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곳이 한국이기 때문에 비건하기 어렵다. 한국에 사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왜일까? 비건 치즈의 종류가 별로 없어서? 식당에 비건 옵션이 별로 없어서? 사람들이 자꾸 조롱하고 면박을 줘서?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이 비건으로 살기에 충분히 좋은 환경이고, 비건친화국이 되기에 쉬운 곳이다. 한국이라서 채식을 하기에 힘들다는 사람들의 말에 코웃음이라도 치는 듯, 오히려 서양사람들은 비건이나 채식을 하는 경우에 아시아 음식을 먹고 아시아 식재료를 사용하고 따라 한다. 두부, 템페, 버섯, 김을 먹고 간장, 고추장을 먹는다.
현재 미국과 유럽을 비롯한 서양 나라에서 비건 가공식품과 비건 전문식당 그리고 비건 옵션이 당연하게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가공식품을 많이 먹고 외식을 자주 하는 사람들에게는 '편리'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한국보다 많은 사람들이 비거니즘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실천을 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인식도 한국보다는 나은 환경인 것도 맞는 말이다.
하지만, 서양사람들이라고 다 비건인 것도 아니고, 비건이라고 하면 비웃고 조롱하는 사람들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사람들 또한 대부분 육식주의에 젖어 당연하게 동물 시체를 먹는 것에 문제점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도 매우 많이 있다. 영국만 해도 매일매일 맥도날드와 치킨 앤 칩스를 먹는 사람들을 말 그대로 끊임없이 볼 수 있을 정도이고 피잣집에 하나 있는 비건 옵션 피자에 비건치즈는 커녕 햄 조각이 실수로 올려지는 교차오염까지 발생한다.
흔히 있는 슈퍼마켓에 가면 닭알이나 팜오일이 들어가지 않은 쿠키를 찾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유기농 마켓이나 비건 전문점에 가야 구할 수 있다. 유기농 마켓에 비건 식품이나 비건 전문점이 있다는 것은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갔을 때나, 영국의 소도시를 여행을 다녀보면 비건 옵션이나 음식점을 찾기에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다. 브라이튼이나 브리스톨처럼 비건 친화도시가 아니라면 서양 음식엔 정말 대부분 동물 시체와 소젖 가공품이 들어간다. 버터, 소젖, 치즈를 사용한 기간이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정말 많이 많이 사용된다.
브렉퍼스트 아침메뉴엔 소시지, 베이컨, 닭알, 햄이 기본재료이고, 차나 커피를 마실 때도 꼭 소젖을 넣고, 케이크나 스콘에도 당연하게 버터, 소젖, 닭알이 사용된다. 스팀 채소에도 으깬 감자에도 버터 녹인 걸 부어서 먹고, 빵에도 버터를 발라먹고, 메인 메뉴는 소, 돼지, 닭, 바다 동물의 시체를 구운 것과 감자튀김이 기본이다. 식재료로 사용하는 채소의 종류 또한 매우 한정되어 있어서 낯선 채소는 거들떠도 안보는 듯하다.
그에 비해 한국을 비롯한 대부분의 아시아 국가들은 소젖을 많이 사용하지 않는다. 소젖을 먹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서 우리 전통음식에 소젖이나 소젖 가공품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고 소젖과 소젖 가공품은 비싸다. 굳이 먹거나 소비하지 않아도 별로 불편함이 없다.
하지만 한국음식엔 닭알과 바다 동물들이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닭알은 두부로 대체할 수 있다. 바다 동물은 그냥 빼면 비린내와 잡내가 사라진다.
몇십 년 전 처음 서양에 채식 바람이 불었을 때에 동물 시체 대체품으로 떠오른 게 두부이다. 두부가 뭔지 모르던 서양에 두부가 들어오니 사람들은 처음에는 이게 뭐지 이상해했다고 한다. 요즘에는 그래도 먹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아직도 두부를 잘 모르고 어떻게 조리하는 지도 잘 모를 정도로 낯설어하는 사람들이 많아 두부보단 세이탄 같은 식물성 단백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큰 동양사회가 없는 서양에서는 신선한 두부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가격도 한국보다 저렴하지도 않다. (당연히 동물 시체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반면에 한국은 어느 시장에 가도 신선하고 따뜻한 갓 만든 두부를 언제든지 구할 수가 있다.
요즘엔 인도네시아 템페도 많이 먹는데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한번 알려지면 수요도 공급도 증가해 쉽게 구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가까운 중국만 봐도 말린 두부, 납작 두부, 튀긴 두부 등 별의별 두부가 다 있고, 아시아는 불교문화 때문에 이미 일찍이 다양한 대체육들, 바다생물 대체육까지 존재한다. 한국의 사찰음식만 봐도 한국은 비건 천국이 되기에 이미 충분한 가능성이 있다. 아니 곧 비건 천국이 될 곳이다.
