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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May 27. 2021

결국 내 몸은 입덧을 선택했다

내가 품은 아이의 무게 (上)


'임출육(임신, 출산, 육아)' 3종 세트 중에 가장 어려운 것은 무엇일까? 사람마다 답은 가지각색이겠지만, 같은 경우에는 '임신'이었다. 출산은 어찌 되었든 이 고통만 끝나면 아이를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어서 견뎠고, 육아아이의 얼굴을 보고 울고 웃을 수 있는 '단짠단짠'의 매력이 있다.


하지만 임신은 좀 달랐다. 아기집 속에 자리 잡은 이 존재가 기쁘면서도 아직 데면데면했던 나의 감정과 달리, 나의 몸은 신속하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오죽하면 임신을 확인하기 위한 호르몬 검사에서 수치가 쌍둥이 수준으로 높게 나와서, 의사 선생님이 "아기집이 하나 더 있나?" 하고 찾아볼 정도였으니.


보통 임신이 더 나았다고 꼽는 이들을 보면 '자고 싶을 때 자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최대 장점으로 꼽는다. 그러나 나는 아쉽게도 이 혜택을 온전히 누리지 못했다. 입덧으로 임신 초기를 통으로 날려 보내고, 출산 전까지 울렁거림을 일상처럼 안고 지냈다. 게다가 임신 후기에는 모종의 이유로 하루 종일 누워 지내면서 만성 소화불량에 시달렸다. 출산하고 나서야, 나는 어떤 감각의 왜곡이나 불편함도 없이 음식을 음미할 수 있었다.






입덧은 참 미스터리하다. 입덧은 임신 초기에 위험할 수도 있는 물질로부터 태아를 보호하기 위해 발생하는 현상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입덧이 전혀 없어 아이가 잘 크고 있는지 불안해하고, 누군가는 피골이 상접할 정도로 극심한 입덧에 시달린다.


사실 이전에 잔병치레가 많았었기에 임신 과정도 마냥 순탄하지는 않을 거라 짐작은 했지만, 그래도 '임신 체질'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나 야속하게도 몸은 '임신 퀘스트'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한치의 망설임 없이 '입덧'을 선택했다. 


눈을 뜨면 화장실로 달려가 구토를 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엔 울렁거림이 더 심해 일부러 오전 10시쯤에 일어났지만, 속이 뒤집어지는 느낌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더 난감한 것은 역함을 느끼는 재료의 종류였다. 나의 몸이 유난히 격하게 반응한 것은 바로 '마늘'과 '고기'였다. 고기는 백번 양보해서 그렇다 쳐도, 마늘이라니! 한식에 마늘이 안 들어가는 음식이 있었던가? 


게다가 이미 냉장고에 밴 음식 냄새, 남편이 밖에서 먹고 들어온 음식 냄새에까지 (나만 맡을 수 있는) 마늘 냄새가 스며들어 있었다. 그것도 내가 알던 알싸하고 맛깔난 그 향이 아니라, 마치 부패한 마늘이 가득 담긴 음식물 쓰레기통을 지나는 것처럼 고약한 이취(異臭)가 났다. 양파, 파와 참기름도 마찬가지였다.


처음 아기집을 확인한 날은 내 생일이었다. 남편이 정성스럽게 차려주었던 미역국. 이때까지만 해도 입덧이 불러올 나비효과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입덧이 극심했을 때 친정엄마가 사랑과 걱정을 담아 요리해줬던 갈비찜. 우리 두 남매를 임신했을 때 심한 입덧을 경험했던 친정엄마는 나를 안쓰러워했고, 또 미안해하셨다.


냉장고를 열 수가 없어서 요리도 힘들었고, 밥 뜸 들이는 냄새에도 울렁거렸다. TV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장면이 나오면 속이 꿈틀거려 채널을 돌려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유일하게 붙잡을 수 있었던 음식은 바로 국수와 과일이었다. 마침 여름이라 콩국수, 냉면 등 시원한 국수류가 등장한 것이 나를 살렸다. 그냥 죽으란 법은 없는지, 음식을 먹는 그동안만은 울렁거림이 조금 잦아들었다.


