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엑스레이와 검진
가끔 치아인지, 잇몸인지, 예전에 때운 부분인지, 사랑니를 뽑은 자리인지 입속 여기저기가 아프다가 말다가 한다. 특히 생리 전후로 더 그런 것 같다. 출국 전에 치과에서 스케일링도 받고, 불안한 치아는 다시 때우고 왔지만 벌써 독일에 온 지 반년이 넘어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간다.
어릴 때에는 치과의 냄새, 소리, 마취주사와 이를 후벼 파는 것이 무서웠다면 이제는 그것들은 그나마 참을 만하지만 신경치료, 임플란트에 대한 공포와 치료비가 더 무서워졌다. 매일 치실을 사용하고, 이를 꼼꼼히 닦는다. 정기적으로 치과에 가서 스케일링과 검진을 받고는 치료할 곳이 없다는 말을 듣고 나서야 안도의 숨을 내쉰다.
한국에 있을 때는 스무 살 즈음부터는 친구의 소개로 집에서 너무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친절하고 진료도 잘하는 치과를 다녔다. 여행자보험을 들어도 뭔가 막연히 외국에서 병원을 가는 것은 괜히 비싸고 별로일 것 같고, 의사 얼굴도 한번 보기도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 그런지 편견이 있다. 이제는 독일에서 지낼 날은 늘어가는 데 치과는 정기검진으로라도 언젠가는 가야 했다.
‘독일 치과’를 검색해 보았더니 치료비가 너무 비싸니 한국에 갈 일이 있으면 한국에서 치료를 받으라고 했다는 의사, 사랑니 네 개를 한 번에 다 뽑아버린다는 이야기, 이를 때운 것이 두 번이나 떨어졌다는 이야기, 독일 치과의사는 별로라 독일에 있는 한국 치과의사를 찾는 게 낫다는 이야기 등을 보며 음... 조금 무서워졌다. 파트너에게 이런 말을 했더니 자기가 가는 치과는 정말 좋고 잘해서 굳이 이삼십 분을 운전해서 꼭 거기만 간다며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어디가 아픈 것이 아니라 검진이라 그런가 예약은 2주 뒤로 잡혔다.
나는 독일어를 못하기 때문에 파트너가 보호자 겸 통역사로 같이 갔다. 처음 들어가니 보험 카드를 기계에 꽂으라고 하고 서류를 여러 장 작성했다. 예약한 날에 안 오면 벌금을 물겠다는 것과 개인 정보, 최근 엑스레이 촬영, 최근 치료한 치아, 임신 여부, 약 먹는 것이 있는지, 알레르기가 있는지 등... 참 꼼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이름을 불러서 들어갔다. 한국에서 다니던 치과는 일인실은 VIP용이고 일반 진료는 뚫린 벽이 있어 옆 사람이 치료받는 소리가 들리고 모습이 보이기도 하는데 여기는 전부 일인실인 것 같다. 파트너가 입이 마르도록 칭찬한 의사 선생님이 오셔서 어디 불편한 곳은 없는지, 마지막으로 엑스레이는 언젠지 묻고, 입속 박테리아를 죽이는 가글을 일분 가량 하고 치위생사분이랑 엑스레이실에 가서 엑스레이를 찍었다.
다시 진료실로 돌아가니 교정을 한 적이 있는지 치료는 어디에서 받았는지 묻고, 치아를 들여다보며 하나하나 의사가 뭐라고 하면 치위생사가 반복해 말하며 받아 적는 것 같았다. 치료를 받았는지 뭘로 때웠는지에 대한 것 같았다. 앞니에 살짝 금이 간 것을 만지며 이건 어쩌다가 그랬는지 묻고, 종이를 대고 입을 열었다 닫으며 위 아랫니가 잘 맞물리는지도 확인했다. 얼음 막대로 치아 하나하나에 대보면서 차가운 게 느껴지는지도 확인했다. 치아가 죽었으면 차가운 게 안 느껴진다고 한다. 턱관절도 확인하고, 치열도 확인하고, 심지어 입을 최대한 벌려 입 크기까지 자로 쟀다. 치아 사진도 이리저리 찍었다.
