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5 아직도 얼떨떨하고 믿기지 않는다.
응급실에서 진료를 받고 집에 온 다음날, 내일 전화해서 수술 예약을 잡으라고 병원에서 챙겨준 종이에 쓰여 있는 번호로 파트너는 전화를 했다. 그런데 웬걸? 병원이 너무 바빠서 있는 수술도 미루고 있는 중이라며 2주 후에나 가능할지도 모르는데 그것마저 불확실하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들었다. “뭐라고? 2주 동안 응급치료 상태로 기다리라고? 그동안 뼈가 벌어진 상태로 붙어버리면 어떡하지? 한국이었으면 벌써 수술 다 끝났겠다.” 어이없어하며 볼멘소리를 하는 나보다 파트너는 더 초조해하며 동동거렸다. 다른 병원에 전화를 했더니 예약하려면 삼주 이상 걸릴 수도 있으니 자기네 병원 응급실로 가서 진단을 받는 것이 빠른 방법이라고 했다.
처음 병원에서 찍은 엑스레이와 CT 사진 파일을 받아 다른 병원 응급실에 갔다. 파트너가 자초지종을 설명했더니 별일이라며 황당해했지만 다행히 같이 있게 해 줬다. 또 기다리고 기다렸다. 의료진들은 가끔씩 와서 피를 뽑아가고, 엑스레이를 다시 찍고, 깁스를 열어 상태를 확인하고는 며칠 내로 수술을 해줄 수 있다고 했다. 파트너가 내 짐을 챙기러 집에 간 사이에 코로나 PCR 검사 결과가 나왔고 나는 간호사를 따라 입원실로 들어갔다. 병실로 찾아온 파트너는 짐을 전해주고 서류를 작성하고는 곧 다시 집으로 가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보호자는 하루에 한 시간 정해진 시간에만 방문할 수 있단다.
내 수술을 할 예정인 의사 선생님이 오더니 내 뼈가 부러진 곳이 흔한 골절 부분이 아니라 거기에 맞는 철판을 주문해서 그게 도착하면 수술을 할 수 있다고 그림까지 그려서 설명해주셨다. 어차피 아주 늦는 것도 아니고, 다리가 부어있는 상태라 하루 이틀 더 기다리는 건 부기가 가라앉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며 친절하게 위로까지 해주셨지만 내 머릿속은 ‘세상에... 철판이랑 나사라니... 전신마취라니... 수술이라니... 내가 뼈가 부러졌다니... 사람일은 역시 모르는 것이다...’ 같은 생각으로 가득했고, 첫날 둘째 날에는 종종 떨어지며 발목을 접질린 순간의 기억이 자동 재생되곤 했다.
+ 피를 뽑으려 팔꿈치 안쪽 접히는 부분에 두꺼운 주삿바늘을 꽂았고, 수술할 때 쓰려고 그대로 놔두었다. ‘아... 이제 뜨개도 못하겠네’라고 탄식을 하고 있는데 간호사가 들어와서 엑스레이를 찍으러 갈 건데 목발을 짚을 수 있겠냐고 물었고 나는 당황하며 바늘 때문에 못할 것 같다고 했다. 그거 플라스틱이라서 움직여도 된다고 하는데 나는 얼굴로 물음표 표정을 지으며 정말 괜찮은지 의심하고 있었더니 간호사가 응? 이런 표정으로 내 팔을 잡아서 굽혔고 난 놀람과 동시에 안도했다. 그걸 지켜보던 방안의 사람들은 웃음을 터트렸다.
0916 요가매트 가져와서 스트레칭하고 싶다.
병실은 화장실이 딸린 3인실인데 침대 하나는 비어있고, 내 침대는 가운데에 있다. 창가 자리 할머니가 어제오늘 자꾸 사람들이랑 싸운다. 다들 복식호흡을 하면서 거칠게 싸우는데 독일어를 잘 몰라서 못 알아 들어서 다행인 건지... 아침 일찍부터 간호사가 들어와 혈압을 재느라 늦잠도 못 자고, 할머니는 깨어있을 때에는 자꾸 영어로 말을 시키고 밤에도 계속 부스럭거리고 간호사를 부른다. 절대 안정 좀 취하고 싶다.
아침마다 아침, 점심, 저녁, 밤 칸이 나눠진 약통을 주는데, 어제는 밤에 먹는 약만 주면서 그것마저 수술이 끝나고 먹으라고 했으면서 오늘은 아직 수술도 안 했는데 아침부터 밤까지 꽉 찬 약통을 줬다. 아까 할머니랑 싸운 간호사가 들어왔을 때 “저 수술은 내일인데 이거 오늘 먹어야 되나요?”라고 물었지만 영어를 할 수 있다면서 독일어로 이거 오늘 약이니까 오늘 먹으라고 했다. 다시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모르겠지만 간호사가 먹으라니까 먹었다. 알약 세알을 물과 함께 삼켰다.
병실에서 뜨개를 하거나 누워있으면 종종 휠체어를 가지고 온 직원이 내 이름을 부르고 병원 곳곳으로 데려다주고 업무가 끝나면 다시 병실로 데려다주곤 했다. 이날은 깁스를 좀 더 열게 자르러 응급실 쪽으로 내려갔다. 무시무시한 전기톱으로 깁스를 자르기 전에 간호사에게 병원 옷이 원래 이렇게 생겼냐고 물었다. 내가 앞뒤를 잘못 입은 거였다. 휠체어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속이 매스껍고 식은땀이 났다. 마취담당의 한테 다녀오는데 직원이 휠체어를 너무 빨리 밀어서 증상은 악화되었다. 병실로 돌아왔더니 병원 밥이 와있었는데 먹을 수가 없어서 대신 파트너가 갖다 준 사과 한 알을 먹었다. 아침에 괜히 약을 먹어서 어지러운 것 같다고 했더니 할머니는 그 간호사를 욕했고, 잘 모르면서 넙죽 받아먹은 나도 덩달아 혼이 났다. 계속 속이 울렁거리고 음식 생각만 해도 토할 것 같고 향수나 빵 냄새만 맡아도 힘들어서 밥도 못 먹고 있다가 결국 먹은 것을 게워냈다.
입원한 날, 저녁을 준다고 하길래 비건이라고 말했고, 내 밥은 계속 비건으로 챙겨주셨다. 그런데 독일식이라 그런가 내 입맛엔 너무 짜고 기름지거나 그냥 빵에 마가린이나 스프레드만 나오는 날이면 도저히 이걸 먹고 건강을 회복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무엇보다 약을 잘못 먹고 탈이 난 다음엔 그런 것을 더더욱 먹고 싶지 않았다. 파트너가 내가 부탁한 죽을 끓여 와서 조금씩 천천히 먹었다. 그건 먹을 수 있었다. 마침 파트너랑 같이 있을 때 의사 선생님이 와서 같이 설명을 들었다. 드디어 철판이 도착했고, 붓기도 이 정도면 수술하기 적당하니까 내일 마지막 수술시간으로 해서 쫓기지 않고 여유롭게 할 거라고 하셨다. 뼈가 다시 붙고 나면 일 년 정도가 지나고 철판과 나사를 빼면 된다고 했다. ‘일 년 뒤에 또 수술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