      




임신 초기에는 '유산'을 많이 걱정하지만, 사실 '입덧'도 중요한 이슈이다. 임산부의 약 80%가 (정도는 다르지만) 입덧을 경험하며, 누군가는 탈수, 영양장애, 5% 이상의 체중 감소를 겪는 '임신 오조'를 경험한다. 특히 일하는 여성이 입덧에 시달리면 휴직이나 퇴사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다행히 대부분 임신 중기에 접어들면 자연스럽게 입덧이 사라지고, 업무 집중도도 회복될 수 있다. 그렇기에 이 시기를 잘 지날 수 있도록 주변의 격려와 케어가 필요하다.


안타깝게도 3년 전의 나는 그걸 몰랐다. 갑상선 저하증으로 퇴사 의사를 밝힌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게 된 나는, 이미 담당 아동의 보호자분들에게 "몸이 안 좋아서 쉬기로 했어요."라고 말씀을 드린 상황에서 "사실은 임신해서 그만두게 되었어요."라고 말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또 임신과 상관없이 인수인계를 잘 마무리하고 싶었고, 아이들과 부모님들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도 않은 마음도 있었다. 그래서 임신 사실을 숨겼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무모하고 미련했다. 호르몬이 시키는 일은 애당초 '의지'로 이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사정없이 울렁거리는 속을 참고 하루에 7-8 케이스를 진행하고 나면 완전히 녹초가 되었다. 하루는 일하는데 너무 어지럽고 배가 당겨서, 치료실 문을 닫고 가만히 누워 있다가 일어나서 다시 케이스를 진행한 적도 있었다.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무리가 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나는 병원을 찾았고, 입덧완화제(디클렉틴)를 처방받았다. 아무래도 약이라는데 복용을 해도 될지 살짝 망설였지만, 이미 혈당강하제, 갑상선 호르몬제 등을 정기적으로 복용하며 임신 유지에 도움을 받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나는 어떻게든 '임신 퀘스트'를 수행해야 했고, 초입부터 맞닥뜨린 '입덧'이라는 거대한 보스를 해결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했다. 다행히 입덧완화제는 효과가 있었다. 복용 전 입덧의 강도가 10이라면 복용 후에는 3~4 정도로 완화되었고, 그것만으로도 업무에 큰 도움이 되었다.


 

2.54cm의 콩알 시절. 이 작은 존재를 지키기 위해 내 몸은 그렇게도 요란을 떨었나 보다.






끝날 것 같지 않았던 입덧도, 임신 중기가 시작되면서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사실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고 약간의 울렁거림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럼에도 하루를 구토로 시작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임산부 교실도 다니고 바깥 외출도 조금씩 하며 황금 같은 안정기를 누렸다. 당시 나의 계획은 집에서 언어재활사 1급 국가시험을 준비해서 12월 초에 응시하고, 이듬해 2월 말에 건강하게 출산하는 것이었다.


보건소 출산교실을 다닐 때. 생각보다 우람하고 딱딱한 아기 인형에 난감했지만 수업은 정말 재미있었다.


임신 중기에 이르러 특별히 조심했던 것이 바로 '임신성 당뇨'였다. 친정엄마가 나를 임신했었을 때 출산을 한 달 앞두고 병원에 정기 검진을 갔다가, '임신성 당뇨로 인한 급성 임신중독증'으로 응급 유도분만을 했기 때문이었다. 전설처럼 내려오는 그 이야기는 어렵게 아이를 가진 나에게 합리적인 걱정을 안겨주기에 충분했고, 입덧이 잦아들 무렵부터 과일 등의 당분 섭취와 체중 관리에 각별히 주의를 기울였다.


임신 27주를 지나는 주말 오전, 나는 병원에서 긴장하며 혈당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행히 검사 결과는 '이상 없음'. 홀가분한 마음을 안고 초음파로 자궁을 확인하는데, 의사가 고개를 갸웃했다. 나의 '임신 퀘스트'에 전혀 의외의 복병이 등장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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