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구약중간사 14부
기원전 142년, 예루살렘의 겨울은 차갑고 무거웠다.
성전의 돌계단은 밤새 내린 비로 젖어 있었고 찬바람이 골목을 휘돌며 사람들의 망토를 흔들었다.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뒤덮여 있었고 성전 안뜰에서는 제사장들의 기도 소리가 희미하게 울렸다.
그러나 그 기도는 바람에 묻혀 힘을 잃었고 예루살렘은 불안한 고요 속에 잠겨 있었다.
하나냐는 성전 남쪽 정원에 서 있었다.
그의 낡은 망토는 바람에 펄럭였고 손에는 오래된 지팡이가 쥐어져 있었다.
그는 지팡이를 땅에 짚으며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그의 눈은 성전의 높은 돌기둥을 향했지만 마음은 과거로 돌아가 있었다. 유
다, 엘르아살, 요나단, 요한, 그리고 시몬—그의 형제들.
그들은 함께 싸웠고 피를 흘렸으며 신의 이름을 부르며 유대를 지켰다.
하지만 이제 유다와 엘르아살은 흙 아래 잠들었고 요나단은 최근 디오도토스의 손에 죽었다.
남은 것은 요한과 시몬, 그리고 하나냐 자신뿐이었다.
그러나 하나냐는 느꼈다.
그들 사이의 끈은 점점 느슨해지고 있었다.
“시몬” 하나냐는 중얼거렸다.
그의 목소리는 바람에 묻혀 사라졌다.
“너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거냐?”
**
시몬은 요나단의 죽음 이후 유대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데메트리오스 2세와 동맹을 맺고 디오도토스에 맞서 싸웠다.
데메트리오스는 시몬을 “유대의 왕”이자 “대제사장”으로 칭하며 광범위한 자치권을 부여했다.
그러나 하나냐는 알았다.
그 칭호는 신의 뜻이 아니라 정치적 거래였다.
데메트리오스는 디오도토스를 견제하기 위해 시몬을 이용했고 시몬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하나냐는 시몬의 변화에 불안을 느꼈다.
그는 형제의 권력 강화가 신의 뜻을 벗어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의 마음은 무거웠고 시몬과의 갈등은 점점 깊어졌다.
**
시몬은 가자를 먼저 노렸다.
디오도토스와 데메트리오스 2세가 서로 싸우느라 혼란에 빠진 틈을 타 그는 병사들을 이끌고 남쪽으로 향했다.
가자는 해안에 자리 잡은 전략적 요충지였다.
그곳을 차지하면 유대는 바다로의 길을 열 수 있었다.
하나냐는 그 원정에 동행했다.
그는 시몬의 곁에서 싸웠지만 그의 마음은 무거웠다.
가자의 성벽은 오래되었고 그 돌은 마모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돌은 오랜 시간 동안 침묵을 지키며 사람들을 견뎠다.
시몬은 그 돌을 무너뜨리기 위해 칼을 들었다.
그는 더 이상 유대의 해방자가 아니라 해방을 증명해야 하는 자가 되었다.
시몬은 말 위에서 성을 내려다보았다.
돌담 너머의 바다는 어두웠고 파도는 낮게 울고 있었다.
그는 말했다.
“이 성은 오늘 무너진다.
이 돌은 우리 것이 아니었으나, 오늘 이후에는 그럴 것이다.”
그의 목소리는 낮고 단호했다.
병사들은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 말은 기도가 아니라 명령이었고 그의 말에는 신의 이름 대신 그의 이름이 실려 있었다.
하나냐는 시몬의 곁에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칼을 들지 않았다.
그의 손은 지팡이를 쥐었고 그 지팡이는 전쟁의 무게보다 더 무거웠다.
그는 말했다.
“이 돌이 무너지면 그 아래 묻히는 건 누구입니까?
우리의 적입니까 우리의 율법입니까?”
시몬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대답을 잃은 자가 아니라 대답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자였다.
공성은 짧았고 잔인했다.
가자의 수비군은 물이 끊긴 이틀째 되던 날 항복했다.
