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한국 전쟁 때, 갑작스러운 폭격으로 순식간에 당신의 어머님을 잃게 된 춘자 어머님. 전쟁의 여파로 남은 가족들과도 떨어지게 되면서, 어머님은 그 시절 남의 집 종살이를 전전하며 겨우 입에 풀칠을 하며 살아가셨다고 한다. 당장 먹고 살기도 막막한 상황이라 학교에 가서 글을 배우는 것은 엄두도 내지 못했다는 어머님. 수십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어머님은 한글을 읽지 못하신다.
한글을 읽지 못하면 얼마나 살아가는 데 불편함이 상당할까. 당신 앞으로 날아온 전기 고지서도 읽지 못하는 상황. 혼자서 시장에 가면 글을 읽지 못해 외출하기 전 겁부터 덜컥 난다는 어머님을 위해 특별한 한글 교실을 마련했다.
우선 집의 환경부터 살폈다. 살림살이들은 많았지만, 어머님이 편안하게 앉아서 공부할 만한 책상 하나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래서 어머님을 위한 특별한 책상을 준비해 언제든지 앉아서 한글 공부를 하실 수 있도록 했다. 구입해 온 책상을 열심히 조립해 완성하고, 연필부터 형광펜 그리고 공책 등 각종 학용품으로 책상 위를 가득 채웠다.
이 모든 것을 어머님께 비밀로 하기 위해, 책상을 조립하는 동안 특별히 성연 씨에게 시간을 끌어달라고 부탁했다. 센스 있는 성연 씨는 어머님의 관심사를 주제로 오랫동안 수다를 떨며 내가 온전히 책상 만들기에만 신경을 쏟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30분쯤이 흘렀을까. 모든 준비가 마무리됐다. 어머님의 눈을 가리고 방으로 입장했다. 안방 화장대 옆에 턱하니 놓인 깔끔한 책상을 보고 어머니는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셨다. 얼마나 좋아하시는 지, 불편한 무릎으로 있는 힘껏 걸으셔서 책상에 앉으셨다. 책상에 높인 학용품들을 매만지며, 웃으시는 어머님들 보고 나 역시 벅찬 감동을 받았다.
동네 마을회관에서 한글을 배우고 있지만, 아직도 익혀나갈 글자가 많은 어머님을 위해 나는 일일 강사를 자처했다. 우선 아들인 내 이름을 쓰는 방법부터 알려드리고, 한글 자모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려드렸다. 집안 곳곳에 낱말 카드도 붙여드리면서 어머님이 빠르게 한글을 익히실 수 있도록 도왔다.
어머님께서는 살면서 단 한 번도 가져보지 못했던 자신만의 책상 위에 앉아 한참 동안이나 글 공부를 하셨다. 내 이름도, 성연 씨의 이름도, 실제 자녀분들의 이름도 써 보면서 아이처럼 좋아하셨다. 앞으로 어머님은 이 책상에 앉아서 하루에 2~3시간씩 한글 공부를 할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보이셨다. 어머님께서 열심히 공부하셔서 앞으로는 시장도 홀로 자신있게 다니실 수 있길 간절히 바랐다. 또, 요양원에 계시는 아버님 그리고 사랑하는 손주들에게 직접 마음을 담은 편지도 쓰실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