게다가 한국에는 다양한 떡이 있고, 김, 다시마, 파래, 톳 등 다양한 해초들에 봄나물, 산나물, 버섯, 연근 등 서양에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엄청나게 다양하고 영양가 있고 맛있는 재료들이 많이 있다. 소스들은 또 어떤가, 서양은 끽해봤자 있는 게 토마토소스, 크림소스(논비건), 페스토 정도인데 한국엔 고춧가루, 고추장, 간장, 된장에 참기름, 들기름 등등 정말 다양한 재료들이 있다. 아, 게다가 우리는 콩물이랑 들깨가루가 있어서 식물 젖이 없어도 고소하고 크리미 한 음식을 만들 수가 있다.
지금은 다양한 서양의 식물 젖만 해도 맨 처음 시작은 두유였다. 서양인들 처음 아몬드 젖 만들기 전에 동양에서 먹는 두유 가져가서 먹다가 채식 시장이 점점 커지니까 별별 견과류나 곡식으로 다 식물 젖을 만든다. 가공된 식물 젖이 비싸면 그냥 견과류나 곡식을 사서 불린 다음 물이랑 갈아서 체에 거르면 식물 젖이 된다. 우리나라 콩젖 다양한 것처럼 곧 유행을 타면 다양한 식물 젖 사업들이 쭉쭉 성장할 것이다.
서양에 지금 유행하는 게 고수라면 아직 깻잎은 한국이 아니면 거의 다들 알지도 못하고 구하기도 어려운데 깻잎은 정말 뭘 만들어도, 어디에 넣어도 다 맛있다. 한국음식은 닭알이랑 바다생물들 사용하는 것만 조심하면 대부분 다 동물 없이도 충분히 맛있게 만들 수 있다. 동물 시체나 부산물은 중독성이 있기 때문에 자꾸 먹을수록 계속 먹게 된다. 안 먹으면 더 이상 생각도 안 난다. 굳이 처음에 가끔씩 그 맛이 그립다고 하면 이미 다양한 대체육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동물을 죽이지 않고도, 콜레스테롤과 각종 의약품, 항생제, 호르몬제가 없는 콩단백, 쌀 단백, 밀단백 등을 구해서 대체하면 된다.
버섯도 한국에는 다양하고 맛있는 버섯이 많이 있다. 서양은 대부분 양송이밖에 없고 다른 버섯들은 구하기도 어렵고 가격도 너무 어이없이 비싸서 그냥 한국 가서 먹어야겠다 하고 만다.
한국의 김은 이웃 아시아 사람들이 와서 엄청 쟁여갈 정도로 맛이 좋다. 서양에서는 김 작은 한 봉지에 2-3천 원씩 받고 판다. 게다가 김에는 B12까지 풍부해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김만 잘 먹어준다면 B12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조미김, 김밥김, 자반김 등 다양해서 귀찮을 때 그냥 밥이랑만 먹어도 충분히 맛있다.
비빔밥은 비건으로 먹기가 참 쉬운 음식인데 서양에서는 콩나물, 고사리나물, 도라지나물 등 재료를 구하기가 어려워 쉽게 만들 수가 없다. 한국에서 정 먹을 게 없다고 하면 그냥 비빔밥을 먹을 수도 있다. 그리고 김밥은 미리 만들어 놓는 곳이 아니고, 김밥을 직접 말아서 판매하는 곳이면 따로 주문을 할 때 동물성을 다 빼고 말아 달라고 할 수 있어서 좋다.
여름이 되면 여기저기에서 판매하는 콩국수도 대부분 비건이다. 두부도 비건이고, 버섯 들깨탕, 팥죽, 호박죽 등 재료 확인만 하면 한국음식 중 원래부터 비건인 것을 찾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변명은 하면 할수록 계속 늘어나게 되어있다. 결국 하기 싫으니까 변명을 하는 것이다. 정말 본인이 하고 싶고 결심을 했다면 누가 뭐라 해도 어떻게 해서든 방법을 찾아서 하게 되어있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어느 정도 이유를 알겠는 점도 있다.
