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왔다.
여름은 이미 지나가고 벌써 가을이다. 산책을 다니다 보면 길쭉하게 늘린 것 같이 생긴 도토리가 너무 많이 떨어져 있어 발에 치이고, 밟혀 부서진다. 한국은 사람들이 도토리묵을 만드느라 다 주워가서 떨어진 도토리가 많이 없는데 여기는 아무도 도토리를 주워가지 않는가 보다.
인적이 드문 강가의 숲길을 걷는데 강물과 땅에 반반씩 걸쳐있는 아주 커다란 나무에서 떨어진 가시가 적은 밤송이에 동그란 모양의 밤같이 생긴 동글동글 예쁘고 반짝이는 열매가 널브러져 있는 것을 보고 신이 나서 왕창 주웠다. 두 사람의 주머니가 볼록해질 만큼만 줍고 내일 다시 가방을 가지고 오기로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삶기, 굽기, 쨈 만들기 등 밤을 어떻게 먹을지를 이야기했다.
집에 와서 주머니의 밤들을 다 꺼내보니 약 일 킬로그램 정도 되는 것 같았다. 밤을 내려놓고 커다란 냉장고 하나에 다양한 맛의 두부, 치즈와 대체육, 요거트 등이 있는 비건 코너가 있는 집 근처의 유기농 마켓에서 장을 보고 어저께 사온 비건 슈니첼(: 돈까스와 비슷한 오스트리아의 음식)로 버거를 만들었다. 미리 만들어놓은 두유로 콩 마요네즈를 만들고, 반으로 가른 동그란 빵의 한쪽에 바르고 나머지 한쪽에는 머스터드 스프레드를 발랐다. 마요네즈를 바른 빵 위에 슬라이스 양파, 기름에 튀긴 슈니첼, 고추피클, 상추를 많이 올리고 머스터드를 바른 빵 위에는 아보카도 슬라이스를 올렸다. 냉동 웨지감자를 오븐에 구워서 캐슈넛, 뉴트리셔널 이스트, 소금, 마늘가루로 만든 캐슈넛 치즈가루를 뿌렸다. 가능하면 가공식품과 정크푸드를 피하려고 하지만 오랜만에 이렇게 자극적이게 먹으니 꽤 맛있었다.
버거를 다 먹고 아까 왕창 주워온 독일 밤에 대해서 검색해보았다. 사실 며칠 전에 이 밤을 하나 주워와 껍질을 까고 맛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떫었지만 덜 익어서 그런 줄로만 알았다. 독일에서 밤을 주워서 먹어본 사람은 나뿐이 아니었다. 신나게 주워서 삶아서 먹어본 사람들이 블로그 후기를 보니 삶아도 너무 쓰고 떫은데 그 떫은맛이 꽤 오래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독일 밤은 다르게 생겼네 라고만 생각했지 이게 밤이 아니고, 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닐 줄은 꿈에도 몰랐다. 사실 이건 밤이 아니라 마로니에였다. 누구는 이쑤시개로 마로니에에 팔다리를 꽂아 장식품을 만들 수 있다고 하고, 누구는 잘라서 물에 약 여섯 시간 정도 담가놓았다가 그 물을 빨래할 때 세제로 쓸 수 있다고 했다.
우리 집에는 이쑤시개도 없고, 물을 세제로 쓰는 건 별로 구미가 당기지 않는다. 마로니에는 천주머니에 담겨서 대용량 쌀 봉투의 입구를 누르는 용으로 쓰이고 있다.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길에는 마로니에 열매는 없고 껍데기만 남아있는데 다른 사람들은 그걸 주워가서 도대체 뭘 하는지 궁금하다... 어차피 딱딱한 껍질을 까고 손질하려면 귀찮은데 먹고 싶으면 밤 쨈은 그냥 사 먹고 말아야지. 앞으로 마로니에는 주워오지 말 것.
* 독일에서 볼 수 있는 밤같이 생겼지만 가시가 듬성듬성 난 어두운 초록색 껍데기 하나에 알맹이 하나만 들어있는 열매는 밤이 아니라 마로니에이다. 마로니에는 먹는 게 아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