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말에는 서울에서 꽤나 멀리 떨어진 곳에 다녀왔다. 금요일 오후 진료를 마치자마자, 곧바로 가운을 벗고 운전대를 잡았다. 차에 올라 내비게이션으로 소요 시간을 확인해 보니, 욕지도행 훼리 탑승이 가능한 중화항까지 서울에서 5시간이 넘게 걸렸다. 실로 머나먼 여정이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들러 저녁 식사까지 하고 나면 운전만 꼬박 6시간이 넘도록 해야 되는 상황이었다. 직전까지 외래 진료를 보고 나온 터라, 몸이 천근만근이었지만, 기다리실 욕지도 어머님들을 생각하면 지체할 수가 없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을 쭉 빨아 당기고,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마음은 바쁜데,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혔다. 하필 퇴근 시간대와 겹쳐 도로에서 옴짝달싹을 할 수가 없었다. 나만을 기다리실 어머님을 생각하니 초조해졌다. 간신히 복잡한 도심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정말 있는 힘껏 빨리 달렸다. 중간에 잠시 요동치는 뱃속을 잠재우기 위해 휴게소에 들렀다. 뜨근한 우동과 휴게소 대표 간식인 소떡소떡을 해치우고, 다시 차에 올랐다. 창밖에는 짙은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렇게 쉬지 않고 속도를 높인 결과, 자정이 되기 전에 통영 중화항에 당도할 수 있었다.
다음날 욕지도로 입항하는 첫 배를 타기 위해서, 중화항 근처에 숙소를 잡았다. 허름한 숙소였으나 개의치 않았다. 첫 배가 뜰 때까지 잠시 눈만 붙이면 되니까.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짐을 꾸려 배에 올랐다. 성연 씨도 일찌감치 도착해 있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우리는 새우깡 몇 봉지를 샀다. 내가 간단한 식사로 아침을 해결했듯, 갈매기들의 아침도 내가 챙겨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나, 어쩐 일인지 아무리 새우깡을 들고 손을 뻗어도 갈매기들이 다가오지 않았다. 결국 일부러 챙긴 새우깡은 성연 씨와 나, 그리고 스태프들의 차지가 되고 말았다.
한 시간쯤 배를 타고 들어갔을까. 멀리서 욕지도가 보였다. 통영 인근의 섬 중에서 가장 유명한 욕지도는 마냥이쁜우리맘 팀 외에도 찾는 관광객들이 꽤 많았다. 하선하는 인파들 속에 섞여 겨우 내린 나는 다시 운전대를 잡고 어머님이 계신 동네로 향했다.
어머님은 나와 성연 씨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며 반겨주셨다. 어찌나 반겨주시던지, 배가 들어오는 시간을 미리 알고 손꼽아 기다리셨다며 우리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셨다. 어머님의 손을 통해 전해지는 온기에, 서울에서 통영까지, 그리고 통영에서 다시 욕지도까지 들어오는 머나먼 여정으로 인해 쌓인 피로가 사르르 녹아내렸다.
사랑해 마지않던 남편과의 사별 이후, 적적해 하시던 어머님을 위해 성연 씨와 나는 애교도 잔뜩 부리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해 드리며 외로움을 달래드렸다. 또, 농사를 짓는 어머님의 일손도 적극적으로 거들어 드리고, 아픈 무릎과 허리까지 세세하게 살펴드렸다. 의사 아들의 따뜻한 보살핌에 이젠 남편을 떠나보낸 슬픔이 조금 옅어진 것 같다고 말씀하셨던 어머님. 병원에서 다시 만날 테지만, 작별의 순간에 몹시 힘들어하던 어머님을 성연 씨와 나는 다시 따뜻하게 안아드렸다. 한참을 이별에 아쉬워하시는 어머님의 이야기를 들어드린 후, 집을 나서 손을 흔들자, 이내 어머님께서도 양손을 힘차게 흔들어 주시며 "아들~딸~ 우리 꼭 다시 만나자!"라고 외치셨다.
오늘, 욕지도에서 만난 정이 어머님이 병원으로 오신다. 아픈 허리와 무릎을 모두 다 말끔하게 치료해 드릴 계획이다. 서울에서 5시간이 넘는,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오래 걸리는 먼 곳에서 오시는 만큼 아들로서 특별히 더 신경 써서 어머님을 치료해 드려야겠다. 나의 치료를 통해 어머님께서 하루빨리 건강을 회복하시어 이제 더는 외로워하지 마시고, 아드님과 어여쁜 손주와 함께 행복하게 지내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