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비건입니다. 동물의 시체를 먹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비건을 가리켜 채식주의자라고도 하지요.
네, 닭의 알을 비롯한 모든 동물의 알과 바다 동물의 시체도 먹지 않습니다.
소고기 육수, 멸치육수, 액젓과 젓갈도 먹지 않습니다.
젖소를 강간해서 임신을 시킨 뒤 태어난 송아지를 납치하고 착취해서 만드는 어미소의 눈물과 고통이 담긴 소젖과 그 소젖으로 만든 모든 유제품도 먹지 않습니다. 염소젖도 마찬가지고요.
벌들을 착취하고 죽게 만드는 꿀도 먹지 않고요, 오랑우탄을 죽이고 그들의 서식지를 파괴하는 팜오일이 들어간 식품도 먹거나 소비하지 않습니다.
동물을 무자비하게 착취하고 살해해서 만든 그들의 털과 가죽을 이용한 제품을 입거나 소비하지 않습니다. 동물실험을 하는 회사의 화장품이나 의약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사람과 동물은 다르다면서, 동물들이 사용할 것도 아닌데 왜 동물들에게 실험을 하는 것일까요?
동물원과 아쿠아리움은 교육의 현장이 아닌, 학대와 착취의 공간입니다. 그 동물들의 눈을 한 번이라도 들여다보고 그 동물들이 어떤 지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아이들에게 더위에 죽어가는 북극곰을 보여주는 게, 힘 없이 축 늘어진 사자나 호랑이를 보여주는 게 정말 좋은 교육인가요?
모든 비건이 다 건강한 것은 아닙니다.
모든 비건이 다 말라깽이인 것은 아닙니다.
단백질 타령은 이제 멈춰주세요.
단백질은 식물성 식품만으로 충분히 섭취가 가능합니다. 단백질 결핍으로 죽은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
아니오, 비건은 풀만 먹고살지 않습니다.
과일, 견과류, 콩류, 곡식, 채소, 뿌리식물 등 먹을 게 넘쳐납니다. 고기의 맛이 그리운 사람들을 위한 콩고기, 밀고기 등 비건을 위한 다양한 대체식품들도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모든 단백질은 식물에서 옵니다. 동물의 시체를 먹어서 얻는 단백질은 콜레스테롤, 포화지방, 발암물질, 호르몬, 항생제, 방부제가 들어있는 재활용 단백질입니다.
칼슘은 어떻게 하냐고요?
소젖 대신 젖 고름, 호르몬, 항생제와 콜레스테롤이 들어있지 않은 콩, 귀리, 아몬드, 코코넛, 헤이즐넛 등으로 만든 다양한 맛의 식물 젖들이 있습니다. 사실, 소젖을 많이 먹으면 칼슘을 섭취하지 못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우리 몸에 저장되어 있는 칼슘까지 잃습니다.
고기가 먹고 싶은데 참느라 힘들지 않냐고요?
아니요, 전혀요. 예전에는 맛있다고 먹었지만 지금은 보기만 해도 징그럽고 다시는 먹고 싶지 않습니다. 이제는 고기가 아니라 동물의 시체, 학대와 착취, 고통과 살해로 보입니다.
예전에는 맛있는 냄새로 느껴졌던 고기 굽는 냄새를 맡으면 울부짖으며 죽어간 동물들이 생각나고, 슬프고 역겹습니다. 모든 진실을 알고 난 뒤 그것을 먹는 것이 오히려 훨씬 더 힘듭니다.
네, 동물들도 뇌가 있고, 감각신경이 있으며, 감정을 느끼고, 살고 싶어 합니다. 짐승들이라고 멍청하지 않아요. 동물들도 어미는 새끼를 사랑하고, 가족과 친구를 알아보며, 생각을 하고, 표현을 합니다. 눈물을 흘리고, 소리 내어 울며, 죽기 싫다고 저항합니다. 살고 싶어 하는 생명을 인도적으로 죽이는 살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와 같은 포유동물뿐 만이 아니라, 바다에 살고 있는 바다 생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동물들에게도 그것이 있습니다.
비건과 자연식물식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자연식물식은 본인의 건강한 삶을 위해서 하는 식습관이고요, 예를 들어, 꿀이나 팜오일은 자연식물식이 될 수도 있습니다. 동물은 죽지만 동물을 먹는 것은 아니니까요.
