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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May 18. 2021

나의 난임 연대기

엄마가 되기 전의 나는 (下)


세상에는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정말 많다. 누군가는 정말 쉽게 해내지만, 이상하게 나에게는 어려운 것. 나의 경우에는 월경이 그랬다.




17살, 첫 월경이라고 '생각되었던' 출혈이 있었다. 사실 나는 첫 월경을 정확히 언제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데, 출혈 이후 1년이 다 되어갈 때까지 월경이 없었기 때문이다. 불안해진 나는 엄마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의사는 초음파를 들여다보며 설명했다.


"'다낭성 난소'가 보이네요. 난포가 성숙해져서 난소가 배출되어 배란이 되는데, 여기 보시면 포도알처럼 까만 구멍들이 보이죠? 난포가 여러 개가 생겨서 하나가 성숙되지 않고 있어요. 그러면 배란이 되지 않아 생리도 하지 않을 수 있어요."


나는 불안한 마음을 억누르며 모니터 속의 검은 동그라미들을 응시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내가 엄마가 되기 위해 그 작고 까만 동그라미의 직경 1mm에 울고 웃을 줄은.




'다낭성 난소 증후군'은 요즘 가임기 여성의 5~10%에게서 나타난다고 할 정도로 꽤 흔한 증상이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이 규명되지 않은 미지의 영역이다. 다만 월경을 하지 않으면 자궁내막증과 불임의 위험이 있기에, 피임약이나 생리 유도 주사 등으로 주기적인 월경을 유도한다.


1년 정도 피임약을 복용하면서 생리 주기가 안정되길 희망했지만, 야속하게도 피임약 복용을 중단하면 감감무소식이었다. 다이어트도 하고, 한약도 지어먹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만 뚜렷한 효과가 없었다. 심지어 호르몬 검사에서도 특이점이 없었다. 의사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선천적으로 그런 케이스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을 개선하는 데 다이어트가 도움이 된다고 해서 과체중에서 10kg 이상을 감량했지만, 아쉽게도 변화가 없었다.


27살, 평생을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생기면서 나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임신을 시도하기 전까지는 실제로 난임일지 아닐지 알 수 없다지만, 한 번도 자력으로 월경을 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나를 위축되게 만들었다.


내가 떨리는 마음으로 이야기를 꺼냈을 때, 그는 무거운 주제와 낯선 용어에 당황했을 법했음에도 다정하게 반응해주었다. 그는 나와 함께 함으로써 겪어야 할 불확실성을 기꺼이 떠안겠다고 말했다. 


나는 엄마가 되고 싶었고, 그 또한 아빠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하더라도, 우리는 서로의 배우자가 되고 싶었다.


그렇게 우리는 결혼을 했다.





28살, 그러니까 결혼을 하고 얼마 안 지났을 무렵 배우자와 함께 산부인과를 찾았다. 원래 1년 안에 자연적으로 임신이 되지 않을 때 난임(불임)으로 진단할 수 있지만, 배란장애가 있던 나는 애초에 이런 기준이 의미가 없었다. 난임을 전문으로 보신다는 나이 지긋한 의사 선생님은 검사 결과를 들여다보시며, "우선 배란 유도를 통한 자연임신을 시도해봅시다."라고 제안했다. 마치 노련한 마에스트로 같았다.


다낭성 난소 증후군 증상을 개선하기 위해 '다이아벡스'를 처방받고, 배란 유도제도 복용했다. 처음에는 '클로미펜'으로 배란 유도를 시도했으나 초음파 속 난포는 내가 계속 보던 까만 동그라미들의 집합체 그대로였다. 비급여 약제인 '페마라'를 복용했다. 다행히 이번에는 효과가 있었다. 까만 동그라미의 직경이 커지는 것이 보였고, 그에 비례해서 나의 희망도 부풀었다.


그러나 2주 후, 임신테스트기에 선명히 그어진 한 줄은 '땡! 다음 기회에.'를 외치고 있었다. 마음이 점점 초조해졌다. 사실, 애초에 내게 '다음 기회'란 없는 게 아닐까? 설상가상으로 호르몬 검사에서 갑상선 기능 저하증 진단을 받고, 자궁난관조영술(*조영제를 자궁 내로 주입해 나팔관 협착 등의 이상을 살펴보는 검사)에서 왼쪽 난관의 협착이 보인다는 소견까지 받으며 스트레스는 더 심해졌다.




임신 시도는 비유하자면 매달 누군가에게 정성스럽게 초대장을 쓰는 것이다. 누군가는 단번에 답장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지만, 누군가는 몇 주 후 반송 처리된 초대장을 손에 받아들 뿐이다. 편지지도 바꿔보고, 우표도 다르게 붙여보고, 내용도 공들여 써보지만 계속 반송이다.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초대하고 싶은 사람이 찾아낼 수밖에!


끊임없이 애쓰면서도 기대를 내려놓아야 하는 상황을 몇 번이고 겪어내며 마음이 끝없이 침잠할 때마다, 만약 나의 삶에 아이가 없다면 내 아이에게 줄 사랑으로 다른 수많은 아이들을 껴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내게 아이가 생긴다면, 이 간절함을 동력으로 삼아 아이의 존재에 더 감사하고 사랑해주겠다고 기도했다. 



임신 시도 중에 발견한 갑상선 기능 저하증은 오히려 다급했던 마음을 잠깐 내려놓는 계기가 되었다. 약해진 몸부터 추스릴 필요가 있었다. 나는 직장에 사직 의사를 밝혔고, 당분간 좀 쉬면서 장기전을 대비하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보낸 기약 없는 초대장에 누군가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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