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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겸비 Jun 06. 2021

'고위험 산모', 조산의 경계에 서다

내가 품은 아이의 무게 (中)

임신 27주를 지나는 주말, 초음파를 보던 의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궁경부 길이가 많이 짧아져 있어요. 25mm밖에 안 되네요." 커서로 가리킨 부분에는 자궁경부 안쪽이 까만 삼각형처럼 살짝 벌어진 것이 보였다.


이전 검사에서는 늘 자궁경부가 단단하게 붙어 있었기에,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사실은 임신 초기 때부터 은근히 신경 쓰이게 하던 배뭉침도 잦아지고 있었다. 의사는 일정한 시간 간격으로 배가 뭉치는 느낌이 들면 늦은 밤이라도 반드시 병원에 와야 한다고 했다.


마침 그날은 한 달 전부터 저녁 모임이 약속되어 있던 상황이었다. 어차피 식사하려면 앉아 있어야 하니, 밥만 먹고 오는 것은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식당에 있는 동안 배뭉침 간격을 계속 체크했다. 대략 20분~1시간에 한 번씩 있었고 특별한 규칙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집에 가서 휴식을 취하면 나아지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밤이 되자, 배뭉침 간격이 5분으로 급격하게 짧아지고 일정한 패턴으로 오는 것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조짐이 좋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편과 함께 다시 병원을 찾았다.


새벽 1시, 평소에 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병원도 고요한 어둠에 싸여 가라앉아 있었고 오직 응급 분만실로 들어가는 입구만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궁수축 검사를 하기 위해 배에 측정 벨트를 차고, 설명할 수 없는 복잡한 마음으로 누워 있었.


검사 결과 6분 간격으로 조기 진통이 오고 있었다. 자칫하면 조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심전도에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바로 링거를 연결하여 자궁 수축을 억제하는 '라보파'를 투여했다.



마침 낮에 진료를 받았던 의사가 당직 근무를 서고 있었기에 신속한 상황 파악이 가능했다. 후에 들었지만, 내가 검사를 받고 있을 때 그분이 정말 위험할 뻔했다며 남편근엄하게 혼냈다고 한다. 모든 조치가 끝난 후 남편이 울상이 되어 들어와 "내가 더 잘 살폈어야 했는데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도 울컥했지만, 웃으면서 괜찮다고 다독였다.


분만실에 들어갈 때는 걸어서 들어갔으나, 병실로 이동할 때에는 휠체어를 타고 나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고위험 산모'가 되어 있었다.






처음에는 바로 퇴원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느 정도였냐면, 입원을 위해 집에서 물건들을 가져올 때 일주일 뒤에 있을 언어재활사 1급 시험공부 자료를 챙길 정도였다. 그러나 내 상황은 생각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자궁경부 길이가 짧거나, 계속 자궁 수축이 있는 경우(조기진통) 하나라도 해당되면 '조산기가 있다'라고 진단한다. 나는 가지 증상을 가지고 있었다. 4시간 동안 앉아서 시험을 치를 수 있는 몸상태가 아니었다. 임신 기간 내내 공부했는데, 시험을 일주일 앞두고 입원이라니! 처음에는 조금 억울한 마음도 있었지만, 곧 그런 투정마저도 사치라는 걸 깨닫게 되었다.


다인실, 나와 같은 임신부 6명이 함께 있던 곳이다. 우리들의 목표는 똑같았다. 조산기에서 해방되어 집으로 가거나, 계속 버티고 무사히 출산해서 이곳을 나가는 것.


조산기로 입원하게 되면 최대한 아이를 품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가능한 주수를 채우고 나오는 것이 좋다. 그래서 일주일, 하루가 소중하다. 같은 주수에 태어난 아이여도 폐호흡을 할 수 있을 정도로 폐가 성숙하고, 체중이 좀 더 나가는 아이일수록 예후가 좋다.


그런데 난 입덧으로 단백질 섭취가 원활하지 못해서 그랬는지 주수에 비해 아기 몸무게가 좀 적게 나가는 편이었다. 조산을 막기 위해 식사, 화장실 다녀올 때 빼고는 무조건 누워 있으라는 미션을 부여받았다.


딱딱한 병원 침대에서 무거운 배를 잡고 하루 종일 누워 있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고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더 힘들었던 것은 기약 없는 병원 생활 속에서 '누군가는 결국 아이를 조산해서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더라', '안타깝게도 아이가 잘못되었다더라' 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마인드 컨트롤을 하는 일이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혈압, 태아 심음, 체온을 체크했고, 수시로 자궁수축 검사를 했다. 크고 작은 위기가 있었지만 다행히 아기는 자라주었다.  입원 2주 차부터는 라보파 용량을 서서히 줄이다가 3주 차에 아달라트(먹는 약)로 교체했다. 혈관이 약했던 나는 주사 바늘을 교체할 때마다 속절없이 터지는 핏줄 때문에 애를 먹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그저 기뻤다.


아달라트만으 자궁 수축이 잡히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 드디어 퇴원해도 된다는 허락이 떨어졌다. 입원한 지 약 한 달이 지났을 때였다.


사진 속 주황색 알약이 '아달라트'. 원래는 혈압강하제라서, 저혈압이 있던 나는 두통이나 어지러움으로 고생했지만... 퇴원을 가능하게 해준 고마운 약이다.





자궁 수축은 약물로 최대한 억제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자궁경부 길이가 1cm 미만으로 짧아서 아이가 언제 나올지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남편이 일하러 간 사이에 갑자기 응급상황이 찾아올 수도 있었기에, 출산 전까지는 친정집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어차피 장소만 바뀌었을 뿐 무조건 누워있어야 하는 것은 똑같았다.


자궁경부 길이에 도움을 주는 질정, 자궁 수축을 억제하는 마그네슘, 갑상선 호르몬제 등을 부지런히 챙기고, 아기를 키우기 위해 (미미하게 남은 입덧 때문에 별로 당기지 않는) 고기와 과일을 열심히 섭취했다. 그렇게 나는 조산의 경계에서 '하루만 더', '일주일만 더'를 외치며 시간을 연장하고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데 과일, 그것도 수박이 최고라는 얘기를 듣고 한겨울에 수박을 구해서 먹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기지만, 그때의 나는 정말 절박한 심정이었다.


36주 2일에 막달 검사를 받으러 갔을 때, 내 몸무게는 한 달 사이 3kg가 더 늘어났는데도 여전히 아이의 몸무게는 2kg 초반대였다(지금도 아이는 밥 먹는 것에 큰 취미가 없는데, 뱃속에서부터 잘 안 먹었다고 가끔 농담을 한다).  


37주 이전에 출생한 아이는 '조산아'분류되는데 그중에서도 2.5kg 미만의 '저체중 출생아'는 여러 합병증을 동반할 가능성이 더 크다. 의사는 주수에 비해 아이의 체중이 적은 편이라 출산 후 아이에게 응급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며, 혹시라도 진통이 느껴지면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라고 조언해주었다.


전문가의 경륜은 정말 대단하다. 그 말을 들은 바로 그날 밤, 잠을 자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이전에도 자궁 수축에 민감했기에 "어? 진통인가?" 하고 생각했던 적은 많았지만, 확실히 그것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수축 간격도 점점 짧아지고 통증도 복리 불어나듯 강도가 세졌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화장실에 갔는데, 속옷에 피가 묻어 있었다. 출산의 방아쇠가 당겨진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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