비건은 동물들의 착취와 학대, 나아가 종차별주의에 반대하는 삶의 방식입니다. 비건이 자연식물식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비건은 동물 착취에서 자유롭다면 감자튀김에 콜라만 먹거나, 술이랑 과일만 먹을 수도 있습니다. 매끼 비건 정크푸드만 먹을 수도 있고요.
까탈스러운 것도, 유난을 떠는 것도 아니며, 불편하거나, 피곤하게 살고 싶어서 비건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비건이 아닌 사람들에게 강요를 하거나 죄책감을 주는 것도 아닙니다. 혹시, 본인이 죄책감에 그렇게 느끼는 건 아닌가요? 비건은 아직 비건이 아닌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어떤 생명도 다른 생명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같은 동물인 인간이 다른 동물들을 착취하고 대학살을 하는 것을 멈춰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진짜로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지적능력이 뛰어나고 우월하다면 그 열등한 존재들을 무자비하게 착취, 학살하는 것보다 지켜줘야 하는 게 옳은 일이 아닌가요?
비건으로 살면 힘들지 않냐고요?
팜오일과 소젖 가루, 동물의 시체를 쓸데없이 아무 데나 다 집어넣어서 결국 아무것도 사거나 먹지 못하는 것은 더 많은 사람들이 비건의 삶의 방식을 지향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것이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식당에 가서 동물의 시체나 알을 빼 달라고 하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하는 것도 그러려니 하면 됩니다.
정말 힘든 일은 내가 그동안 모르고, 외면하고, 알지 못하고 있었던 진실을 마주하는 것과, 이제 진실들을 알게 되어 동물을 먹는 것이 인간의 몸에 얼마나 해롭다는 것과, 죄 없고 천진난만한 수억 마리의 동물들이 매일 착취와 대학살을 당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으면서, 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나의 생활방식에 대해 이해하려거나 마음을 열려는 시도 대신 면박을 주며, 눈과 귀를, 그리고 마음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거대한 축산업과 낙농업계가 돈을 사용해 사람들의 눈을 가리고, 귀를 막고, 정신을 세뇌시키고, 옳은 말을 하는 사람들을 협박하거나 살해하고, 동물들을 돈의 가치로만 판단하고 이용하고, 가치가 없어졌다며 생매장을 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는 일이 힘듭니다.
우리는 그저 옳은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옳다고 믿는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노력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 혼자 그래 봤자 뭐가 달라지냐는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사실 비건 한 사람은 엄청난 변화를 만들어 냅니다.
비건 한 사람은 하루에 5,000리터의 물, 20킬로그램의 곡식, 2.7제곱미터의 삼림지대, 9킬로그램의 이산화탄소 발생량을 아끼고, 한 마리의 동물의 목숨을 매일 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항상 이래 왔어. 어쩔 수 없어라는 말은 너무 위험한 말입니다. 몇천 년 전, 몇만 년 전에 원시인들이 동물을 잡아먹었던 것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의 사람들이 실제로 어쩔 수 없이 죽지 않기 위해 동물을 사냥해서 먹었던 것과 지금 우리가 억지로 태어나게 하고 역겨운 환경에서 억지로 사육해 일 년도 안 되는 시간 내에 죽여서 먹는 것이 정말 같다고 생각하나요?
인간은 진화를 해왔고, 지금의 우리는 그때의 인간들과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지금은 언제나, 어디를 가도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먹을 수 있습니다. 인간이 동물을 먹는 것은 불필요하고 무자비한 행위입니다. 왜 이렇게 과학과 문화가 발달했다면서 인간의 몸에 전혀 필요하지도 않은 동물을 잡아먹고, 착취하고, 그들을 죽여 털과 가죽을 입는 야만의 방식은 버리기는커녕 더 끔찍해진 걸까요. 역사와 전통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해온 어떤 행위가, 그저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기 때문에 계속해도 된다거나 옳다는 것은 소름 끼치는 모순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소유하고, 노예를 부리는 것이 합법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여기는 것이 합법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성소수자들을 정신병자 취급하는 것이 합법이었을 때가 있었습니다.
