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밝아도 우중충하고 서너 시부터 어둑어둑해지는 긴 겨울이 지나가고 여름이 돌아왔다. 낮의 햇볕은 따갑고 저녁 아홉 시에도 하늘이 파랗다. 날씨가 좋아지니 독일 사람들은 자전거를 더 많이 탄다. 여름이 오기 전, 미리 파트너의 엄마께 받은 안 쓰는 자전거를 가지러 시내에 갔다. 이제부터 내가 타게 될 그 자전거의 안장은 앉으면 발이 허공에 뜰 정도로 높았다. 파트너는 페달을 밟으면서 올라타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발이 닿지 않는 자전거가 불안했다. 멈출 때는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자전거를 기울이거나, 보도블록에 발을 올리거나, 안장에서 내려와 앞에 서면 된다고 했지만 나는 앉아서 발이 땅에 닿기 전까지 그 자전거에 올라타기를 거부했다.
지난주 내내 해가 쨍쨍하고 기온은 30도를 넘나들었다. 최고기온이 35도라는 금요일, 지인의 제안으로 함께 시내 근처에 있는 호수에 갔다. 시내에 갔더니 수많은 사람들이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다들 안장이 매우 높다. 아빠한테 말했더니 그 사람들은 다리가 길어서 그렇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긴 다리도 안 닿을 정도로 높았다. 안장이 저렇게 높으면 더 멀리 잘 보이기라도 하는 걸까.. 아무튼 그들은 높은 안장이 익숙해 보였다. 호수의 입구 근처에는 역시 자전거가 아주 많았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입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가 찾아간 호수는 사유지라서 울타리가 있고, 입장료를 내야지 들어갈 수 있다. 입구 옆쪽으로는 맥주와 음식을 파는 비어가든이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나무 그늘이 있는 풀밭, 어린이용 수영장, 아기들을 위한 물웅덩이, 그리고 그 가운데 호수가 있다. 호수 근처에는 직사광선이 내리쬐는 풀밭, 공놀이를 할 수 있게 네트가 설치된 곳과 화장실도 있다.
우리는 먼저 나무 그늘 아래 풀밭에 자리를 펴고 앉았다. 바닷가가 별로 없는 나라라 그런지 호수 수영이 일반적인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뭔가 낯설었다. 사람들의 옷차림만 보면 마치 해변에 온 것처럼 느껴지지만 배경이 푸르른 숲과 공원이었다. 언젠가 한여름에 갔던 록 페스티벌의 분위기도 생각났다. 사람들은 수영복을 입고 풀밭에 앉아 같이 온 사람들과 음료나 간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하거나, 햇볕에 살을 태우거나, 책을 읽는다. 호수 옆에는 최고 수심이 7미터라고 쓰여 있었다. 물에 쉽게 드나들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쇠로 된 계단, 다이빙대와 걸어가서 발만 담그고 앉아있을 수 있는 긴 나무판자, 호수 중간을 가로지르는 나무로 된 다리도 있었다. 한쪽에서는 다이빙을 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물에 들어가 머리만 내놓고 유유히 헤엄을 치며 놀고 있었다.
나는 물은 좋아하지만 수영에는 자신이 없다. 호주에 가면 꼭 서핑을 배우고 싶어서 수영장에 갔지만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았다. 서핑을 배울 때에는 수영실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배운 것을 다시 배워서 그랬나, 키가 커져서 그랬나 모르겠지만 성인이 되고 수영을 배우는 것은 조금 나았다. 발이 닿지 않으면 옆에 벽을 잡으면 되고, 무서워도 출발점에서 도착점까지만 버티고 헤엄쳐 가면 된다. 사실 내가 배우고 싶었던 것은 물에 둥둥 떠서 팔다리를 휘적거리는 것이었지만 초보자는 언제나 자유형, 배영을 먼저 배우고 나는 아직 평영을 배우지 못했다.
처음 수영장에서 수영을 배운 건 초등학교 저학년 때였다. 동생이랑 같이 동네 수영장에 갔다가 둘 다 물에 빠져 물을 잔뜩 먹었다. 이때부터였을까 물속에서 발이 닿지 않으면 두려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7미터 깊이의 호수라니. 너무 더워서 물에 들어가고는 싶은데 무서워서 긴장이 되었다. 파트너와 친구들이 먼저 들어가고 나는 한발 한발 계단을 천천히 내려갔다. 호수의 물은 차가웠다. 저 시커멓고 깊은 물에 튜브도 없이 들어가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계속 들어가길 망설이고 파트너는 괜찮다고 들어오라고 하며 계단에서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으니 물 밖으로 올라오던 한 노년 여성분이 나에게 물속이 ‘원더풀’하다고 격려를 해주었다.
계단 근처에서 조금만 들어가 보고 아니면 나와야지 생각하며 살짝 들어가 보았다. 물은 차갑고 깊고 어두웠다. 곧 두려움을 떨치지 못하고 도로 나와 버렸다. 독일인들은 자연스럽기 때문에 수영장보다 호수가 훨씬 좋다고 말했다. 호수가 익숙하지 않은 나는 호수의 물이 과연 더 나은 것일까 의심이 들었다. 긴장을 하면 몸이 가라앉아 코로 물을 먹게 된다. 넘어지면서 걷기를 배우는 것처럼 물도 먹으면서 수영도 배우는 것이겠지만 사실 락스 냄새가 나는 수영장 물이든지 호수의 물이든지 내 코로 들어가 물을 먹는 것을 참을 수가 없어 쉽게 긴장을 풀 수가 없다.
그냥 풀밭에 누워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물에 들어간 시간은 몇 분 되지도 않는데 긴장을 해서 그런가 배가 고팠다. 간식을 가져왔으면 더 좋았겠다고 생각했다. 파트너가 호수에서 가까운 평점이 좋은 비건 식당을 하나 찾았다. 오랜만에 먹은 여러 가지 재료가 왕창 들어간 초밥 롤은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집에 돌아와서 가운데에 갈색의 씨앗모양의 비치 볼이 들어있는 아보카도 모양의 커다란 튜브를 주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