시몬은 성문을 넘어 병사들을 들였다.
그는 사람들을 심문하지 않았고 항복을 조건으로 성을 보존했다.
그러나 일부는 도망쳤고 일부는 거리에서 피를 흘렸다.
성벽 위에 깃발이 올랐다.
그 깃발은 하얀 바탕에 검은 글씨로 ‘시몬’이라 적혀 있었다.
그 글씨는 바람에 나부꼈고, 구름이 그 위를 덮었다.
하나냐는 그 깃발을 바라보았다.
그는 형의 이름이 깃발에 박히는 것을 보며 말했다.
“너의 이름이 도시보다 크면 신의 자리는 어디에 있겠는가.”
야파는 가자보다 더 쉽게 무너졌다.
그곳의 사람들은 시몬의 명성을 들었고,
저항은 의지를 가지지 못했다.
시몬은 항구에 서서 바다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는 끝없는 수평선이 있었다.
그는 말했다.
“우리는 이제 물의 민족이 될 것이다.
이 바다는 우리의 무릎이 아니라 우리의 어깨까지 닿을 것이다.”
하나냐는 물었다.
“우리는 어디까지 잠길 것인가?”
시몬은 그 질문에 미소를 지었다.
그의 미소는 바다보다 차가웠다.
전투가 끝난 야파의 저녁 하나냐는 성전의 방으로 돌아와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그 침묵이 기도보다 길었다.
시몬은 돌아오는 길에 말을 멈추었다.
그는 돌길 옆의 오래된 무덤을 보았다.
그곳은 유다와 엘르아살이 묻힌 곳이었다.
그는 말에서 내리지 않았고, 무덤을 향해 고개만 숙였다.
하나냐는 말에서 내려 흙을 만졌다.
그 흙은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은 말보다 많았다.
**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시몬은 아크라 요새를 포위했다.
그곳은 유대 땅에 남은 마지막 이방인의 돌이었다.
시몬은 그 돌이 무너져야 신이 돌아온다고 믿었다.
그러나 하나냐는 알고 있었다.
신은 이미 떠났다는 것을.
포위는 오래 이어졌다.
요새는 굶주렸고 병사들은 지쳤다.
시몬은 병사들에게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바라보았다.
그 침묵이 명령이었다.
성전의 돌기둥에는 시몬의 동판이 세워졌다.
그 글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시몬, 유대의 왕이자 대제사장, 신의 뜻에 따라 이 땅을 지켰다.”
하나냐는 그 동판 앞에서 서 있었다.
그는 그 문장을 읽지 않았다.
그는 돌을 보았다.
“신의 뜻은 돌에 새겨지지 않는다.
신의 뜻은 그 돌 앞에 무릎 꿇는 자의 입에서 흘러나온다.”
그는 그날 기도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신의 이름을 형의 입에서 듣고 싶지 않았다.
하나냐는 성전의 동편 회랑을 걸었다.
그 돌은 바람에 식었고 기도는 그 안에서 사라졌다.
사람들은 시몬을 따랐고 시몬은 신의 자리를 비워둔 채 스스로 그 위에 앉았다.
그리고 하나냐는 느꼈다.
이 도시는 더 이상 신의 도시가 아니었다.
이곳은 시몬의 도시였다.
**
로마의 이름은 예루살렘 돌담 아래서 천천히 퍼져나갔다.
그 이름은 이방의 언어였고 칼의 언어였으며,
시몬이 택한 마지막 담보였다.
그는 성전의 서쪽 회랑에 지도를 펼쳤다.
그 지도는 오래된 양피지 위에 낡은 경계선과 검은 바다를 담고 있었다.
시몬은 지도의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그곳엔 ‘Roma’라는 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적이 아니다,”
시몬이 말했다.
“그들은 우리가 선택해야 할 친구다.”
그의 조언자들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들은 동의하지 않았고 반대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제 시몬의 질문이 아니라 시몬의 결정을 기다렸다.
사람들은 성전에 모였다.