나치가 유대인에게 했던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일제가 조선인에게 했던 행위가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남성의 여성을 향한 차별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성소수자들을 향한 차별이 정당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우리가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 할머니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세월호 피해자 학생들과 그 가족들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처럼,
진실을 밝혀 달라고 광장에 나와 촛불을 붙였던 것처럼,
말 못 하는, 죄 없이 죽어가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목소리 없는 동물들을 도와줄 때가 왔습니다.
이번에는 내가 가해자였습니다. 내가 그들의 손에 돈을 쥐어주며 죄 없는 동물들을 착취하고 더 좁은 공간에 가두도록, 일 년도 살지 못한 어린 동물들을,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그 연약한 생명체들을 죽이고, 그 시체를 잘라서 내가 구워 먹게 해 달라고, 그들의 잔혹행위를, 학대를 지지하고, 부추겼습니다.
나는 몰랐습니다. 나는 그 동물들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도 몰랐고, 만나본 적도 없었고, 어떤 동물들은 사람이 먹기 위해 태어나고 길러지며, 동물의 시체는 더럽지만 익혀서 먹는 것은 우리 몸에 좋다고 듣고 자랐으며, 그렇게 배워왔습니다. 세뇌당해 왔습니다. 내 눈앞에 있었다면 예뻐하고 사랑했을 그 동물들과 정육점에서 파는 그 살점 덩어리가 같다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피해자는 인간의 말을 할 수 없는, 시위를 할 수도 없는 목소리가 없는 순진무구한 동물들입니다. 가해자였던 우리가 그들에게 사죄하고 더 이상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게 도와주지 않는다면 계속해서 이루어지는 학대와 착취, 결국에는 살해를 당하는 이 악순환이 언제 멈출지 알 수 없습니다.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무섭고 두려운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죄책감을 느끼고 마음이 찢어지게 아플 수도 있습니다. 나도 비건으로 태어나거나 자라지 않았습니다. 이십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진실을 모른 채, 외면한 채 가해자로 살아왔습니다. 내가 비건이 되리라고는 상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동안 내가 모르고 저질렀던 잘못들을 사죄하기 위해서, 더 이상의 잘못된 행동을 하지 않기 위해서, 순간의 고통을 이겨내면 놀라운 변화들이 일어납니다.
피부가 좋아지고, 군살이 빠지고, 소화가 잘 되고, 건강해지고, 전보다 행복해집니다. 몸이 가벼워지고 내 몸이 잘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식탐도 줄어들고, 이젠 죄책감 느끼지 않고 동물을 사랑한다고, 내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이게 거짓말 같으면 2주만 자연식물식을 해보시면 직접 느끼게 될 것입니다. 가끔씩 불편한 일은 있지만, 동물들은 그보다 훨씬 끔찍한 일을 태어날 때부터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내 불편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죽기 위해 태어나는 운명, 잡아먹히기 위해 태어난 지 일 년도 되지 않은 어린 나이에 도살장에 끌려가서 살해당하는 운명. 지은 죄도 없이 감옥에 갇혀, 폭력과 학대에 시달리고, 죽으러 가는 그날까지 햇빛 한 줄기 보지 못하고,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는 운명이 어떤 건지 상상이나 할 수 있나요?
우리는 모두 비건입니다. 비건이 된 사람과 아직 비건이 되지 않은 사람만이 있죠.
"나는 비건이 될 수 없어" 라구요? 저도 그랬고, 다른 비건분들도 그와 똑같이 말했던 때가 있었습니다.
"비폭력은 진화의 다음 목표 단계인 높은 윤리 수준으로 이끌어준다.
우리가 모든 다른 생명들을 괴롭히는 것을 멈추기 전까지,
우리는 그저 야만일 뿐이다." -토마스 에디슨
본인의 건강을 위해서는 유투브에서 다큐멘터리 'What the Health', 넷플릭스 'Forks over Knives'
동물이 어떻게 착취당하는지 직접 눈으로 보고 싶다면 유투브에서 다큐멘터리 'the Earthlings'
동물을 먹는 게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고 싶다면 넷플릭스에서 'Cowspiracy'를 봐주세요.
피드백이나 의견들 감사합니다.
사진 출처; 구글검색 Veg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