육식주의가 너무 만연해 나가면 식당들이 유행처럼 모든 메뉴에 동물을 갈아 넣는 경우, 개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해주지 않는 단체주의에 쩌든 무례한 사람들의 조롱과 면박이 불편한 경우가 많이 있다. 게다가 가족들이 이해는커녕 계속해서 강요하는 집안에 사는 아직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않은 사람들이라면 더더욱 쉬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식당에 가서 동물을 빼 달라니까 안된다고 하거나 빼준다고 해놓고 안 빼준 경우들도 들어봤다. 그건 그 식당의 인성문제이다. 그런 식당에는 두 번 다시 안 가면 된다.
비거니즘이 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고, 깊게 생각해본 사람들이 아직 적고 점점 늘어나고 있기 때문에 힘들고 너무 소수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변화는 빠르게 일어나고 있으며, 점점 더 많은 비건 지향인들, 비건 식당, 비건 상품들이 생겨나고 있다. 한국에는 비건이라고 광고하지 않지만 비건인 것을 잘 찾아보면 많이 있다. 현재 상황에 정말 어렵다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동물 시체나 닭알 등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들을 먹지 않는 것, 선택하지 않는 것, 소비하지 않는 것. 한 번이라도 덜 소비하는 것. 더 많이 이야기하는 것. 주변에 비건인 사람들을 점점 늘려가서 혼자라는 외로움이 들지 않게 하는 것. 계속해서 더 알아보고 공부하는 것. 점점 더 공부하고 알아가다 보면 다음번에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어떤 것을 먹을지, 어떤 것을 소비할지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완벽이란 것은 없다. 완벽하려고 하다가 아예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비건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 번이라도 더 노력하는 것부터 시작하면 된다. 완벽해야 한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 그 누구도 나를 따라다니면서 이걸 먹고 저건 먹지 마라고 하지 않는다. 나 자신만 있을 뿐이다. 나 자신이 하는 선택을 나 자신이 지켜보는 것이고, 찔리면 찔리는 것도 나 자신이고, 실수를 했다면 다음부터는 안 그러면 된다고 하고 계속해서 옳은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다.
비건으로 살다 보면 듣기 불편한 질문이나 언행들을 겪게 된다. 기분 나쁘게 하려고 한 게 아닌 정말 몰라서 하는 질문이 있고, 그냥 괴롭히려고 내뱉는 사람들도 있다. 전혀 들으려는 자세가 없고 그냥 조롱하는 사람들은 그냥 무시하는 게 낫다. 하지만 정말 모르고, 알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우리 생각보다 많다. 우리가 비건이 되기 전에 몰랐던 것처럼, 알고 나면 비건이 될 사람들이 많이 있다.
한번 알고 나면, 처음 알고 비건이 되고 나면 한동안은 너무 화가 나고, 슬프고, 비건이 아닌 사람들이 그냥 미워질 때가 있다. 하지만 우리도 비건이 아니었고, 몰랐었고, 저런 무례한 질문을 생각 없이 했을 것이다. 비아냥거리는 사람들은 무시하고 순수하게 궁금해하는 사람들에게는 계속해서 설명하고, 알려주고, 도와줘야 한다. 그러면 그 사람들도 함께 비건이 되려고 할 것이며, 이렇게 점점 많은 사람들이 비건 지향인이 되고, 비건 지향을 하려고 노력한다면 비건, 비거니즘이라는 개념이 알려질 것이고, 비건 식품, 비건 식당이 점점 늘어날 것이다.
서양엔 비건 가공식품이 많이 있다. 그리고 한국은 그 가공식품을 수입해 비싼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가공식품을 먹는 것은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만들고, 우리가 잘 모르는 알 수 없는 화학성분들이 들어가고, 방부제가 들어가기 때문에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어차피 좋지 않다. 결국 가공식품을 먹는 경우를 최대한 줄이고 자연재료를 먹는 것을 늘린다면 가공식품이 별로 없는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을 것이다.
가공식품을 꼭 먹어야겠다면, 비건 온라인 쇼핑몰에서 구매해서 먹는 것이 준비 없이 슈퍼에 가서 없다고 불평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도시락을 싸서 다니고, 먹을 것을 챙겨서 다니는 것이 편의점에 비건 먹을 게 없다고 불평하는 것보다 훨씬 낫다. 정말 귀찮다면 그냥 길가다가 채소나 과일을 왕창 사서 과일식으로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한국에서 살던 비건들은 해외에 나가면 두부도, 나물도, 버섯도, 깻잎도, 떡도 없어서 한국이 비건하기 좋다고들 한다. 어디에 있어도 내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지 할 수 있다. 어디에 있어도 내가 불만이면 모든 것에 대해 불평할 수도 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상황에 맞춰서 내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한국은 비건하기 정말 좋은 곳이다. 그리고 점점 더 좋아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