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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만 하는 대답

by 참지않긔


나는 거절을 잘 못했다.

그냥 못한 게 아니다. 안 했다.

누가 부탁하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아니라고 하면 상대가 상처받을까 봐.

그 상처받은 얼굴을 보는 게 더 무서웠다.

그게 내 착함의 값이었다.

그 착함이 내 살을 어디서부터 야금야금 갉아먹는지, 나는 몰랐다.




언젠가 회사 복도 끝에서 동료가 나를 불러 세웠다.

내가 맡은 일이 아닌 보고서를 대신 해달라고 했다.

그때도 웃었다.

밤새 문서에 숫자를 붙이고 표를 붙였다.

그 사람은 퇴근했고 나는 자판을 두드리다 졸았다.

눈꺼풀이 바싹 말라있었다.

그런데 아침이 되어 그 사람은 내 자리 옆에서 커피를 쥐고 웃었다.

‘덕분에 살았다.’

나는 아무 말 못했다.

아무도 나한테 ‘너는 덕분에 살고 있냐’고 물어주지 않았다.




그런 일들이 내 등을 조금씩 구부렸다.

사람을 줄여야겠다고 생각했다.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고 답장을 늦췄다.

약속은 늘 나중이었다.

모임 초대가 오면 잠깐 핸드폰 화면을 보고 어딘가 멀리 던져버렸다.

아무도 없는 방, 그것만 남았다.




방 안은 처음엔 비어있었고 비어있는 게 나 같았다.

낡은 전등이 깜박일 때마다 벽에 비친 그림자가 부서졌다.

그 그림자가 마치 오래 묵은 나의 욕망 같았다.

말라붙고, 부서지고, 켜켜이 쌓였다.




사람이 없으면 거절할 일도 없다.

거절하지 않아도 되는 대신,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그 시간은 구멍이다.

나는 구멍이 싫었다.

그래서 문장을 붙잡았다.

자판 위에 손가락을 올리고 문장 하나를 긁어낸다.

문장은 나다.

누가 대신 써주지 않는다.

문장을 쓰면서만 나는 나한테 ‘예스’를 한다.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한다.

하고 싶은 게 하나도 없었다면 나는 어땠을까.

누군가는 누군가의 필요로만 하루를 채운다.

필요한 사람은 필요가 떨어지면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그게 더 편하다고 말하는 얼굴들을 나는 봤다.

나는 그게 두려웠다.

누군가의 필요로만 사라지는 사람.

나는 그게 싫었다.




좋은 사람이라는 말은 사소하게 시작해 끝내 사슬이 된다.

좋은 사람은 예스를 한다.

예스, 예스, 예스.

예스가 쌓이면 내 뼈가 조금씩 비틀린다.

나는 이제 그 사슬을 잘라냈다.

누군가 뒤돌아 떠나면 조금은 아프지만 견딜 수 있다.

나한테 다시 돌아오는 게 더 무서웠다.




나이가 들자 무서움이 조금씩 뒤로 물러났다.

젊을 때는 벗어나고 싶었다.

어디서부터 벗어나야 하는지 몰랐으니까 더 고통스러웠다.

늙어가면서 붙잡을 게 생겼다.

철학, 책, 문장.

한 손에 잡히는 건 별로 없는데, 그게 오래 간다.

낡은 책등이 떨어져나가는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마음 어딘가가 붙는 소리를 들었다.




고독은 감옥 같았다.

그러다 집이 됐다.

아무도 없는 방에 앉아 전등 불빛 아래에서 문장을 깎는다.

이 문장은 나 말고 누구도 필요하지 않다.

그래서 좋다.

그래서 오늘도 그걸 쓴다.




어쩌면 나는 다시 좋은 사람이 될 수도 없다.

누구에게도 예스를 하지 않는다.

철학자는 애초에 좋은 사람이 아니다.

철학자는 다정하지 않다.

질문하고 의심하고 물어뜯는다.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반항이다.




나는 지금 문장을 쓴다.

아무도 대신 써주지 않는다.

내 문장은 내 것인데 언젠가는 나조차 그걸 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쓴다.

끝내 내 편이 되어줄지 아닐지 알 수 없는 문장이라도.

그래도 쓴다.

그게 내 유일한 예스다.

이제는 나만에게 하는 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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