전의 지배권을 회복하려 했다.
이후 바키데스는 안티오키아로 복귀하여 전열을 정비했다.
바위보다 무거운 검을 등에 지고 요나단은 말했다.
“돌은 무겁고, 강은 깊지만 우리는 살아 있다.”
그의 음성은 마카베오의 검과 같았다.
요나단은 형을 닮아가고 있었고 하나냐는 그것을 지켜보며 검을 닦았다.
밤이 되면 그들은 불을 지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그들은 죽음을 이미 두 번 넘었다.
그렇게, 다시.
망치의 그림자 아래 하나의 전쟁이 그리고 하나의 믿음이 또다시 피어오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