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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r 26. 2018

동물의 눈을 들여다본 적이 있나요?

나는 동물을 사랑한다. 

언제나 그래 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린 시절 나는 사랑하는 동물들이 보고 싶어서, 만나고 싶어서 동물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눈에 동물원의 동물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나는 내가 즐겁기 위해서 동물원에 놀러 간 거였지, 그들이 어떤지는 생각해 본 적도, 자세히 살펴본 적도 없었다. 동물원에 놀러 온 사람들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아이들은 반짝이는 눈으로 동물들을 관찰했고, 가끔 소리를 지르거나 철창이나 유리를 쳐서 동물들을 괴롭히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동물들을 더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그랬을 거라고 생각한다. 동물원으로 견학을 온 학생들, 도시락을 싸와서 좋은 시간을 보내는 가족들과 연인들. 솜사탕과 아이스크림 등 달콤한 후식도 동물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다.


반면에, 날씨도 환경도 다른 먼 나라 어딘가에 살던 동물들은 영문도 모르고 낯선 외국 어딘가로 팔려와 콘크리트 바닥에 철창과 유리로 만들어진 좁아터진, 숨을 공간조차 없는 우리 안에 갇혀 사육당하며, 하루하루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구경거리로 보이고 있었다.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훨씬 더 넓은 고향땅에서 자유롭게 뛰어놀았을 그 아름다운 동물들은 슬프고, 아프고, 힘없이 지쳐 보였다. 그때부터였나 보다 나는 동물원에 가는 것이 싫어졌다. 괴로워하는 동물들을 구경거리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내 욕심 때문에 동물들을 더 괴롭게 할 수는 없었다. 동물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동물들이 갇혀서 지쳐하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아쿠아리움을 처음 갔던 날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너무나 신기하고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바다 생명체들을 보고 또 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내가 물속에서 숨을 참을 수 있는 건 겨우 몇십 초, 물안경이 없이는 눈을 제대로 뜰 수도 없는, 나에게는 너무나 먼, 언제나 신비롭고 아름답고 궁금한 공간이었던 그 바닷속을 숨을 참을 필요도 없이, 자유롭게 구경할 수 있는 꿈만 같은 곳이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아쿠아리움은 한번씩 다 가본 듯하다. 


물속에 사는 바다 생명체들은 그들이 행복한지, 슬픈지 그들의 감정을 알기 어려웠지만, 돌고래와 물개, 펭귄들을 훈련시켜 보여주는 쇼들은 처음에는 동물들이 너무 예쁘고, 똑똑하고, 인상적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았고, 사육사들이 시키는 대로 매일매일 해야만 하는 저 동물들이 안쓰러워 보였다.


한 때, 나의 꿈은 사육사였다. 사랑하는 동물들과 매일매일 함께 지내며 그들을 돌봐주는 것은 꿈의 직업이라고 생각했었던 적이 있었다. 지금 다시 생각해보면 사육사를 했더라면 그 슬픈 동물들을 자유롭게 풀어주지도 못하고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생각에 나도 그들처럼 슬퍼졌을까,




반려동물을 키우면서 그들을 하염없이 바라보기만 해도 너무 행복했다. 열대어 구피들을 키우며 그들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자라는 모습, 달팽이가 방금 먹은 채소의 색깔의 똥을 싸는 모습, 거북이가 느릿느릿 움직이는 모습을 볼 때에는 이 동물들과 눈을 마주치려는 생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강아지를 데려오고, 그의 눈을 바라보고, 눈을 마주치고, 계속해서 같이 살다 보니 눈만 봐도 얘가 뭐라고 하는지 알게 되었다. 얘는 눈으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다. 산책 가고 싶다고, 배가 고프다고, 놀아달라고. 처음 만나 눈을 마주친 그 순간부터 나는 얘를 사랑하게 되었다. 너무 사랑해서 모든 행동이 다 사랑스럽고 보고만 있어도 행복했다.




하지만 나는 내가 먹는 동물들의 눈을 본 적이 없었다. 아니 나는 그 동물들을 제대로 만나 본 적도 없었고, 그 동물들이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몰랐고, 내가 아는 그 동물들과 내가 먹는 이 고기의 연관성을 전혀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리고 그 동물들의 눈을 보게 되었다. 심지어 직접 본 것도 아니고 그냥 사진과 영상일 뿐이었는데도 소름이 끼쳤다. 내가 이런 애들을 그동안 먹어왔다는 사실에 죄책감이 들고 너무 미안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그들은 눈으로 말을 하고 있었다. 살려달라고, 무섭다고, 도와달라고...


한 순간, 나는 내가 동물의 몸안에 갇혀버린 상상을 해봤다. 난 사람인데, 동물의 몸 안에 갇혔고 그들은 나를 학대하고, 죽이려고 한다. 나는 살려달라고 아무리 애원하고 발버둥을 쳐봤자 그들은 폭력을 휘두르거나,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


너무 답답하고 숨이 막혀왔다.


동물들을 보는데, 그들의 눈 속에서 그 몸뚱이 속에 갇혀버린 사람의 눈이 보인다. 아니 영혼이 보인다. 만약 사람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분명히 영혼이 있다.


우리가 한 번이라도 돼지, 닭, 소의 눈을 들여다보고 그 동물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이해하려고 한다면, 우리는 절대 동물을 먹는다거나 죽일 생각조차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차단된다. 그 동물들이 어디 사는지도 모르게, 그 동물들과 절대로 만날 수 없게. 친구가 될 수 없게, 그 동물들의 눈을 바라볼 수 없게.


그래서 중독이 되고 죄책 감 없이 소비를 할 수 있게. 피맛에 중독이 되고, 점점 더 사랑과 연민은 사라지고 폭력과 잔인함에 무뎌지고, 심각성을 모르게. 고기는 고기이고, 동물은 동물로 따로 생각하게. 

무관심해지게. 


세뇌는 무섭다. 그리고 우리를 생각으로부터 멀어지게 사회는 우리를 더 바쁘게 만든다. 다른 정말로 우리가 생각해보아야 할 것들을 생각할 시간이 없다고 생각하게 말한다. 우리를 지치게 만들어 생각을 막는다. 생각하는 법을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 시키는 대로 하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우리에게 고기는 맛있는 것이고, 많이 먹으라고 계속해서 세뇌를 시킨다.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생각인 줄 안다. 


우리가 진정, 지구 상에서 가장 지적인 존재라면, 우리는 생각을 해야 한다.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해야 한다. 누군가 나에게 생각하지 못하게 막는 것이 있는지, 생각해야 한다. 내가 진짜로 생각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생각하는 동물이다. 우리도 동물이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을 하기에 특별해진다. 우리가 생각 없이 누군가 시키는 대로만 산다면 우리가 그 공장 속에 사는 동물들과 과연 무엇이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데카르트도 이렇게 말했지 않은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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