그들은 기도하려 왔고, 선언을 들으려 왔고 무릎 꿇으러 왔다.
시몬은 그들 앞에 섰다.
그는 제사장의 옷을 입고 있었으나,
그 옷 안에는 왕의 검이 감춰져 있었다.
“로마에 사절을 보낸다.”
그는 말했다.
그 말은 연설이 아니었고 해명도 아니었다.
그 말은 사실이었고 그 사실은 돌처럼 떨어졌다.
하나냐는 그 말을 들었다.
그는 회랑의 끝, 어둠 속에서 그 말을 들었다.
의 입은 굳게 닫혔고 그의 눈은 멀리 떨어진 돌기둥에 머물러 있었다.
그날 밤, 그는 시몬을 찾아갔다.
“로마에게 우리의 이름을 건넨다는 것이 당신에게 자유를 의미합니까?”
시몬은 침묵했다.
그는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고 그의 그림자는 창 너머 빛에 흔들리고 있었다.
“그들은 우리의 이름을 받겠지만 그들은 우리에게 이름을 남기지 않을 겁니다. 그들의 우정은 방패가 아니라 족쇄입니다.”
하나냐의 말은 낮고 단단했다.
그 말은 기도가 아니라 경고였다.
시몬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자유는 없다. 자유는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
그 말은 진실이었지만 하나냐에게는 거짓보다 더 아프게 들렸다.
며칠 뒤 사절단이 떠났다.
그들은 말 네 필과 동판 문서 하나를 가지고 있었다.
그 문서에는 시몬의 이름이 있었고 유대의 독립을 선언하는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시몬, 유대의 왕이자 대제사장, 로마의 친구로서 이 땅을 지킨다.”
성전의 기도는 그날 멈췄다.
향로에는 불이 붙었지만 그 향은 하늘로 올라가지 않았다.
사독 계열의 제사장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성전 깊숙한 곳, 기록보관소 옆 회당에 모였다.
그들의 말은 낮았고, 분명했다.
“율법은 외세와 타협하지 않는다. 대제사장은 사독의 씨앗에서 나와야 한다. 왕은 검을 들어야 하고, 제사장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둘은 같은 자리에 설 수 없다.”
그 말은 더 이상 속삭임이 아니었다.
그 말은 이제 반역이 되기 시작했다.
시몬은 알고 있었다.
그가 로마를 향해 손을 뻗는 순간 율법은 그 손을 놓을 것임을.
그러나 그는 손을 거두지 않았다.
그는 돌 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고 이제 그 이름을 바다 너머에 보내려 했다.
하나냐는 밤마다 잠들지 못했다.
그는 성전 기둥 사이를 걷고 제단의 돌을 만지며 기도를 하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기도보다 길었고 그 침묵은 고통보다 무거웠다.
그리고, 편지가 돌아왔다.
로마 원로원의 결정이었다.
“시몬은 유대의 정당한 통치자이며 대제사장이다. 그는 로마의 친구이며, 유대는 독립된 국가로 간주된다.”
성전 안뜰은 환호로 가득 찼다.
사람들은 손뼉을 쳤고 제사장들은 향을 피웠고 병사들은 창을 높이 들었다.
러나 하나냐는 그 자리에서 벗어나 있었다.
그는 그 편지를 손에 쥔 채 기둥 아래 앉아 있었다.
그의 눈은 문서 위 글자를 지나 저 멀리 돌기둥의 그늘을 응시하고 있었다.
“로마의 친구…”
그는 중얼거렸다.
“신은 우리에게 친구가 아니라 율법을 주셨는데...”
그날 밤,
하나냐는 성전 뒷마당의 돌기둥에 등을 기댔다.
그 돌은 차가웠고 그 위에는 아무 이름도 새겨져 있지 않았다.
“신이시여, 당신은 어디에 계십니까?”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기도는 올라가지 않았고 그의 눈은 감기지 않았다.
그는 이제 이 성에 더 이상 남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다.
**
그해 봄, 성전의 돌기둥 아래에서 사독 가문의 제사장 하나가 쓰러져 있었다.
