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관여하지 않기로.
네 번째까지만 친구의 독서에 관여하기로 결심했다. 그 이후에는 친구의 손에 맡기기로 결심했다. 왜냐하면 친구에게 독서 취향이라는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친구는 전통적이지 않은 한국 현대문학을 좋아한다. 취향이 생겼다는 것은 서로 다른 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는 뜻도 되지만, 자신이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파악할 수 있을 만큼의 식견이 생겼음을 의미하니까.
그래서 마지막에 세 가지만 이야기하고 이후로는 같이 서점에 가고 책을 고르기는 하겠지만, 내가 이끌어가지는 않겠다고 했다.
친구가 [초역 논어의 말]을 읽고 굉장히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내게 말했다. 그러면서 논어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아주 원론적이지 않으면서도 초역보다는 글밥이 많은 책을 찾아 추천해 줬다.
여기서 다른 비화를 하나 더 풀 수 있겠다. 2년 전 친구가 서점에서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큰맘 먹고 구매했는데 너무 어려워서 조금만 읽고 포기했다는 것이다. 인간관계론 내용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지만, 부연설명이 너무 많아서 내용을 요약할 줄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읽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했던 적은 있는데, 이게 내 친구의 이야기일 줄이야. 그러던 어느 날 서점에서 [초역 카네기의 말: 인간관계론]을 보고, 이런 인간관계론이면 친구도 충분히 읽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친구에게 바로 추천해 줬다.
(여기서 언급한 '점진적 독서법'은 내가 고안한 고전 독서법이다. 그래서 포스팅 링크를 걸어둔다.)
처음에 시집을 추천하지 않았던 이유가 있다. 소설보다 다루는 어휘 수준이 높기도 하고, 소설에서는 줄글로 풀어 설명해 주는 것을 시에서는 한 단어에 뭉뚱그려놓기 때문에.
대신 시집이라는 장르에 눈을 열어주기 위해 세 가지 시집을 비교해 보라고 한 후 보여줬다. 고선경 시인의 [샤워젤과 소다수], 이병률 시인의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한 적], 나태주 시인 시집. 나태주 시인의 시집은 제일 쉽지만 표현이 오그라든다고 했고, 이병률 시인은 어둡고 어렵게 느껴진다고 했다. 만약 시집을 봐야 한다면 [샤워젤과 소다수]를 읽고 싶다고 했다.
나중에나마 시집을 추천한 이유는 시집이 어휘력을 높이기 좋고, 글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력을 높이기에 제일 좋은 장르이기 때문이다. 나도 시집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지만 요즘 자주 읽어보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사피엔스 만화책과 그리스 신화 관련 도서, 커피사에 관련된 도서를 추천해 줬다. 하지만 친구가 이쪽 장르에는 지루함을 많이 느꼈다. 교양으로 알면 좋은 분야이기는 하지만 강요할 마음은 없었기 때문에 이쪽 책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