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주의 서면 마을. 그곳은 옛 골목 이름을 푯말로 간직하고 있는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마중 나오신 옥자 어머님께 달려가자, 마지막까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우리 집이 어딘지 찾아보라는 어머님. 순수한 웃음을 가지신 유쾌한 분이셨다.
집에 들어가자, 아버님은 어머님의 옆에서 손을 꼭 잡고 계셨다.
약 6년 전, 뇌출혈로 쓰러지셨던 아버님은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그때의 긴박함을 생생히 전해주셨다. 자그마치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집에 누워계신 시아버지와 병원에 누워있는 남편을 간호하며 집과 병원을 번갈아 다니셨던 옥자 어머님. 이제야 말하지만, 두 명을 매일 간호하느라고 죽을 뻔했다고 하셨다.
아픈 몸을 이끌고 이른 시간인데도 부지런하게 일하시는 엄마를 위해 휴식을 선물하고 몸에 좋은 건강식도 만들었다. 식사 후에 마을 산책을 하다가 만난 어머님의 친구분들. 의사 아들이 온다는 소식에 어머님들이 하나둘 모인 것이었다.
자연스럽게 마을 정자가 진료소가 되었고,
누군가가 가져온 수박을 나눠 먹으며
다리와 어깨를 주물러드리다 보니 어느새 해가 기울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이제 나를 '우리 아들'이라고 부른다.
자기 자식에게 하듯, 피곤해 보인다고 말 없이 물을 내밀고
땀 흘리는 나에게 부채질하는 손은 멈추지 않았다.
어느 어머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자네는 꼭 오래 살아서 우리 같은 아픈 사람 많이 고쳐줘."
"우리 마을에 와서 우리 의사 아들 해줘."
그 말에 웃었지만, 이상하게 그 말이 생각보다 가슴에 오래 남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백미러에 비친 마을이 천천히 멀어졌다.
회관 앞 평상, 웃음 섞인 목소리들, 손등 위에 닿았던 햇살까지.
그렇게 나는 이 마을의 '우리 아들'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