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겨울, 안동에서

by 도시 닥터 양혁재

이번 겨울은 유난히 날이 차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금방 귓불이 붉어지고 손이 시려온다. 연일 추운 날씨가 이어지니 나도 이른 아침 따뜻한 이불 속에서 몸을 빼내는 것이 쉽지 않은 요즘이다. 매일 아침 알람이 울릴 때마다 온기가 감도는 방 안에서 계속 누워있고 싶은 욕망을 간신히 떨치고 화장실로 가 출근할 준비를 한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 하루도 빠짐없이 병원으로 출근해 진료를 보고 수술을 하면 사실 금요일쯤에는 나도 사람인지라 지칠 때가 있다. 하지만 토요일 이른 새벽부터 마냥이쁜우리맘 어머님들을 찾아뵈어야 하니 쉴 틈이 없는 것이 아쉽다. 그래도 아들만을 기다리는 어머님들을 떠올리면 모든 피로가 눈 녹듯 녹아내린다.


이번 안동에서도 그러했다. 금요일 늦은 밤까지 진료를 하고 다음날 새벽 2시에 일어나 곧바로 안동으로 달려왔기에 눈 주위가 뻐근할 정도로 고단했다. 그러나 활짝 웃으시며 나를 반기는 어머님을 뵙고 나니 다시금 에너지가 샘솟았다. 정말 놀라울 정도로 엄청난 에너지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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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으로 어머님 댁에 가기 전에 나는 성연 씨와 안동의 명소 '월영교'에서 만나기로 약속했었다. 하회탈을 쓴 채로 말이다. 언제봐도 정겨운 하회탈을 쓰고 나는 월영교를 건너기 시작했고 중간 지점에서 성연 씨를 만날 수 있었다. 매주 만나지만, 언제봐도 반가운 성연 씨와 함께 일주일 동안 밀린 수다를 실컷 떨었다. 그리고 곧 찾아봬야 할 마냥이쁜우리맘 김이녀 어머님을 위한 찬거리들을 사러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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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발걸음을 옮겨 왁자지껄한 안동 중앙 재래시장으로 향했다. 어찌나 사람이 많은지, 수많은 인파들을 헤치고서야 겨우 시장 깊숙한 곳으로 진입할 수 있었다. 평소 어머님은 채식주의자로 고기를 잘 드시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 어머님께서 가장 드시고 싶은 것이 바로 '아귀찜'이라는 이야기를 전달받았다.

시장 구석구석을 헤맨 끝에 싱싱한 아귀를 판매하는 곳을 발견했고, 성연 씨와 함께 매의 눈으로 살펴 가장 좋은 것으로 구입했다. 사실, 아귀를 사면서도 이걸 과연 요리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성연 씨가 그런 나의 마음을 읽었는지 '아귀찜쯤이야 눈 감고도 할 수 있죠'라며 걱정을 덜어줬다. 참 고맙게도 말이다.


과연 성연 씨는 최고의 요리사였다. 어머님 댁에 도착하자마자 군침 도는 아귀찜을 만들어냈다. 따로 레시피를 보지도 않고 본인의 노하우대로 양념장을 뚝딱 만들어 상을 차려냈다. 게다가 어머님과 달리 고기를 좋아하시는 아버님을 위해 불고기까지 준비하는 센스를 보였다. 성연 씨 덕분에 나도, 어머님 아버님도 오랜만에 배를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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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연 씨가 맛있는 요리를 대접하는 것으로 효도를 했다면 나는 농한기 일손을 거드는 것으로 어머님, 아버님께 마음을 전했다. 한바탕 수확이 끝난 비닐하우스에 널린 짚단들을 모두 깨끗하게 주워 단정하게 묶고, 아버님이 그동안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었던 일들을 도와드렸다. 아버님께서는 '젊은 아들이 이렇게 도와주니 천군만마를 얻은 것 같다'고 말씀하시며 미소를 지어 보이셨다. 일손을 돕고, 어머님의 무릎 상태까지 살뜰히 살펴드리고 나서야 난 다시 서울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안동을 떠나고 며칠 후, 어머님이 아버님과 함께 병원으로 오셨다. 혹시나 불편하신 부분은 없을까 걱정하며 어머님 병실을 찾아뵙자 대뜸 아버님께서 당신 고향의 특산품인 안동 소주와 식혜를 꺼내보이셨다. 나를 위해 선물로 챙겨오신 것이라고 했다. 깜짝 놀랐다. 특히 안동 특유의 붉은 색 식혜는 더더욱 눈을 사로잡았다.


여러 번 감사 인사를 드리고, 어머님이 입원해 계시는 병동의 간호사 선생님들과 함께 나눠마셨다. 직접 국자로 종이컵에 일일이 퍼서 나누어 주니 반응이 아주 뜨겁다 못해 활활 타올랐다. 서울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맛. 고춧가루와 무채, 밤채, 생강채까지 썰어 만든 안동 식혜는 딱 내 취향이었다. 직원들을 나눠주고 남은 식혜는 집에도 챙겨가 식구들과 함께 이야기꽃을 피우며 나눠마셨다.


다행히 어머님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무릎 왼쪽의 연골이 많이 손상돼 인공관절수술을 진행했는데, 수술 2~3일 후부터 혼자 병원 복도를 걸어다니시게 됐다. 걷는게 이렇게 행복한 일인 줄 몰랐다며 기뻐하시는 어머님을 뵈며, 나 역시 이루 말할 수 없이 기뻤다. 안동으로 돌아가시면 이젠 너무 일만 하지 마시고, 애처가 아버님과 함께 행복한 추억만 많이 쌓으며 지내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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