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11부
기원전 157년의 봄, 겨울이 남긴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바위틈에서 들끓는 불씨가 다시 살아났다.
유다 땅은 잊지 않았다.
피로 쓴 서약과 사라진 형제의 이름을.
요나단은 침묵 속에서 사람들을 모았다.
하나냐는 산기슭의 작은 촌락을 돌며 살아남은 이들을 불러냈고 시몬은 고프나와 미스바를 오가며 병력을 모았다.
다시금 마카베오의 그림자 아래.
다시금, 성전의 깃발 아래.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트바시, 유대 땅 북부의 한 언덕 마을.
폐허가 된 석조 가옥과 무너진 우물 곁으로 요나단과 시몬은 진영을 세웠다.
그곳은 자연 요새처럼 산과 계곡으로 둘러싸인 방어에 유리한 장소였다.
그들은 마카베오가 했던 것처럼 지형을 무기 삼아 다시 싸우기로 결정했다.
바키데스는 셀레우코스 왕 데메트리오스 1세의 명을 받고 또다시 유대 정벌에 나섰다.
그의 군대는 정예병으로 구성된 1만 2천 명 규모였고 바트바시를 포위하며 전면전을 준비했다.
하나냐는 벽돌처럼 묵직한 검을 매만지며 말했다.
“이번엔, 버텨야 한다. 형도,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전투는 3일간 이어졌다.
첫날, 셀레우코스군은 돌격을 시도했지만 바위 언덕과 좁은 골짜기 복잡한 통로로 인해 팔랑크스 진형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하나냐는 시몬과 함께 병사들을 이끌고 협곡으로 몰아넣은 뒤 위에서 돌과 화살을 퍼부었다.
밤에는 매복조가 식량 수송로를 차단했고 포위자는 오히려 포위당하는 형세가 되었다.
둘째 날은 피로 얼룩진 접전이었다.
요나단은 전방에서 물러나지 않았고 하나냐는 매 전투마다 스스로 앞장섰다.
검이 부러지면 적의 창을 뺏어 썼고 상처가 나면 망토로 감쌌다.
언덕에 묻힌 화살 하나마다 전우의 이름이 있었다.
그날 밤, 셀레우코스군은 퇴각을 준비했다.
그러나 바키데스는 물러나지 않았다.
셋째 날 새벽, 그는 대규모 야습을 감행했다.
캄캄한 새벽 안개를 뚫고 그들의 군대가 진군하자 요나단은 기습을 감지하고 반격을 지시했다.
언덕 아래 골짜기에서 다시 충돌이 일어났고 하나냐는 창을 들고 고함을 질렀다.
“이 땅은 우리 것이다! 뺏긴 성전을 되찾으러 싸우는 것이다!”
피는 흐르고 돌은 붉게 물들었다.
그러나 무너지지 않았다.
기원전 153년, 상황은 바뀌었다.
페니키아 해안에서 뜻밖의 인물이 등장했다.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
그는 자신이 안티오코스 4세의 합법적 아들이라 주장하며 데메트리오스 1세의 왕위를 찬탈하기 위해 반기를 들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에게 손을 내민 이들은 프톨레마이오스 6세, 아탈로스 2세, 아리아라테스 5세, 로마 원로원까지였다.
제국의 적은 이제 밖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데메트리오스 1세는 셀레우코스 왕조의 정통 후계자였지만 지나친 억압정책과 내정 불안을 야기한 탓에 내부 지지 기반이 약했다.
요나단과의 전쟁을 지속할 여력이 그에게 없었다.
그는 바키데스에게 유대 반란군과의 휴전을 지시하고 군을 본토로 회군시켰다.
하나냐는 잠시 전장의 먼지를 털었다.
“전쟁이 멈춘 게 아니다. 방향이 바뀌었을 뿐이다.”
바키데스는 알키모스를 대제사장 자리에 다시 앉히고 최소한의 통제를 유지한 채 안티오키아로 복귀했다.
그러나 그 순간을 요나단은 놓치지 않았다.
그는 철수하던 셀레우코스군의 후미를 집요하게 공격했다.
기병을 산속으로 유인하고 도보병을 계곡으로 떨어뜨렸다.
하나냐는 이런 전투를 “돌을 굴리는 싸움”이라 불렀다.
아래로 내려오는 돌을 막을 자는 없다.
이 기습 작전으로 바키데스는 큰 피해를 입고 회군 속도를 늦춰야만 했다.
그 틈을 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는 본토를 위협했고 데메트리오스 1세는 기원전 150년 6월 결국 붙잡혀 처형되었다.
그해 여름, 알렉산드로스 1세는 프톨레마이오스 6세의 딸 클레오파트라 테아와 결혼하며 왕위의 정통성을 공고히 했다.
이 결혼식에 요나단은 귀빈으로 초대되었다.
하나냐는 멀리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가 말하길 “피로 얻은 자리에서,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는구나.”
요나단은 처음엔 발라스의 제안을 경계했다.
셀레우코스 왕실의 또 다른 내란에 휘말릴 위험이 있었고 발라스의 정통성은 아직 불확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발라스는 요나단에게 메리다크, 즉 지방 총독의 직위를 제안하며 유대인의 자치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더불어 유대인의 신앙을 존중하고 대제사장직까지 인정하겠다는 파격적인 조건이었다.
요나단은 며칠 밤을 고민했다.
하나냐는 그런 그를 말없이 지켜봤다.
마카베오가 생전에 늘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무릎을 꿇지 않고 손을 내미는 자, 그가 진짜 지도자다.”
마침내 요나단은 손을 내밀었다.
그는 발라스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클레오파트라의 결혼식에 참석했다.
알렉산드로스는 약속대로 그를 유다 지방의 총독으로 임명했다.
이는 단순한 명예직이 아니었다.
실질적 행정권과 군사력을 인정받은 셈이었다.
이 시기, 셀레우코스 제국은 동방에서 밀려오는 파르티아의 공격으로 극심한 혼란에 빠져 있었고 유대 땅은 잠시의 숨을 고를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냐는 검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말했다.
“왕은 변한다. 그러나 이 땅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밤이면 그는 여전히 전우의 무덤을 찾아갔고 돌 위에 앉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요나단이 이제 정치의 길을 걷게 되었고 자신은 전장의 그늘을 지키는 자로 남았다는 걸 깨닫고 있었지만 그것이 슬프진 않았다.
“우리는 서로 다른 검을 들게 되었지만,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
하나냐는 그렇게 그 날의 바람 속에서 마카베오의 목소리를 다시 들었다.
망치의 불꽃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그리고 저 어둠의 끝에서 다시 무언가가 태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