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하루의 그림자가 기울어가는 오후입니다.
그런데도 내 안에는 아직
새벽이 머물고 있습니다.
그 새벽
희미하게 깔린 음악이
기억의 창을 조용히 두드렸습니다.
편지 몇 장이 조심스레 펼쳐지고
잊은 줄 알았던 이름들과 마주했습니다.
음악을 따라
기억을 따라
생각이라는 이름의 작은 배를 띄워
고요한 감정의 강을 흘러갔던 시간이었습니다.
가슴 깊이 묻어야 할 기억들은
한 장 한 장, 정성스럽게 접어
속절없는 상자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마음속에 오래 간직하고픈 기억들은
숨결을 불어넣듯 되살려
심장의 가장 은밀한 곳에 심었습니다.
혼자 살아간다는 것
그것은 언제나 담담한 듯 보여도
어쩌면 바람처럼 자주 흔들리는 것.
하지만 또
결코 그 흔들림이
늘 불안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군가 함께하지 않는다고 해서
걸어가지 못할 길은 아니며
누군가 곁에 있다고 해서
그 길이 무겁기만 한 것도 아니니까요.
그리고 마침내
새벽이 아침을 품고 물러가듯
회한은 그렇게
몸을 감싸고 흐르다가
이내, 흩어졌습니다.
지금 나는 오후의 햇살 아래에 앉아
그 새벽을 다시 꺼내어 써봅니다.
기억이 묻어나는 문장 하나
감정이 내려앉은 쉼표 하나
그 모든 것들이
아직도 나를 새벽으로 데려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