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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지수 Mar 12. 2018

나는 건강하게 죽고 싶다.

"난 너무 오래 살고 싶지 않아. 결혼도 안 하고 아기도 안 낳고, 그냥 여행하고, 내 하고 싶은 거 다 하다가 환갑이 되기 전에 죽고 싶어."


라고 말하는 나에게 너 미친 거 아니냐고, 어디 가서 그런 소리 하지도 말라고 친구는 핀잔을 주었다.


어린 나이에 요절한 예술가들에게는 늙고, 병들고, 외로운 모습이 남아있지 않다.

그들에게는 아름다운 젊은 시절만 남아있었다. 그들의 젊은 나이에 맞이한 죽음은 슬프고, 안타까운 것이지만, 동시에 매혹적이기도 하다.


매일 버스를 타면 볼 수 있는 냄새나고, 허름한 노인들. 버스에 자기 자리를 맡겨놓은 것 마냥 비키라고 하며 사람들의 자리를 빼앗고, 학생들의 재잘거림에 시끄럽다며 화를 내는 노인들. 시장바닥에 쭈그려 앉아서 채소를 파는 등이 굽은 할머니들과 폐지 줍는 할아버지들..


우리가 사는 이 현실에서는 환갑이 넘으면 정년퇴직을 해야 하고, 몸은 약해지고, 시간은 점점 많아지고, 가진 돈은 점점 줄어드는데, 돈 드는 곳은 많아지고..


나는 저렇게 되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늙고, 병들어 약해진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


사람은 시간이 지날수록 늙고, 병들고, 외로워진다고 생각했다. 빌어먹을 의학이 너무 많이 발전해서 이제 자연히 살만큼 산 사람들, 이제 그만 그만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까지 병원은 어떻게 해서든 그 삶을 늘려놓는다고 생각했다.


나는 나의 죽음 따위는 두렵지 않다. 내가 두려운 것은 나의 소중한 사람들의 죽음과 나의 사랑스러운 반려동물의 죽음이다. 그들의 죽음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는 것만으로도 언제나 눈물이 줄줄 흘렀다. 마음이 너무 아팠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결국 언젠가 그 날이 온다는 사실을 외면하고 싶었다. 지금 이 행복이 영원할 거라고 믿고 싶었다.


오래전, 죽음을 겪어 본 적이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였다. 갑자기 우리 반으로 전화가 왔다. 선생님은 전화를 받더니, 나를 자리로 부르셨다. "혹시 어른들 중에 아프신 분 있니? 그분이 돌아가셨대. 가방 싸서 집에 가보렴."

멍 했다.

그때의 나는 돌아가셨다는 게 뭔지도 잘 몰랐던 것 같았는데.. 내 몸보다 큰 가방을 메고 가로질러 걸어가던 운동장은 평소보다 훨씬 더 크고 길게만 느껴졌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할머니.. 아빠는 칠 형제 중에 막내셨고, 나는 그 막둥이의 첫째 딸아이였다. 항상 딸을 원하셨던 할머니는 나를 너무나도 예뻐해 주셨다. 할머니 댁에 놀러 가면 나를 몰래 불러서 숨겨두신 사탕을 내 양손이, 주머니가 가득 넘치게 담아주시곤 했다.


돌아가시기 전, 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계셨다.


집에 도착해 엄마, 아빠, 동생이랑 같이 차를 타고 할머니 댁으로 갔다.

할머니는 거기에 계셨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거기에 계시지 않았다.

나는 누워있는 할머니의 옆으로 갔다.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할머니의 눈은 굳게 감겨있었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할머니의 손은 차갑고, 거칠거칠했다.


그리고 더 이상 할머니 댁에 가도 할머니를 볼 수 없었다.

그때, 처음으로 누군가가 죽는다는 게 무엇인지 배웠다. 





모든 결과엔 원인이 있다. 결과에 문제가 있다면 그건 원인을 찾아서 해결해야지, 결과를 덮거나 수정하려고만 해서는 안된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에 들어간 뒤 갑자기 피부가 뒤집어졌다. 속이 상하고 거울을 볼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았다. 피부과라고 하면 대부분 미용 시술하는 곳들 뿐이었고, 피부병을 고치는 피부과는 찾기 어려웠다. 바르는 약을 준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없어진다거나 하는 말만 할 뿐, 결국 진짜로 도움이 되는 이야기는 들을 수가 없었다.


"피부과"라는 곳에 가면 여드름 레이저 치료, 착색 제거 레이저 치료 등 자꾸 겉 피부만 괴롭히는 비싼 시술들을 추천했다.

그들은 그냥 지금 이 치료를 받고 증상이 또 생기면 다시 와서 치료받고 하면 되지. 원인이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그 증상을 뿌리 뽑을까는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들의 태도는 "그냥 귀찮게 하지 말고 돈 내고 빨리 가세요. 다음 사람."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그리고 이제 나는 알게 되었다. 피부과에 가지 않고도 깨끗한 피부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을, 배가 고픈데도 나와있던 똥배를 없애는 방법을, 유전인 줄로만 알았던 당뇨병과 심장병의 진짜 원인을, 어떻게 하면 병원에 가지 않고도 어떤 병들을 고칠 수 있고, 예방할 수 있는지를.

결과적으로 내가 찾던 건강하게 죽는 방법을.


그리고 그건 너무나 당연하게 항상 나와 같이 있고, 살펴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곳에 있었다.

식습관.

당신은 당신이 먹는 것이다.

당신이 먹는 것은 당신의 모든 것에 영향을 미친다.


태어나는 것에는 순서가 있어도 죽는 것에는 순서가 없다고 하더라. 

항상 건강하다면 죽는 그 순간에도 건강할 수 있겠지.

나는 건강하게 살고 싶고, 건강하게 죽고 싶다. 병원에서 약을 달고 살다가 죽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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