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칼날, 바람 속의 외교

신구약중간사 12부

by 참지않긔


하나냐는 가끔씩 꿈을 꾸었다.

바위 틈에서 칼을 쥔 채, 무너진 성전 앞에 홀로 서 있는 꿈.

뒤를 돌아봐도 아무도 없고 하늘은 구름이 가득했으며 멀리서 불빛이 번졌다.

마치 다가올 혼돈의 전령처럼.

그 꿈은 기원전 147년의 어느 봄날, 현실로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그해의 유다 땅은 평온해 보였다.

바키데스가 돌아간 후 요나단은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 직을 맡으며 겉으로는 안정을 꾀했다.

하나냐는 여전히 군사 작전을 총괄하는 입장이었고 시몬은 요새 수비와 지역 통치를 맡아 유대 전역을 다졌다.

하지만 그들은 알고 있었다.

평화는 누군가의 욕망이 조용해졌을 때 오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욕망이 고개를 들 때쯤 찾아온다는 것을.

그 욕망의 이름은 데메트리오스 2세였다.




데메트리오스 1세의 아들이자 로마에서 인질로 자라난 젊은 후계자.

그가 갑작스럽게 돌아와 아버지의 정적인 알렉산드로스 1세 발라스를 상대로 반란을 일으킨 건, 그해 봄의 가장 큰 파문이었다.

유다인들 사이에서도 술자리가 있는 곳마다 이 이야기가 떠돌았다.

"알렉산드로스는 신의 아들이라며?"

"그건 스스로 주장한 거지. 이번엔 진짜 왕이 돌아온 거야."

"우리가 누구 편을 들어야 하지?"

요나단의 고민은 깊었다.

발라스는 자신에게 대제사장의 직함과 지방 총독 메리다크의 지위를 주었지만 그것은 셀레우코스 제국의 내전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안에서 끓어오르는 한시적 권력이었다.

반면 데메트리오스 2세는 젊고 공격적이었다.

그를 지지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몰랐다.

요나단은 침묵했고 하나냐는 칼집에 손을 얹었다.

“기회란 건 늘 칼날 위에서 춤추는 법이야.”




그 선택의 결과는 빠르게 다가왔다.

요나단은 비밀리에 병력을 규합했고 시몬과 함께 아조토스로 향했다.

그곳은 알렉산드로스 발라스가 임명한 총독 아폴로니오스가 다스리고 있었다.

그는 요나단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선제공격을 감행했지만 오히려 아조토스 전투에서 전멸에 가까운 패배를 당했다.

그 전투는 하나냐의 지휘 하에 치러졌고, 그는 돌풍처럼 아폴로니오스의 좌익을 꿰뚫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아조토스 시 외곽에서 그는 조용히 말했다.

“전쟁은 외교보다 빠르다. 하지만, 외교는 끝을 만든다.”

요파, 아스칼론, 가자까지.

유다의 병력은 해안 평야로 밀고 내려갔고 셀레우코스 제국의 행정 도시들은 하나씩 무릎을 꿇었다.

알렉산드로스 1세의 영향력은 빠르게 약화되었고 요나단은 이를 명분으로 데메트리오스 2세에게 접근했다.




기원전 145년.

알렉산드로스 1세가 패배했다.

데메트리오스 2세는 왕위를 차지했고 그에게 복속 의사를 밝힌 요나단은 프톨레마이스로 향했다.

하나냐는 예루살렘에 남아 성전 경비와 방어선을 정비하며 마음을 졸였다.

그날 밤, 하나냐는 혼자 성전 동편의 테라스에 서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는 유다 마카베오의 죽음을 떠올렸고, 엘르아살의 피묻은 갑옷을 기억했다.

“우리는 왕의 뜻을 섬기는 자가 아니라, 이 땅의 심장을 지키는 자야.”

하지만 정치는 칼보다 무거운 검을 요구했다.

데메트리오스는 요나단에게 보상으로 사마리아 북부의 세 토파키아 지역 통치를 허락했다.

동시에 아크라 요새의 헬레니즘 수비대를 인정하라는 요구와 함께 연간 300달란트를 제국에 바치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요나단은 고민 끝에 수락했다.

하나냐는 반대하지 않았다.

“이건 전쟁이 아니라 시간과의 싸움이야.”




요나단은 데메트리오스의 명을 받아 안티오키아에서 발생한 시민 봉기를 진압하기 위해 3,000명의 유대 병력을 파견했다.

하나냐는 그들의 출정을 조용히 지켜봤다.

봉기는 피로 진압되었고 요나단의 위상은 더더욱 높아졌다.

하지만 하나냐는 그가 점점 정치의 중심으로 빨려 들어가는 걸 보며 불안해했다.

“유다처럼, 피의 칼날이 되어선 안 돼. 그러나 너무 멀리 나가면, 뿌리를 잊게 되지.”

그는 고요한 밤마다 형제들의 무덤을 찾아가 돌 위에 앉아 기도했다.

기도는 짧았지만, 마음은 길었다.

“우린 아직 싸움의 중심에 있어.”

예루살렘의 밤은 깊어졌고 아크라 요새의 등불은 여전히 꺼지지 않았다.

하나냐는 마지막까지 칼을 벼르며 그날을 기다렸다.

이제 그들의 땅에는 다시 바람이 불고 있었다.

새로운 불씨, 새로운 대결. 그리고 칼날 위의 외교.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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