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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닥터 양혁재 Nov 20. 2023

당신이 행복할 수 있다면

어머님이 행복할 수 있다면, 무엇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들 아니겠는가. 



산더미처럼 쌓인 절인 배추 앞에서 막막해하고 계시는 어머님을 위해 앞치마를 입었다. 꽃분홍색 고무장갑 역시 비장한 각오로 꼈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어머님을 대신하여 김장을 도맡기로 했다. 푹 절여진 배추를 반으로 가르고, 양념을 묻히는 과정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고되었다. 하지만 내가 하지 않으면 이건 온전히 어머님의 몫으로 돌아갈 일이 아닌가. 한겨울에도 옷이 땀에 흠뻑 젖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잠시도 자리를 비우지 않고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결국 김장을 완벽하게 끝냈다. 


이번 김장에서 예상외로 가장 힘들었던 과정은 절여진 배추 곳곳에 양념소를 넣는 일이었다. 어머님께서 미리 준비해 두신 양념을 배추 사이사이에 잘 넣고 또 표면에도 듬뿍 발라주는 일. 이건 기술이 필요한 일이었다. 힘이 넘친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던 것. 다행히 솜씨 좋은 성연 씨의 도움으로 양념소 넣기와 버무리기를 생각보다 빨리 끝낼 수 있었다. 끝내고 나니, 어깨가 뻐근했다. 눈도 시큰거렸다. 무릎을 꿇고 하다 보니 무릎 통증도 꽤나 심했다.


하지만 드디어 끝낸 대업에 행복해하시는 어머님의 모습을 보니 모든 피로와 통증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어머님이 행복할 수 있다면, 아들로서 이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일에도 기꺼이 나설 수 있다. 


내가 담근 김치로 부디 이번 겨울에는 어머님의 밥상이 푸짐하기를.

맛있는 김치로 찌개도 끓여드시고,  비 오는 날엔 전도 부쳐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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