아마 첫 방문이고 내 치아에 관한 기록이 없었기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치과는 깨끗하고, 조용하고, 친절하다. 어느덧 경계심과 두려움은 사라졌다. 의사 선생님은 엑스레이 기계가 한국 거라고 하셨다. 내 금니는 독일 금니랑 색깔이 다르다고도, 내 송곳니가 하나도 닳지 않은 것을 보고 신기해하기도 했단다. 약간 실험대상이 된 것 도 같고, 누가 내 입속을 이렇게 열심히 들여다보며 관찰하는 건 새로운 경험이었다.
한국에서는 여러 사람이 동시에 누워있고 의사 분은 왔다 갔다 하면서 빨리빨리 보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여유 있게 천천히 섬세하고 꼼꼼해 편안했다. 가끔 여기저기 아프다가 말다가 하는 건 잇몸이 마모되어 치아 뿌리가 좀 드러나 예민해서 그런 것이니 부드러운 모 칫솔로 둥글게 원을 그리듯 이를 닦으라고 했다. 금이 간 앞니는 나중에 부서질 가능성도 있으니 미리 치료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스케일링 예약을 잡고 치과를 나왔다.
2 스케일링
지난번과 다른 치위생사분이 내 이름을 불렀고, 그분을 따라서 진료실로 들어갔다. 이번 치위생사 분도 역시 아주 친절하시다. 본인은 학교 수준 영어밖에 못한다고 하셨지만 최선을 다해서 영어로 말해주셨다.
먼저 지난번에 했던 박테리아 죽이는 가글을 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무엇을 할 것인지 왜 하는 건지 자세하게 설명해주셔서 좋았다. 열 배로 잘 보인다는 돋보기가 달린 안경을 쓰시고는 파란색 염료 같은 걸 솜에 적셔서 치아에 묻히고 헹구어 낸 뒤, 거울로 염색이 되어 드러난 플라그를 보여줬다. 오래된 건 보라색 최근 건 파란색. 확인이 끝난 뒤 스케일링 시작. 아주 아프진 않지만 그렇다고 안 아프지도 않았다. 스케일링 기계가 끝나고는 얇고 뾰족한 금속 도구로 이사이에 남아있는 치석을 긁어냈다.
입을 헹구고는 치간 칫솔을 쓰는 게 좋겠다며 사이즈를 골라서 사용법을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바이오필름을 제거한다는 무슨 고압력 자동 물총 같은 걸로 치아와 혀까지 입속 구석구석에 뿌렸다. 입속이 마치 자동세차장이 된 것 같았다. 마지막에는 무슨 불소 보호막이라면서 액체를 작은 솜에 묻혀서 치아에 발랐다. 목이 따가웠다. 적어도 30분은 물로 헹구지도 말고 오늘은 강황 같이 색깔이 진한 음식도 먹지 말고 오늘부터 새 칫솔을 쓰라고 했다.
파트너가 오는 길에 차가 막혀서 약속시간보다 십 분가량 늦은 것에 대해서 사과하니 치위생사 선생님은 내 치아가 때운 것까지 너무 예쁘고 관리도 잘 되어 깨끗하기 때문에 다 용서가 된다고 하셨다. 나도 이것저것 처음 해보는 경험에 신기하고 선생님이 친절해서 좋았는데, 스케일링 내내 선생님도 오늘 너무 재미있다고 좋아하셨다.
마지막에는 오늘 스케일링과 불소 보호막의 가격이 적힌 종이를 보여주며 서명을 받고, 6개월에 한 번씩 와서 스케일링과 검진을 하는 것이 좋다며 6개월 뒤의 예약까지 잡아주셨다. 진료실을 나와 치간 칫솔을 골라주신 사이즈로 사 왔다. 입안에 맴도는 강렬한 맛과 향 때문에 입맛도 없었고, 굳이 또 뭐를 먹고 다시 이를 닦고 싶지는 않아서 그냥 잘 때까지 물만 마셨다.
치간 칫솔 사용법을 알려줄 때 보니까 피도 조금 났고, 다음 며칠은 이도 시렸다. 스케일링은 6개월이 아니라 일 년에 한 번씩 하는 것이 낫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