그는 입을 다물고 있었고 손엔 작고 낡은 두루마리가 들려 있었다.
그 두루마리엔 단 한 줄이 쓰여 있었다.
“율법은 피보다 먼저다.”
그는 요나탄이었다.
젊었고 말이 많지 않았고 기도할 때 눈을 감지 않는 습관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을 보았고 그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말이 사라진 자리에 무릎 꿇은 침묵만이 있었다.
시몬은 성전 회랑에서 그 소식을 들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손을 들어 병사들을 해산시켰고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자신이 대제사장이 되는 순간부터 자신은 더 이상 율법의 증인이 아니라 율법의 경계선이 되었다는 것을.
그날 밤, 하나냐는 다시 시몬을 찾아갔다.
문을 열지 않았다.
그는 문 앞에서 앉았다.
“형제여, 너는 신의 이름을 걸고 사람들의 이름을 지우고 있다.”
시몬은 안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숨결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의 침묵은 대답이었고 그 대답은 결별이었다.
며칠 후, 성전 남문에 또 한 줄의 문장이 붉게 새겨졌다.
“신은 대제사장을 선택하셨고 왕을 원하시지 않았다.”
그 돌은 곧 깎여 나갔다.
글자는 지워졌고 새 돌이 들어섰다.
그러나 하나냐는 그것을 보지 않았다.
그는 이제 성전의 그림자 속에 머무르지 않았다.
그는 걷기 시작했다.
매일, 새벽이면 동편 회랑을 따라 걷고 해 질 무렵엔 북쪽 돌담 아래를 돌았다.
그의 걸음은 느렸고 그의 침묵은 점점 길어졌다.
기도는 사라졌고 그의 입에 남은 건 단 하나의 이름뿐이었다.
“시몬.”
그는 더 이상 형제에게 말을 건넬 수 없었다.
그 이름은 이제 신의 이름과 부딪혔고 율법보다 높게 놓였다.
로마에서 돌아온 동판은 성전 바닥에 박혔다.
그 금속은 반짝였고 사람들은 그 위를 지나며 고개를 숙였다.
“시몬, 유대의 통치자이자 대제사장, 로마의 친구.”
그 이름은 이제 신보다 먼저 불렸고 그 문장은 기도보다 자주 읊조려졌다.
하나냐는 더 이상 그 문장을 읽을 수 없었다.
그는 자신의 입술이 그 음절을 만드는 순간 신이 그의 목소리에서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그는 떠나야 했다.
마지막 밤, 그는 성전의 가장 높은 기둥 아래에 섰다.
바람이 불었고, 도시의 불빛은 아득했다.
그 아래엔 시몬이 있었고 돌이 있었고 칼이 있었다.
그 위엔 더 이상 신이 없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형제여, 나는 너를 미워하지 않는다. 너는 이 도시를 지켰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여기 있을 수 없다.”
아무 대답도 없었다.
시몬은 듣고 있었고, 듣지 않았다.
그는 사람들을 움직였지만 형제의 마음을 불러낼 수는 없었다.
하나냐는 성문을 향해 걸었다.
병사들은 그를 말리지 않았다.
사람들은 눈을 피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작별을 고하지 않았다.
그는 떠났다.
그의 등에 망토는 없었고 지팡이는 무겁지 않았다.
그가 걷는 길 위에 기도는 피어나지 않았고 그의 발자국만이 남았다.
예루살렘은 뒤에 남았다.
그곳엔 형제가 있었고 왕이 있었고 신의 자리를 대신한 검이 있었다.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냐는 알고 있었다.
그 침묵이야말로 신의 마지막 음성이었다.
*************************
이것으로 헬레니즘 시대를 배경으로 유다 마카비로 부터 시작된 하스몬 왕가가 열리게 되는 과정을 하나의 이야기에 담아 봤습니다.
태어나서 소설 형식의 글은 처음 써보는 탓에 저도 어색하고 읽으시는 분들도 어색했을 듯 합니다.
이제 다음 15부 부터는 다시 서술 형식으로 시몬 이후의 신구약중간사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